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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06. 2023

기영이 바나나 먹던 시절이라고?

고무신 안 신었지만 나에게도 바나나가 그랬어.

사무실 바로 옆자리와 그 맞은편에 MZ 둘이 있다. 91년생과 92년생.

나와는 띠동갑을 넘어선 나이지만 그녀들에게서 MZ의 단점으로 자주 지적되는 특성은 찾기 힘들다. 어쩌면 그녀들의 빼어난 인성과 사회성으로 왕언니를 배려 중인지도 모른다.(사촌언니 중에 나랑 동갑이 있다며 언니 같은 느낌이라고 했지만 난 알고 있다. 이모나 고모 중에도 내 또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런 그녀들이 무슨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92년생 S대리가 91년생 P과장에게 한 마디 한다.

"아우 과장님, 기영이 바나나 먹던 시절 살았던 것처럼 그러지 마요!"

깔깔 웃는 그녀들에게 기영이라곤 가수 박기영밖에 모르는 아줌마가 염치없지만 끼어든다.

"기영이 바나나 먹던 시절이 뭐예요?" 

기영이가 누군지 몰라도 시절이란 말에서 나의 바나나에 대한 추억과 왠지 접점이 있을 듯한 느낌이다. 만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기영이가 바나나가 너무나 귀했던 시절 바나나를 먹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거라고 했다. 78년생인 나는 92년 검정고무신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중2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이문세와 변진섭 그리고 015B 노래를 좋아했던, 가요가사와 시를 베껴 쓰던 사춘기 소녀가 검정고무신에 눈길을 줬을 리 없다. 다만 최근 저작권 이슈로 검정고무신의 캐릭터와 시대적 배경이 우리 아빠 어린 시절 즘이라는 것만 안다. 1950년대 혹은 60년대까지 가지 않아도 80년대에도 바나나는 충분히 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녀들은 모르는 듯 보였다.

"잉? 바나나가 귀했던 거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나도 어릴 적에 병원에 입원해야 바나나 먹을 수 있었는데?"라고 하자 그녀들의 눈이 표정관리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눈이 되었다. 그녀들은 부모님에게 라떼스타일로 바나나가 귀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으니 매일 얼굴 보는 회사 큰 언니가 그렇게 살았을 거라곤 상상해 본 적 없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어릴 적 바나나는 병원에 입원해서 엄마가 "뭐 먹고 싶은 건 없어?"하고 물어보면 맥 빠진 목소리로 "바나나요."라고 답해야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었다. 장염에 걸렸던 그때도 퇴원 즘 내 것 두 개 동생 거 한 개 그렇게 세 개만 사 오셨던 듯하다. 대략적인 느낌으로 80년대 내가 초등학생일 때 바나나 한 송이는 지금 값어치로 10만 원도 넘는 가치일듯하다 했더니 MZ들은 안 믿는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그녀들의 눈을 보니 마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썰을 풀고 있는 기분이다. 검색창을 열고 물가 자료를 찾아보니 1984년 짜장면이 600-700원 정도일 때 1.5킬로짜리 한송이가 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짜장면이 지금 7천 원 하는 곳 찾기 쉽지 않으니 10만원즈음이란 내 느낌이 거의 정확하다. 구체적인 숫자만큼이나 감각적 기억이 놀라울 때가 있다. 신문 사진도 국사교과서 사료 같다고 한다. 나에겐 또렷한 추억이 그녀들에겐 근대사구나. 

1984년 과일물가 신문기사


기영이 바나나 하나.

나의 첫 바나나 추억에 해시태그를 붙이면 '#생파 #부자 #돈은좋은거구나' 즘일 듯하다. 85년 초등 아니 국민학교 1학년때 우리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도 모범적이고 참하고 차분하고 키도 큰 여자친구였다. 친구네 집은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이 꽤 널찍하고 거실엔 브라운색 고급진 가구와 피아노가 있는 전형적인 부잣집이었다. 당시엔 가정환경조사서에 집에 차가 있는지와 함께 피아노가 있는지도 조사하던 때였다는 말에 90년 대생들은 기함을 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피아노보다 더 내 눈에 띄었던 건 20명쯤이 초대된 생일상에 모든 자리 앞접시마다 가지런히 놓인 바나나였다. 바나나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바나나를 제외한 모든 배경이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 그날의 생일파티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이미 넘치게 행복한 파티가 되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1인 1 바나나'라니 당시 8살에겐 횡재도 그런 횡재가 없었다. 당시 생파는 배민도 요기요도 없던 시절이니 당연히 모든 음식이 주인공의 엄마표였다. 생파를 가면 그 집 떡볶이와 김밥은 어떤 맛이려나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다른 음식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겐 아무 날도 아닌데 바나나를 먹은 "운수 좋은 날"이었으니깐. 그 이후로 우루과이 라운드가 체결되기 전까지 어느 친구의 생일파티에도 1인 1 바나나는 없었다.


기영이 바나나 둘.

나의 두 번째 바나나는 좀 슬픈 바나나이다. 초등학교2학년 당시로선 드물게 해외출장을 다니셨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음주운전을 하던 차가 아빠가 운전하시던 차를 치어서 아빠차는 길밖으로 밀리며 전복이 되었는데 정말 하늘이 도와서 빗물 받는 큰 저수통에 차의 중간 부분이 쏙 들어가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콧뼈도 부러지고 병원에서 입원복을 입은 아빠를 보고 나니 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속상했다. 사람들이 병문안 오면서 사온 주스나 간식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난 어느 날 진갈색의 고급진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바나나 한송이를 들고 병문안을 오셨다. 바나나 때문에 그 아저씨가 기품 있어 보인건지 기품 있는 아저씨가 바나나를 사온건지 그 진실은 이제 알 수 없다. 다만 9살 어린이 눈에 바나나를 든 그 아저씨는 남다른 격이 느껴졌다. 슬프고 마음은 아팠지만 아빠의 입원실에서 먹는 바나나도 향긋하게 달콤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생에 첫 bitter-sweet는 그 바나나였을 거다.


지금은 그 어느 과일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바나나. 사시사철 가격변동도 크게 없고 백화점 지하, 마트는 물론 동네슈퍼나 작은 편의점에서도, 심지어 스타벅스에서도 살 수 있는 흔한 과일이다. 흔해진 덕에 사람마다 바나나 취향도 생겼다. 덜 익은 바나나부터 푹 익은 슈가스팟 가득한 바나나까지. 어릴 적엔 초록바나나부터 껍질이 검게 변한 바나나까지 다 맛있게 먹었지만 이젠 양끝에 살짝 초록빛이 남아있는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에 덜 단 바나나를 좋아한다. 우리 집 아이들도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그들에겐 바나나에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은 없을 것이다. 바나나가 너에겐 어떤 과일인지 물어보니 먹기 간편하고 만만한 배고플 때 더 맛있는 과일이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바나나가 멸종위기라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먹던 바나나는 이미 멸종했고 지금의 바나나도 위험하다는데 가슴이 철렁하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옛날의 향긋 달달한 추억의 바나나이야기는 들려주고 싶지만 바나나가 너무 먹고 싶어도 먹기 힘든 상황은 물려주고 싶지 않기에. 다시 입원이나 해야 먹는 과일이 되지 않도록 바나나야 버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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