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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26. 2022

나는 오늘도 시간과 계절을 모으는 라이딩맘입니다.


  “이따 만나!”

  나의 말에 1초간 살짝 돌아보며 손 흔드는 그 남자를 올려 보내고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나는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엑셀과 브레이크의 리듬에 발을 맡긴 채 성실히 운전하고 대기했던 라이딩맘이다.      


    

  나는 대게 한 시간 반 정도 그가 있는 곳 근처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는 장소는 많은 시간 그와 내가 함께 타고 온 우리의 자동차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프라이빗하기에 콤팩트해야 하는 좁은 공간. 창문을 살짝 열고 차의 운전자 시트를 뒤로 쭈욱 밀어둔다. 노트북을 꺼내 어떤 글을 써볼까 하고 고민하다가 한 문장을 어렵게 쓴다. 그러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데려온다. 가끔 내 의도와 다른 글이 나오는데, 내 손가락의 움직임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럴 수도 있지. 봄햇살에 아직 데워지지 않아 설익은 연두색 가벼운 바람이 가끔씩 불어온다. 그래도 봄이라고, 차 안에 있다 보니 살짝 맺힌 이마의 작은 땀방울에 연두색 바람이 닿는다. 내 이마도 봄의 가벼운 연두색이 된다.      


    

  시간은 지나 무더운 여름의 태양이 짤주머니에 나를 넣은 것이 분명한 여름이 되었다. 짭짤한 푸른 습도를   머금은 무거운 공기에 여름의 태양이 열기를 더하는 계절.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여름은 푸른 대양이 승리하는 곳이다.  타는 듯한 여름의 매서운 태양도 대양의 습도가 데워지는 것을 도울  날려 보내는 것은 어렵나 보다. 덕분에  여름, 습아일체의 계절이다. 더욱이 여름의 한가운데, 하오!  안은 마치 압력밥솥인 것만 같다. 유월의 장마까지는 그래도 창을 열면 가끔 반가운 바람이 느릿하게 나를 찾아왔다. 그늘에 차를 세우고 땀을 닦아가며 기다리기도  봤지만, 이젠 여름의 한가운데이다.



  치익치익! 차 안은 뜨거운 온도에 더해 압력도 가득히 차오른다. 온 몸에서 수증기가 뿜어나오기 직전!  안은 위험해! 나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여름의 습도를 온몸에 붙이며 걸었다. 그러다 카페 문을 열면, 그곳은 다른 차원의 대기를 가진 우주이다. 나는 스르륵  산뜻한 카페의 세계로 들어갔다.           


 

  기다림의 계절에서 꽤나 근사한 날씨는 비가 오는 날이었다. 평소 나는 비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 오는 날 그를 차에서 기다리게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순도 높은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투둑 투둑.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이 차갑고 납작한 차와 만나 만들어내는 소리는 사심 없는 사실의 소리였다. 그 빗소리에는 어떤 숨은 의도도, 불안도, 생각도, 걱정도 없었다. 가볍고 여린 물방울이 높은 무게의 에너지를 담아 내려오는 길에 어쩌다 닿은 곳이 마르고 건조한 철이었기에 만들어진 우연의 소리였다. 이 단순함이 좋았다. 정직해 보였다.



  이렇게 내 육아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차 안에서, 집에서, 그리고 어떤 날은 카페에서.           



  매일 아침의 등굣길에 나는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다. 학교 입구에 도착하면 우린 가뿐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오늘도 즐겁고 안전한 하루 보내!”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본 후 다시 되돌아 나온다. 나의 기다림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하교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나의 미션은 간식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보냉백 안에는 귤이나 블루베리 같은 과일을 넣은 빨간색 작은 도시락, 아이가 좋아하는 크래커, 마쉬멜로우, 우유가 주로 들어있다. 무더운 여름 이후엔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이 추가되었다.

  “짠! 오늘은 어떤 간식이 있을까?”

나의 말에 아이는 간식 보냉백을 열고 간식을 하나하나 먹는다.

  “엄마! 얼음물에 작은 얼음 먹었어요!”

  “스모어! 만들어먹어 볼까요?”

  “복숭아 맛이 좋으라고 아이스크림보다 복숭아를 먼저 먹고 있어요.”     



  운전을 하는 내 뒤에서 아이는 간식의 세계를 즐겁게 탐험하고 있다. 그 매서운 여름의 태양이 못한 일을 아이의 목소리는 가볍게 해낸다.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무겁고 텁텁한 여름의 공기는 가볍고 산뜻한 내 아이의 공기가 된다. 생기 있는 아이의 세계가 된 나의 차 안. 아이의 목소리에 나도 취한다. 내 마음이 어느덧 뽀송해진다.


  ‘어쩌면 아이는 교실에서 나오면서부터 오늘의 간식 도시락을 기대하며 오지는 않았을까.’

