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짧은 소설
평일 오전이었지만, 카페 안은 회사원들과 대학생들로 북적였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나무 테이블 위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고, 재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A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커피가 입안을 감쌌다. 그러다 문득, A는 머리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목을 만져보니 익숙한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챙겨 나온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언제부터 빠진 거지?'
A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썹을 찡그렸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알람이 꺼져 있었고, 그 탓에 늦잠을 자버렸다. 차 앞에는 이중주차가 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둘러 미팅 장소에 도착하니 담당자가 미팅 시작 10분 전에 1시간 뒤로 미루는 게 아닌가.
소소한 어긋남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A는 점점 짜증과 피로를 느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거 아닌 사건들이 연이어 들이닥치니 꽤나 난처했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지만, 어떻게 손목에 머리끈이 없다는 걸 몰랐지?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 때문에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문득, B에게서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게 벌써 3일 전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연히 모임에서 만난 B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A와는 달리, B는 등장할 때부터 모든 이목을 끌었다.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와 카리스마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B의 주변은 항상 웃음과 대화로 가득했다. A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녀는 모임에서도 항상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곤 했다. 반면, B는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런 B를 보며, A는 종종 자신과 비교하곤 했다. B의 활발하고 사교적인 모습은 A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A는 가끔씩 자신도 B처럼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B는 모임에서 점점 A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인사말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B의 관심은 더욱 뚜렷해졌다. 어느 날, A가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본 B는 조용히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A. 여기 자주 오나 봐?"
B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친근했다. A는 깜짝 놀랐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자주 와요. 이곳 분위기가 좋아서요."
그날 이후, B는 A에게 왠지 모를 호기심을 느꼈다. 조용하지만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는 A가 궁금해졌다. 모임에서 B는 A의 주변에 자주 앉았고, 종종 "A는 어떻게 생각해?"라며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묻지 않던 질문을 B가 던질 때마다, A는 당황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B에게서 DM이 왔다. "오늘 모임 재미있었어?"라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지금 뭐 해?"라는 사소한 메시지까지, 두 사람은 점점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 모임 재미있었어?"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A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하지만 B의 진심 어린 관심은 조금씩 A의 마음을 열었다.
B의 메시지는 단순한 인사나 안부에서 점차 깊은 대화로 이어졌다. B와의 대화는 A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A는 그런 B의 관심이 점점 더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저녁은 먹었어?", "비가 온대, 우산 꼭 챙겨.", "오늘 네 옷 예뻤어."
짧은 메시지들이었지만, A는 양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메시지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몰라 대부분 짧게 답했지만, A는 B와의 대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B의 진심이 보이는 말 한마디가 A의 일상에 작은 빛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B의 관심은 A에게 어색함을 넘어 설렘으로 바뀌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A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 A. 이번 주 모임은 리더 생일파티로 할 것 같아서, 변경된 장소를 알려주려고 전화했어."
B의 목소리는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고 차분했다. 생각지도 못한 B의 전화에 A는 긴장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설렘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B와의 첫 통화는 지루할 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보니, 핸드폰 화면은 뜨거워져 있었다. 그렇게 오래 통화했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집에 들어온 지 꽤 시간이 흘렀고, A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날 이후로, B의 메시지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대신 매일 밤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전화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일과 생각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깊은 고민까지 서로 나누었다. 그러면서 A는 B와의 관계가 점점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A가 회사에서 퇴근하던 중 B에게서 전화가 왔다.
"A, 퇴근했어? 같이 저녁 먹을래?"
A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긍정의 대답을 했다. 둘은 근처의 작은 일본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B는 A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묻고, 자신의 일상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잠시 주변을 산책했다. 산책 중 B는 A가 좋아하는 페퍼민트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할 것 같다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 맞지? 예전에 한번 말한 적 있었잖아."
B의 작은 배려에 A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평소와 같이 통화하던 어느 저녁, B는 A에게 물었다.
"A, 저번에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그 감독 있잖아. 그 감독의 새로운 영화가 오늘 개봉한다고 하는데, 같이 가서 볼래?"
B의 목소리는 마치 따뜻한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A는 순간 멈칫했다. B가 자신의 사소한 말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무심코 지나가면서 했던 말까지 기억하고, 그것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어준 B의 세심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A는 창밖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바깥은 B와 영화를 보고 나와 거닐었던 길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왜 갑자기 연락이 없는 걸까? A는 다시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손목에 없어진 머리끈처럼, B의 갑작스러운 침묵은 돌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A는 초조함에 손목을 매만졌다. 함께 영화를 본 이후로 B와의 대화는 뜸해졌고, 설렜던 순간들은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시 패드로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혹시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건 아닐까? 아니면 B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카페의 소음은 A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깊은숨을 내쉬며, A는 미팅 준비에 몰두했다.
