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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Jan 24. 2024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엄마 껌딱지의 충전놀이

유독 엄마껌딱지였던 둘째 별이.

양가 할머니들은 끔찍하게 손주들을 예뻐하는 손주바라기들 이셨지만 할머니들 등에 한 번도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첫째 강이는 말을 못 할 때에도 포대기를 들고 할머니한테 가서 웃는 아이라 할머니 등에서 어화둥둥 많은 사랑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둘째 별이는 뭐든지 '엄마냥(엄마랑)'을 달고 살던 아이. 종종은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건지 엑스맨인 건지 헷갈렸을 정도다.


중학년인지 고학년인지 애매한 초등4학년을 마무리하고, 명실상부한 고학년인 5학년이 되어가는 지금 즘이면 별이가 나를 귀찮아해서 나에겐 많은 자유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고 그런 시간이 늘어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가 너무 좋고 엄마가 회사 가는 게 너무 싫단다.


아이들이 어려 엄마가 회사 가는 걸 너무 싫어할 때 워킹맘 선배들이 했던 말이 있다. "조금만 버텨봐. 3, 4학년만 돼도 엄마한테 절대 회사 그만두지 말라고 그래. 전업맘인 엄마들이 그쯤 되면 정말 배신감 작렬이래. 그렇게 엄마엄마 부르며 울어서 일 그만두고 힘들게 키웠더니 엄만 왜 일 안 하냐고 묻는다더라구."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케바케, 애바애였던 거다. 예비 5학년이라는 라벨을 달고도 종종 물어본다. "회사 그만두면 안 돼?"



그런 그녀를 두고 지난 금요일은 회사 회식, 토요일은 같이 글 쓰는 분들과 모임으로 저녁에 집을 비웠더니 일요일 오전부터 그녀에게 애정결핍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살짝 삐진 듯 칭얼거리며 따라다니더니 안방에 따라 들어와 방문 앞에 드러누웠다. 나를 못 나가게 하면서 안방에서 아빠나 오빠의 방해 없이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심산이다.


"삐삐삐 충전이 필요합니다. 곧 방전돼서 전원이 꺼집니다. 빠바바바~~~ 암! 금별텔레콤!"이라고 하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아이 옆에 누워 목뒤로 내 팔을 넣고 안아준다. 허그를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 지금도 하루를 허그로 시작해 허그로 마무리한다. 특히 뭔가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은 때는 "나 코알라 할래." 라거나 "사랑충전해 줘요." 하고 안겨왔다. 코알라나 충전은 소파에 앉아있으면 코알라처럼 온몸을 밀착시켜 안기는 포옹이다.

코알라처럼 안겨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방전된 척 있길래 내가 귀에다 속삭였다. "충전을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케이블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삐. 삐." 포옹이 느슨하다는 메시지를 주신다. 팔과 다리를 휘감아 더 밀착해 안으니 충전이 시작된다.

"충전 시작 0%------------ 0%----------- 0%" 한참이 지나도 계속 0%에서 올라가질 않는다.


장기전이 될 듯 한 예감에 더 꼭 끌어안으면서 "고속충전을 시작합니다." 했더니,

"이 제품은 2013년에 나온 어린이날 에디션 키즈폰이라 고속충전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0%...... 0%......"

(아이는 2013년 어린이날 태어났다. ) 기가 차서 막 웃었더니 눈도 안 뜨고 따라 웃는다. 포기하고 아예 누워서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손을 뻗어 침대 위에 있던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아이는 더운 것을 못 참으니 충전시간을 당길 무기는 이불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까지 0%였던 충전이 몇 분 지나지 않아 금방 차올랐다. "곧 충전이 완료됩니다. 98%........ 99%......... 100%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엄마가 이틀이나 저녁에 없어서 내가 정말 방전되었잖아."

"누가 들으면 엄마가 이틀이나 집에 안온줄 알겠어. 어젠 엄마랑 잠들고 엄마도 니 옆에서 잠들었었는데?"

"그래도 엄마가 고픈 걸 어떡해..."

"사춘기 되면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싫어진데. 너도 그땐 엄마가 나가는 걸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

"아니거든!!! 나는 사춘기도 엄마한테 들러붙는 사춘기 할 거야."

"별아, 사춘기는 엄마랑 정서적으로 연결된 탯줄마저도 끊어내는 거야. 그래야 어엿한 어른이 되는 거고."


의연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지만

이미 큰 아이가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어서

나를 떠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자주 실감하는 요즘

막내도 커서 날 떠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제법 쓸쓸해진다.

그런데 엄마한테 들러붙는 사춘기라니! 웃픈 사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별아,

그런데 엄마랑 정신적 탯줄이 끊어지고

친구들이 더 좋고,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겨도,

독립해서 살 수 있을 만큼 자라더라도,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네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기분이 가라앉을 때,

누군가 너를 아프게 하거나 지쳐서

휴식과 힘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엄마한테 오렴.

힘껏 안아주고 충전해 줄게.


이렇게 마무리를 써놓고 보니 어딘가 모르게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에 찝찝했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짱구를 굴려 생각해 낸다. 아무리 내 글이 읽히지 않아도 표절시비에 휘말리면 안 되니깐.

한참을 생각하다가 생각이 났다. 내가 읽은 에세이가 아닌 아이들 책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 안녕달, 윤여림의 그림책

아이들 읽어주다 엄마들이 울게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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