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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16. 2023

여름 수영장에서 우린 평등했다

  드디어 대결의 날이 오셨다. 주윤이는 어쩌면 이 시간을 위해 여름휴가 디데이를 세었을지 모른다. 나와 아홉 살 주윤이는 서로를 노려보며 강렬한 눈빛교환을 한다. ‘I see you!' 우리는 검지와 중지를 브이자로 세워 내 눈 한 번에는 내 의지를, 네 눈 한 번에는 가소로운 너를 밟아주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의 푸른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명랑하고 발랄한 여름의 야외 수영장엔 스파클링의 버블처럼 가벼운 흥겨움이 톡톡 터진다. 더위도, 세찬 여름 햇살도 가벼운 음악소리와 여름의 푸른 웃음소리에 다 괜찮아지는 곳. 여름의 강렬한 햇살이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있었던가. 푸른 수영장에서 힘을 못 쓰는 여름 햇살은 푸른 물에 반짝임을 더해주는 조명으로 여름의 신남을 거들고 있다. 조명 역할을 하는 여름 햇살에 푸른 물이라는 반사판이 더해져 온 여름을 빛내는 여름의 야외 수영장엔 가벼운 대화와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만 가득하다.



  이토록 반짝이는 여름 야외 수영장에 균열이 생긴다. 비키니? 화사한 원피스 수영복? 모노키니? 가벼운 발장구와 하하 호호? 노노. 지금 여기, 야외 수영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심의 수모 패밀리가 수영장에 서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못생김의 지름길, 수모의 굴욕.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기능뿐. 나는 검정 반신 슈트 수영복을 몸에 쫘악 올려 붙게 입고, 누구나 빙구로 만들어주는 진심의 하얀 수모를 이마까지 바짝 썼다. 충분히 나는 이 구역의 못난이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뒷모습만 보이고 싶다.



  사실 부끄러운 건 다른 게 아니다. 내 검정 반신 수영복은 수영복만 보면 모자란 수영 실력에 비해 너무 잘하게 보인다. 과분한 수영복을 입은 내 수영 자아(self)는 늘 초점을 잃곤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진 유일한 수영복이니까. 부끄러우면 물안경을 안 벗으면 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은 이런 걸까? 부서지는 햇살만큼 자잘하게 울리는 푸른 웃음소리들 사이사이에 기백과 결의에 찬 민둥머리 수모 세 식구. 수영을 잘해야 할 것 같은 검은 반신 수영복의 엄마, 수영복이 삭아 없어져서 래시가드에 비치 수영복을 입은 아빠, 그리고 구명조끼 단디 메고 눈이 핑핑 돌아가는 듯 보이는 파란 물안경을 쓴 아홉 살. 입수!



  개구리 발 모양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펴고 팔을 동그랗게 젓다가 밤톨같이 땡그란 머리 한 번씩 들며 푸른 물에 총총 물자욱을 남기며 떠다니는 아홉 살이 참 예쁘다. 볼은 또 왜 저렇게 귀엽게 부푸는 거야. 가벼운 소금쟁이 같기도, 장난꾸러기 개구리 같기도 한 아홉 살이 푸른 여름 위에서 총총총 가볍게 튀어 오른다. 녀석, 많이 배웠다.



  “엄마, 저기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여기 병으로 캡플립을 한번 성공하면 이기는 거예요. “

  평소 규칙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홉 살의 룰이 시작되었다. 왜 캡플립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우리는 가족이니까 오케이. 우린 지금 살짝 떨린다. 나를 이기리라 확신에 찬 수영 현역 아홉 살, 6개월 수영 배우고, 1년을 쉰 후에 지난주에 딱 한번 레슨 받아 불안한 마흔의 엄마, 그리고 4년의 수영 경력을 가졌으나 쉰 기간이 5년인 수영 경단남 아빠가 출발선에 섰다.



  이 순간 나는 진심이다. 일단 물속으로 들어온 순간 봐주는 거 그런 거 난 모른다. 푸른 물속에 두 팔을 쭉 뻗었다. 양팔을 번갈아 물속에 크게 한 바퀴 젓는다. ‘팔을 끝까지 뻗으셔야 해요!’했던 수영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다시 들린다. 그래, 팔을 끝까지! 온 팔에 그 조언을 담아 다시 한번 물을 누른다. 몸이 롤링이 되며 고개를 들어 숨 한 번을 쉴 때마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심장이 뛰고 몸이 뜨거워진다. 내 폐활량 어딨니. 지금 이 순간, 나도 하늘도 푸르다.



  도착점에 만난 셋은 룰대로 물 밖으로 나와 우리의 선베드로 향한다. 500ml 페트병에 1/3 가량 물을 채워 넣은 우리의 생수병이 보인다. 이젠 두 번째 미션, 캡플립 차례다. 캡플립은 병을 거꾸로 들고 던져서 병뚜껑으로 세우는 놀이로 요즘 아홉 살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평이한 바틀 플립보다 성공확률이 좀 더 낮아서 나는 거의 성공한 적이 없다.



  셋 중 가장 먼저 도전한 아홉 살은 실패. 이젠 내 차례다. “도전!” 호기롭게 외쳤으나 성공한 적이 거의 없는 나의 도전에 긴장하는 사람은 없다. 나 조차도. 병의 바닥을 잡고 몇 번의 롤링 후 허공으로 휙 던졌다. 짧은 포물선을 그린 생수병은 중력에 기꺼이 순응한다. 어,,, 어!? 생수병의 뚜껑이 그대로 바닥에 꽂히듯 떨어졌다. 순간 세상의 중력이 힘껏 힘을 내서 뚜껑을 빨아들였던 게 분명하다.



