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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19. 2024

초등 사고력, 심화수학 필수일까요

초등 수학, 문제풀이보다 더 중요한 

[초등고민게시판]

작성자: 심화로노화   작성일:2024.12.18


두 달째 두 아이 수학 고민으로 늙고 있어요. 4학년인 큰 아이는 수학감은 둘째보단 있는 듯했는데 학원에서 최상위 풀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이 전쟁이에요. 응용까진 그리 어렵지 않게 풀었는데 최상위 문제는 반도 못 풀고 너무 힘들어하고 짜증이 극심해서 집안 분위기를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학원 다니기 싫다는 말은 안 했던 아이인데 최상위수학 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저도 그 짜증 다 받아주기도 점점 버겁고요.
 
초1 둘째는 수학감은 없지만 무척이나 성실해요. 그래서 더 짠하고요. 사고력수학학원 제일 낮은 반을 1년이나 다녔는데 레벨도 안 오르고 그러니 친구들 다 올라갔는데 초기 멤버 중 독야청청 그 반에 남아있어요. 사고력이 교과 심화를 위해선 꼭 해야 한다던데 주변 보니 안 시키는 집도 있는 거 같아서 시키지 말까 싶다가도 사고력 했던 큰 애도 심화에서 버벅거리는데 이것마저 놓아도 될까 싶어요. 사고력 수학학원 두 군데 다시 레테를 봤는데 전부 낮은 반이고 1년을 했는데도 그런 거면 그냥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맘들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유튜브를 봐도 사고력 수학과 심화수학, 연산까지 다 필수라던데 이 3가지를 다 학원을 보내기도 정신없고 제가 봐주기도 보통일이 아니네요  



아마 '심화로노화'님 말고도 많은 분들이 고민하시는 부분일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수학에 심화문제집이나 사고력문제집 등을 모두가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문제를 푸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은 문제 풀며 요리조리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경시대회를 나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요. 그러나 그걸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은 5%도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 심화도 사고력도 필수처럼 되어서 그걸 안 하면 불안해지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렇게 즐기는 아이 혹은 최소한 괴롭지 않은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사고력, 심화하다가 수학이 싫어지고 수학에 질려버리면, 그나마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아이들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쉬운 거 같아요. 사실 대부분 아이들은 개념, 유형 문제집 한 두권 꾸준히 풀어내기도 그렇게 녹녹지 않습니다. 그것만이라도 우쭈쭈 해가며 수학이 싫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초등, 특히 저학년은 배운 개념이 얼마 되지 않기에 심화문제, 사고력문제라고 하면 주로 말을 길게 물고 꼬아서 풀기 어렵게 만든 문제가 많아 보여요. 어른이라도 답을 모르겠는 과제가 주어지면 월급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내도 힘들고 하기 싫지 않나요?  


수학을 좋아해도 고3 수능날까지 힘들고 괴로운 순간, 못해먹겠단 생각이 드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시작하는 아이들이 그 괴로움과 싫음을 견뎌내고 버티며 수학을 하려면 정말 많은 의지를 써야 가능하지요. 의지는 정말 소모품이 확실하거든요. 수학으로 괴로운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학을 잘할 확률은 줄어들거라 생각해요. 다이어트가 길어질수록 힘들어지는 것처럼요.


특히 초등 저학년인데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시키지 마세요. 차라리 스도쿠나 루미큐브, 파라오코드 등을 가르쳐서 같이 게임하듯 즐겨보세요. 스도쿠나 보드게임도 생각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숫자랑만 친해져도 수학을 좋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그런 보드게임만 잘해도 "헐, 숫자에 강한데!"라고 칭찬합니다. 사실 숫자와 산수는 수학이 아니지요. 연산 잘한다고 수학적 사고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그런 칭찬을 들으면 스스로에 대한 셀프이미지가 좋아집니다. '내가 숫자를 잘 다루는구나!' 하고요. 또, 스도쿠나 보드게임일지언정 약간의 성취감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게 시작이지요. 근자감의 시작. 수학은 비키니만큼이나 기세니깐요.