불현듯, A는 대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A에게 인기 많던 C가 다가왔던 그날.
"이 책 재미있어 보이네. 너도 이 책 좋아해?"
C의 밝은 목소리에 A는 놀랐지만, 곧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이 책 좋아해요."
A는 평소 사람들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C와의 대화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 C는 자주 도서관에 와서 A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책과 음악,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졌다. C와의 시간은 A에게 설렘을 주었다. C의 관심과 친절은 A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A는 C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꼈다.
"넌 참 특별한 거 같아."
가끔 C는 책을 읽고 있는 A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응?"
A의 볼은 붉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읽지 않은 책이나 보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게 매력적이야."
C의 눈빛은 진지했다.
"매... 매력적이라고?"
A는 C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헷갈렸지만, C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작은 선물을 꺼내 A에게 건넸다.
"사실, 너 생각나서 이 책을 샀어.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A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선물을 받았다.
"이... 이게 뭐야? 왜 나한테..."
C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읽어봤는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C의 진심 어린 눈빛에 A는 자신도 모르게 볼이 달아올랐다. A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려 애썼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그날도 미리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C가 있을 거란 생각에 A는 도서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도서관 앞에서 C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보였다. C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C의 친구들이 물었다.
"너 A랑 사귀는 거야?"
C가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친구야."
C의 대답에도 친구들이 짓궂게 놀리며 말했다.
"야~ 내가 그렇게 재미없는 애랑 사귀겠냐?"
그 순간 A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C의 말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A의 가슴에 박혔다. C는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A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A는 항상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고, 주로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하게 느꼈다. 그래서 C와의 관계는 A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그 사람에게서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의 말 한마디는 A의 이런 모든 감정을 산산조각 냈다. 그 후로 A는 C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졌다. 학교에서 C를 보기라도 할까 봐 항상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녔고, C가 나타나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A는 마치 유령처럼 학교를 떠돌았고, C의 그림자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C는 A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A는 C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B가 다가왔을 때, A는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B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는 A에게 다시 설렘을 느끼게 했다. A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지금은 과거의 상처가 아닌, 현재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B에 대한 생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B와 C는 엄연히 다른 사람인데 자꾸만 C와 겹쳐 보였다. 그때, A의 시선이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커플에게로 향했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사이로 보였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A는 자연스럽게 B와의 영화 데이트를 떠올렸다.
B는 영화관 앞에서 A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입구에서 팝콘과 음료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B는 A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 예고편만 봤는데도 정말 재미있어 보이더라. 너도 기대되지?"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A와 B는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집중했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B는 A에게 속삭였다.
"저 배우, 연기 진짜 잘한다. 그렇지?"
A는 B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에 더욱 빠져들었다. B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A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길을 건너려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A는 B의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 마침 앞에 있던 액세서리 노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 머리끈 예쁘다."
A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B는 머리끈을 사서 A의 손에 쥐여주었다. A는 깜짝 놀라 머리끈을 받아 들고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녀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떨림이 묻어났다. 선선한 밤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B는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A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슨 대답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A는 머리끈을 만지작거리며 B와 함께 걸었다. 하지만 예전의 상처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내가 너무 쉽게 마음을 연 건 아닐까?'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B는 A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오늘 즐거웠어?"
"응, 정말 즐거웠어."
그녀의 대답은 조금 어색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B의 물음에 A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B는 아쉬운 듯 작별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A는 B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설렘과 행복이 교차하는 동시에 과거의 상처가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A는 애써 생각을 떨쳐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다른 테이블의 커플은 여전히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A는 깊은숨을 내쉬고 패드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영화 데이트 이후, B는 꾸준히 A에게 연락했지만, 예전처럼 다정한 안부 인사와 긴 대화는 줄어들고 "잘 지내?" "오늘 하루 어땠어?"처럼 짧은 메시지만 오갔다. A는 B의 변화가 신경 쓰였지만,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요즘 바쁜가 보다' '원래 연락 스타일이 이런 사람인가?'
하지만 B의 SNS를 확인하는 순간, A는 불안과 질투에 휩싸였다. B가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중에는 모임에서 B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도 있었다. '혹시 B가 나에게 관심이 식은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이 생긴 걸까?'
모임에서 B와 마주쳤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B는 세심하게 A를 배려하며 안부를 물어봐 주었고, A가 소외되지 않도록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A는 여전히 B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한 친구가 갑자기 B에게 물었다.
