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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11. 2024

눈물의 이유

툭하면 우는 아이, 어찌해야 할까요?

[육아고민 게시판]

작성자: 울버린도울린    작성일: 2024.12.11

6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겁도 많고 정도 많고 말도 많은 아이인데 눈물이 많은 게 좀 걱정이에요. 감수성이 풍부해서 조금 슬픈 동화책만 읽어도 엉엉 울고,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나무가 춥겠다며 눈물이 그렁그렁 합니다. 가만 보면 사실 웃기도 잘 웃기는 해요. 그런데 아직은 유치원생이니깐 울어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거 같고 친구들도 토닥이며 위로도 해주지만 7살만 되어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울보라는 별명이라도 얻게 될까 걱정이에요.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비슷한 아이 키워보신 선배맘님들 조언 부탁드립니다.


글만 읽어도 저를, 그리고 제 아들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아요. 아이가 울면 난감하고 당황스럽죠. 또 우리 사회가 은근히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면도 있습니다. 어른들 대부분이 우는 것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것' 혹은 '고쳐야 할 것'처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 같아요.


저는 잘 울어요.

별거 아닌 일에도 울컥해서 눈물이 나고 또 별거 아닌 일에 손뼉 치며 웃기도 잘합니다. 좋게 말하면 공감능력이 좋은 건데 나쁘게 말하면 감정이입이 과하기도 합니다.


저희 아들도 비슷해요. 울버린도울린님네 아드님과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요. 그 녀석이 네 살(세돌 되던 해)즘 제가 자장가를 불러주며 두 아이를 재웠어요. 저희 엄마가 저와 제 동생 어릴 적에 자주 불러주셨던 '섬집아기'를 불러주는데 그 가사 중에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라는 가사가 너무 슬프고 아기가 불쌍하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아기가 혼자 집에 남아서  많이 무서웠을 거야.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너무 속상했겠다." 하며 울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강아, 끝까지 들어봐. 엄마는 나중에 갈매기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이 급해져서 굴바구니가 차지 않았는데도 집으로 달려오잖아."라고 해도 "그래도 아직 아기인데 혼자 집에 있는 건 너무 슬프지."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아! 옛날엔 할머니랑 다 한집에 살았어. 할머니가 잠깐 빨래하는 사이에 아기가 혼자 잠든 거야. 가사를 잘 못썼네. 이렇게 바꾸자. '아기는 할머니랑 집을 보다가'로! 어때?" "응. 그게 낫겠어." 그 이후로 저희 집의 섬집아기는 할머니랑 같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원래 섬집아기 특유의 애잔함과 아련함은 조금 파괴되었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더 이상 울지 않으니 그걸로 된 거죠!


예전 많은 부모님들이 '남자는 우는 거 아니다!' 혹은 '왜 질질 짜고 그래? 울지 마. 뚝!'이라고 하기 일쑤였던 시절 저희 엄마는 그 감정들을 다 착한 마음으로 여겨주셨어요. 영화나 다큐를 보다가 저나 남동생이 울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곤 했어요.

"아이고 주인공이 너무 짠하고 안쓰러워서 우는구나 우리 딸 마음도 예쁘지!"

"우리 아들은 사회적 약자들한테 공감을 많이 해주는구나! 그 착한 마음이 엄마는 너무 좋다."

그 덕인지 저도 잘 우는 감수성 풍부한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예쁜 마음을 보려 노력하니 자라면서 점차 때와 장소를 가리면서 성숙해지더라고요.


또한 울 때마다 아이의 세밀한 감정을 읽어주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감정의 조절도 더 쉬워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잘 울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기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거 같아요. 감정이나 느낌을 쾌와 불쾌로나눌 뿐 섬세하게 어떻게 기분이 좋고 어떻게 기분이 나쁜지를 몰라서 표현도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도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이가 울면 슬프거나 속상한가 보다 하고 뭉툭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눈물의 이유는 매우 많아요.

억울해서, 답답해서, 놀라서, 화가 나서,

미안해서, 당황스러워서, 무안해서, 안타까워서,

아쉬워서, 불쌍해서, 창피해서, 큰 위로를 받아서,

버림받은 거 같아서, 감동하거나 감격해서,

좌절감이 들어서, 후회가 밀려와서,

또는 지난 시간 고생이나 노력이 생각나서..


정말 수많은 이유와 감정들이 있는데 그걸 살펴보려 하지 않고 '뚝! 그게 울 일이야?'를 외치면 아이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절할 배움의 기회는 잃고, 감정을 눌러 억제하기만 하겠지요. 아이들의 눈물 뒤에 다양한 감정을 헤아리고 그걸 표현하는 여러 방법을 알려주려 노력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울보였던 아들이 중학생이 되니 확실히 덜 웁니다. 아니 거의 울지 않아요. 역시 '생명은 자랍니다.'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은퇴식에 대성통곡을 하던 초등생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학교 국어시간에 읽고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는 중학생이 되었어요. 심지어 같은 책을 읽고 집에서 엉엉 우는 저를 이해하면서도 놀리는 경지가 되었습니다. 이걸 읽고도 안 울었냐 물으니 학교에서 내 덩치로 울면 선생님도 놀라신다면서 자신도 사회적 체면이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웃참이 아닌 울참에 실패했다고 해도 저는 아이를 응원했을 거예요. 슬퍼도 미안해도 울지 않는 사람이기보다 눈물로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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