  ‘저 허름한 보냉백을 여는 순간, 오늘 학교에서의 수고들이 시원하게 승화되는 기분을 느끼겠지.’



   아이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혼자서 만족하며 답을 내린다.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은 참 명랑하다.

  “엄마의 기쁨이야!”          



  하교 후, 함께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을 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날도 있다. 그런 때마다 안녕! 이따 엄마가 다시 올게. 하고 아이를 들여보내면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기다리는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근처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린다.          


 

  초등학교 1학년 적응을 위해 가정에서 준비해야 하는 일을 찾아보면 구체적인 행동들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젓가락질, 200ml 우유팩 입구 여는 방법 익히기, 응가 후 엉덩이 닦기, 화장실 물 내리기, 수업시간 의자에 앉아서 경청하기, 도움을 요청하기, 하지 마! 하고 분명히 말하기.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당황스럽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기술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겪을 어려움을 최소화해주고 싶은 부모와 전문가들의 도움은 우리 아이들을 돕는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도 그랬다. 분유 타는 법, 기저귀 가는 법, 트림 시키는 법, 아이의 수면 텀 등 처음인 부모를 위한 육아기술은 그 순간 육아 준비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육아의 순간이라는 낱개의 알알들은 결국 나의 결로 꿰어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공유되는 기술이지만 어떤 마음의 태도로 꿰어가느냐에 따라 각자의 육아는 다른 결을 갖는다. 공유된 육아의 기술을 발휘하는 순간들을 안전하고 단단하게 꿸 수 있는 끈을 마련하고 그 알알을 하나하나 손으로 꿰는 마음의 태도는 힘이 세고 오래간다. 육아의 기술은 발달과업을 완성하면 지나가지만, 단단한 줄과 알알을 꿰어가는 내 손길의 태도가 모여 내 육아의 뼈대를 세운다.



   나는 몰랐다. 육아란 나의 의지를 어느 정도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을. 내 의지와 계획대로 내 하루를 결정하고 행동했던 자유로운 성인인 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위해 내 하루의 시간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 밥을 못 먹고 아이 밥을 준비해야 했고, 내가 커피를 마시러 나가고 싶은 때 아이가 있어 집 안에 있어야만 했다. 그때마다 답답했다. 나도 나대로 행동하고 싶은데, 아이만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억울했다. 나는 육아 앞에서 서툴게 대처하는 나를 보며 나의 모성을 여러 번 의심하곤 했다.      



  ‘왜 나는 아이가 아직은 덜 예쁘지? 모성이 부족한 엄마인가?’

  ‘낮잠을 잘 시간인데 왜 안 자는 거야. 그 시간에 나 커피 마시려고 했는데. 아이는 존재만으로 사랑이라는데 지금 낮잠 안 자는 아이 보고 화나는 건, 내가 못된 엄마인 건가?’   


       

   이때 엄마의 서툰 마음도 괜찮은 거라고, 이것도 과정이라고, 아이와 내가 쌓아가는 둘만의 그 순간을 믿으라는 다정한 결을 담은 말이 소중했다. 그런 말들이 내 의심의 순간에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지나온 육아의 순간들을 단단한 육아의 줄에 알알이 꿰는 과정에서 나는 다정한 말들 덕을 많이 보았다. 다정한 말들은 육아에 대한 삐쭉삐쭉한 내 마음의 태도를 고르게 매만져주었다.



  첫 육아 이후 나는 이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육아란 아이를 위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수정하는 것. 나에게 그것은 나의 시간, 그리고 나의 기회이다.       



  나는 지금은 육아의 파도를 서핑할 타이밍임을 알고 기꺼이 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진심으로 이 파도를 타보고자 내 마흔의 시간동안 해야 할, 하고 싶은 다른 일보다는 아이와 등교를 하는 아침 시간을, 아이 간식 도시락을 싸는 일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매일 한 시간여를 계절이 바뀌는 밖에서 기다린다. 아마 데이트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너무 지당한 이별 사유이겠지만,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게 참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아이를 위해서는 괜찮다. 자연스럽다.


          

  아이를 다시 만나면 나는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오늘은 어땠어?”

  하지만 아이는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묻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무엇을 했는지. 나는 내 시간을 내어주고 수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아이는 내 그런 행동이 당연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은 두 계절에는 가끔은 말해주어야겠다. 내가 너를 기다리며 어떤 계절의 오후를 느끼고 왔는지를. 너를 기다리는 것이 내 일이고,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냈는지를. 그렇게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은은히 비춰주면, 너는 아직 모를 어떤 마음들이 네 주위에 있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오늘도, 나는 아이를 기다리고 데릴러간다.

나는 오늘도 계절과 시간을 모으는 라이딩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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