저보다 더 많이 아이들을 키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큰 아이 중2(벌써 예비중3이네요)되고 키도 몸도 어른만큼 커지고 나니 초등 시절 모든 사진들이 귀엽고 그래도 어린이였던 그 모든 순간이 참 귀했다고 자주 생각해요. 저는 매일매일 그렇게 물고 빨았는데도 그렇게 많이 안아줬는데도 돌아보니 아쉽습니다. 불안함에 그 예쁜 아이들을 못 보고 아이들 문제집만 보고 있진 마셔요.


저희 큰 아이는 수학머리가 뭐 뛰어난 건 아니어도 수감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도 초등 때는 나가 놀고 싶어서 심화나 사고력 풀기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시켰는데 중등 가더니 스스로 찾아 하더라고요. 잘한다의 기준은 모두 다르니 판단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수학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스도쿠와 오목, 루미큐브 등을 또래 중에선 꽤 잘하는 편이라 뭔가 '수'에 대한 자신감도 있는 듯하고요.


둘째는 여아라 그런지 욕심이 많아서 4학년2학기즘부터는 자기도 '최상위수학'을 풀고 싶다면서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사회적 욕심이지 수학자체에 대한 욕망은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러나 처음부터 최상위수학 문제집을 다 풀려는 욕심을 내면 아이도 저도 지칠 것 같아서 제가 낸 아이디어는 '하루 한 문제만 풀기'입니다. 앞의 주제별 유형은 건너뛰고 뒤에 고난도 문제를 읽어보면서 '어 이 문제 재미있겠는데?' 싶은 걸 아이가 스스로 고르라고 합니다. 아이는 사실 재미보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거, 즉 풀 수 있을 거 같은 걸 고릅니다. 문제를 읽으면서 최소한 문제가 이해되는 걸 고르겠지요. 그럼 문제를 잘 골랐다고 마구 칭찬해 줍니다. 문제를 풀기 전부터 잘 골랐다고 칭찬받으니 어려운 문제지만 그렇게 미워하진 못하겠지요. 풀지 않을 문제도 읽으면서 문제를 이해하려고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겠지요. 이러한 과정자체가 사고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도 믿어보면서요. 물론,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엄마가 마음이 편해야 아이들도 편해지니깐 이런 정신승리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고른 한 문제를 10분 정도만(아이가 사정하면 20분까지) 생각해 보고 못 풀겠으면 그건 그날은 거기서 끝. 즉 심화 문제는 하루 10분만 하는 거죠. 운 좋게 빨리 풀어도 절대 두 개는 안 되는 겁니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깐요.) 10분 혹은 20분을 고민해도 못 풀겠는 문제는 그다음 날로 넘깁니다. 사실 비유로 적합지 않지만 아이에겐 원래 수학자, 과학자들도 한 가지 문제를 고민하면 목욕을 하다가도 그걸 풀어낼 아이디어가 떠올라 유레카 하고 옷도 안 입고 뛰쳐나오게도 되는 거라서 하루 한 가지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고 밑밥을 깔았어요. (그런데 종종은 정말 그 문제를 학교 가서도 생각해보기도 하더라고요.)


하루 한 개는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스트레스받으면서 할 정도도 아니니깐요. 그러다 풀기도 하고 못 푸는 날도 많아서 그런 날은 제가 힌트를 주기도 하고 최장 3일간 한 문제를 풉니다. (단계별 힌트를 주고요) 이렇게 풀면 문제집 한 권에 한 학기 기준 5~60문제 풀까 말까였어요. 문제집 값이 아까우시겠지만 뭐 학원 전기요금 내주는 거에 비함 땅콩 같은 금액이고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매일 조금씩 고민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요? (제가 기준이 많이 낮나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이 사회적 동물이 자기도 '최상위 푸는 사람'이라는 셀프이미지를 가지더라고요. 귀엽지만 진지하게 동의해 주었습니다. 기세는 꺾으면 안 되니깐요. 그렇게 초등 저학년부터 수학이 싫어질뻔한 둘째가 그래도 한 학기 선행정도는 해가면서 어려운 문제도 조금씩 풀어가면서 공부정서 해치지 않고 하고 있어요. 


엄마가 공부를 좋아지게 하는 건 어렵지만, 싫어지게 하는 것은 매우 쉬워요. 그래서 부모역할이 참 어렵습니다. 다만, 사춘기로 내 품을 떠나기 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엄마아빠랑 사이좋게, 공부가 싫지 않게." 까지라고 믿고 거기까지만이라도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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