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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11. 2023

우주 못난이도 괜찮아지는 곳

  "남편~남편. 남편? 남편! 남편~내 커피는 어디 있어?"

  얼굴은 땡그랗게 붓고 머리는 부스스해서는 하루 중 가장 못생긴 얼굴로 느릿하게 일어난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있던 남편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 기분이 좋으면 남편의 똥똥한 배에 내 배를 포개며 가벼운 포옹도 한다. 매일은 아니다. 대부분 겨우 일어난 나는 소파로 다시 눕기 일쑤다.

  "지금 주려고 했지."

  남편은 참 마음이 넓기도 하지. 이 꾀죄죄한 세상 못난이 꾀죄죄한 부인에게도 상냥할 수 있다니.



  아침 운동을 하고 온 남편은 나와 주윤이를 깨우고, 주윤이 아침을 준비한다. 시리얼, 삶은 달걀, 오렌지를 각각 접시에 담아두면 주윤이도 부스스 식탁에 가 앉는다. 두 왕느림보 거북이들은 천천히 아침을 먹고는 주윤이는 등교 준비를, 나는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 최대의 과업인 머리카락 말리기를 하는 참이면 남편과 주윤이는 등교와 출근을 한다. '안녕! 이따 만나!'



  어떤 옷을 입을까 잠깐 고민을 하고는 오늘 스케줄에 맞는 옷을 입는다. 선크림만 바르고 다녔던 나는 요즘은 기미가 좀 진해지는 것 같아 쿠션도 톡톡 바른다. 향수도 4번 톡톡 분사하고, 아이라인도 마스카라도 하지 않는 맨눈에 그래도 속눈썹을 뷰러로 3단 집었으면 준비 끝. 그렇게 출근 전 거울을 보니 아침에 일어났던 부스스한 사람이 사라졌다. 말끔하고 단정한 사람이 거울 앞에 있다.



  퇴근 후, 씻고 나서 옷장에서 제일 허름한 티셔츠를 꺼내 입는다. 머리는 당연히 질끈 묶었다. 거울 속 나는 아침의 부스스한 못난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주윤이랑 지내다 보면 곧 남편이 퇴근한다.

  "아빠!!!"

  "남편!!!"

못쉥 부인과 장난꾸러기 아들이 남편을 맞이한다.



  이렇게 남편은 하루 중 가장 못생긴 나를 두 번 만난다. 밖에 나갈 때는 옷도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향수도 뿌리는 나는 남편이 모르는 사람일 것만 같다. 남편의 기억 속 내 모습은 헐렁한 남편 티셔츠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바짝 묶고, 얼굴은 유분기로 번들거리고, 자주 얼굴이 팅팅 부어있는 지구 못난이일 게 분명하다. 아니 우주 못난이일까.



  그럼에도 못쉥 부인은 천연덕스럽게 '남편!'을 하루에 백번은 부른다. 남편이 거실에 걸어 다니면 "남편! 나 온수 반 정수반 물 한 컵 주려고 서 있는 거야?"하고 물 한잔을 부탁한다. 소파에 쉬고 있는 남편에게 "남편! 나 오징어는 언제 구워 줄 거야?" 하고 남편을 또 부른다. "부인은 진짜 나 잘 시킨다. 으이그~", "남편 그만 불러!" 하며 성큼성큼 부엌으로 걸어가서는 물 한잔 떠다 주는 남편을 나는 좋아한다.


    

  어느 깊은 밤, 혼자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간다는 것이 새삼 눈물 나게 감사했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내 옆에 있고, 내가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다니! 게다가 그 사람이 내 말에 화답해 주는 일상을 나는 살아가고 있다. 이 것이 있어 내 납작한 집 밖에서의 삶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따듯하고 보드랍게 부풀어 오른다.  



  한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믿을 구석 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부르면 장난스레 대답하며 나에게 물 한잔을 떠다 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일 내 치약과 칫솔을 서랍 위에, 문 아래에, 수납함 안에 숨겨놓으며 신나 하는 앞니 빠진 아홉 살 장난꾸러기도 있다. 세상 앞에 납작하고 쥐 죽은 듯 보이지 않게 지내던 나는 이 두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보드랍게 부풀어 오른다. 우주 못난이 얼굴을 한 아침의 나마저도 포옥 안아주는 우리 셋의 작은 공간이 이 커다란 우주 안에 있다. 자그마하지만 확실한 온기를 가진 이 곳에 두 남자가 있어서 나는 괜찮다.



(그래도, 좀 예쁜 모습은 보여줄 필요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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