  아홉 살이 당황한다. 나도 마찬가지. 내게 만약 우주의 기운이 모아져서 단 한 번 성공이 허락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홉 살이 가기 싫은 수영 강습을 억지로 억지로 참으며 수영 셔틀버스를 탈 때, 강습 때마다 차오르는 숨을 골라가며 팔을 돌리고 첨벙첨벙 발차기를 할 때, 그 숨 가쁜 허들의 순간마다 이를 악물고 다짐했던 가족대항 수영 대결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이 순간 내 손 모가지는 대단히 경망스러워서 뜬금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모든 부족함이 다 모여있는 골칫덩어리다.



  아홉 살은 아마 울고불고, 기분 나빠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겠지. 나는 차마 아홉 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눈치 없는 내 손목과 우직하게 거꾸로 서 있는 생수병에만 눈을 붙이고 있었다.

  “자, 이제 다시 해요. 이번에는 왕복한 후에 왼손 캡플립을 성공하면 우승이에요!”



  어!? 우리 셋, 잠깐의 포즈(pause) 후, 나의 사랑 아홉 살이 담백하게 다음을 제안한다. 이 깔끔한 승복은 뭐지? 지금 나의 아홉 살이 이만큼 컸다고?



  사실 오늘의 우리 셋 수영 대결은 아홉 살의 수영 강습을 위한 미끼였다. 갈비뼈가 앙상한 아홉 살은 유난히 수영 강습 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수업을 함께 듣는 형아들 중에 가장 못한다고 했고, 선생님께 혼난다고 했고, 힘들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 힘든 과정을 겪어야 실력이 된다고 말해주었으나 내 격려는 아홉 살의 마음에 닿기엔 멀었다. 결국 아홉 살의 요청으로 수영수업을 참관한 후, 정말 힘들었겠더라 하고 아홉 살의 마음을 알아주었을 때, 아홉 살의 힘듦은 약간 가벼워진 듯했다.



  내가 공감이었다면, 아빠는 도발을 선택했다.

  “주윤! 아마 지금 엄마랑 수영하면 누가 이길까? 이번 여름휴가에 수영장 가서 엄마랑 대결해야지!”

우린 그렇게 초여름부터 수영대결이라는 단어 앞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글거렸다. 내가 수영 강습을 다시 시작했을 때,

  “엄마, 오늘 수영 다녀왔어요?”

하며 경계하던 아홉 살의 긴장을 나는 안다.



  누구보다 오늘의 수영 대결에 진심이었던 아홉 살이 자신이 만든 룰 안에서 졌다. 평소처럼 울지도, 떼쓰지도, 기분 나쁜 내색을 비추지도 않았다. 그저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이고는 새로운 룰을 제안한 후, 다시 유유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계속된 우리의 레이스에서 왼손 캡플립까지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아홉 살이 실패 앞에서 보여준 태도에 나는 반했다. 지금 내 앞의 아홉 살은 청개구리처럼, 소금쟁이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나의 아들이 아니었다. 진심을 다해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며, 다음을 향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의연함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나는 유유히 먼저 물을 차고 나가는 아홉 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유연한 그의 평영을 보고 질문을 했다.

  “주윤! 평영 할 때 팔이랑 발차기 박자를 어떻게 맞춰야 해? 엄마는 이게 잘 안돼.”

  “아~그거요? 발을 먼저 쭉 차서 두 발을 모으고, 그다음에 팔을 저으면 돼요. 자 주윤이 따라와 봐요!”

  내 질문은 격려나 칭찬이 아니었다. 평소 발차기와 손의 박자가 맞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던 마흔의 엄마가 평영을 한창 연습 중인 아홉 살 아들에게 배우고 싶은 진심의 질문이었다. 내 질문에 아홉 살은 우쭐대거나 잘난 체하는 것 없이 기꺼이 진심을 다해 온몸으로 먼저 앞으로 나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 여름밤의 수영장에서 우린 동등했고, 서로 진심이었다. 엄마고 아들이고, 어른이고 어린이라는 역할은 없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수영을 배우는 평등하고 개별적인 학습자였다. 공정하게 대결을 했고, 모르는 것은 알려주었다.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보며 각자 힘차게 발을 찼고, 팔을 돌렸다. 그리고 각자 차오르는 숨을 알아주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마흔의 엄마는 아홉 살과 같은 출발선에 서있다는 게 참 좋았다. 나도 너도 같은 레벨에서 배우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벅찬 일인 줄 몰랐다. 우린 어느새 함께 배우다가, 서로의 힘듦을 알아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너는 그만큼 자랐고, 나는 다행히 배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흔의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아홉 살의 너는 배우는 게 많다. 마흔의 엄마는 오늘 여름의 수영에서처럼 또 같은 출발선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 아니, 가끔은 너에게 배우고 격려받고 싶다. 같이 물을 베고 누워 발차기를 하고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힘듦을 격려하고 싶다.



  여름햇살이 푸른 수영장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여름날의 수영장에서 우리는 평등했다. 누가 누구를 위해 놀아주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냥 같이 놀았다. 각자의 손을 힘껏 젓고, 첨벙첨벙 발차기를 하며 나란히 물을 달렸다. 함께 신나게 놀고 나니 나는 또 너와의 평등한 출발선을 소망한다.



  좋았으니까. 어쩌면 올 여름 최고의 순간이었으니까. 배우고 또 배워야 할 충분하고 확실한 이유를 쥐어준 여름이었다.


  (다음은, 나의 영어 공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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