"너, 요즘 A랑 많이 친해 보이던데, 혹시 사귀는 거야?"
B는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좋은 친구야."
그 순간, A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C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야~ 내가 그렇게 재미없는 애랑 사귀겠냐?"
C의 말은 A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지금 B의 대답은 그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았다. A는 눈앞이 흐려지며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이 덜덜 떨렸다. B는 A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다른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다. A는 마치 유령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상처가 다시금 욱신거렸다. 모임이 끝난 후, A는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다. B가 뒤따라 나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A, 괜찮아? 아까부터 좀 안 좋아 보였어."
A는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하지만 B의 눈빛을 마주할 수 없었다. B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과 과거의 트라우마가 뒤섞여 A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A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B와의 데이트, B의 변한 듯한 태도, SNS 속 사진, 그리고 친구 D에게 들은 B의 머뭇거림까지…A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B도 나를 그저 친구로만 생각하는 걸까?' '내가 너무 앞서간 걸까?' 불안한 마음이 A를 덮쳐왔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A 맞지? 정말 오랜만이다!"
고개를 돌리자, C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의 밝은 목소리와 미소는 여전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재미없는 애랑 누가 사귀냐."라는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순간 A의 마음은 복잡하게 얽혔다. 잊고 지냈던 상처가 되살아나며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렸지만, C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A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년간의 직장 생활로 단단해진 A는 애써 감정을 숨기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C구나, 정말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C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잘 지냈지!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A는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냥 바쁘게 지내고 있어. 회사가 이 근처야?"
C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오늘 너를 만나서 정말 반가워."
A는 잠시 머뭇거리다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반가워."
시간의 힘 덕분인지 A와 C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함을 풀어갔다. 그러던 중 C가 잠시 말을 멈추고 A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A야, 혹시 우리 사이가 어색해진 게... 내가 예전에 한 말 때문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과 후회가 묻어났다. A는 순간적으로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A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C가 다시 물었다.
"그때 내가 한 말, 들은 거 맞지?"
A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C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친구들 앞에서 괜히 허세를 부리고 싶었나 봐. 진심이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사실 그때 널 정말 좋아했어. 매일 도서관에서 네 모습을 보는 게 좋았고, 너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 하지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가 없었어. 친구들 앞에서 괜히 폼 잡고 싶어서 그렇게 말해버렸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후회돼. 네가 상처받았을 거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A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C의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너무 깊어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지금이라도 말해줄 수 있어?"
A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C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난 항상 인기가 많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어.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하면, 네가 날 떠날까 봐... 그래서 괜히 센 척을 했던 것 같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리석었어. 널 잃고 나서야 내 마음을 깨달았으니까."
A는 C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C의 말은 A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A는 C의 눈을 바라보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C야...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나 나나 상대방의 마음을 보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아. 고마워, 오늘 이렇게 말해줘서."
C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A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정말 고마워, A."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짧은 침묵을 나누었다. 그 침묵 속에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C는 다시 한번 A에게 물었다.
"가끔 연락해도 될까?"
A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연락처를 주는 건 아직 어려워. 하지만 나중에 또 우연히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자."
C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그 악수에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각자의 길로 돌아서며, A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무거운 짐이 조금씩 덜어지는 것을 느꼈다.
C가 자리를 떠난 후, A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B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혼란과 불안은 과거 C와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A는 자신이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A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노트를 꺼냈다. 펜을 들고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또다시 과거의 상처로 인해 괴로웠다. B의 마음이 나와 다를까 봐 두려웠다. 그의 마음을 솔직히 마주하기가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그때보다 더 강해졌고, 이제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두려움에 지지 않을 것이다. B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솔직해질 것이다."
A는 심경을 노트에 털어놓으며 C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받았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처가 A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아픔이 떠올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지만, A는 이어서 썼다.
"C와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는 고통스러웠지만,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이다. B와의 관계에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두려움에 지지 않겠다."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A는 점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노트에 적힌 글자들은 마치 자신의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A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된 것만 같았다. A는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B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기로 다짐했다. A는 B와의 관계에서도 더 솔직하게 대하기로 결심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A는 B에게 먼저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B, 시간 괜찮으면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 할 말이 있어."
곧장 B에게서 답이 왔다. B와의 약속을 잡으며 A는 B가 어떤 대답을 하던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B의 대답을 담대히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미팅 시간이 다가왔다. A는 카페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자신감을 되찾은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감싸는 순간, A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에필로그
B는 아침부터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혹시나 늦을까 하는 마음에 30분 전에 미리 나와 영화관 앞에서 A를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A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A의 웃는 얼굴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영화보다 A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용기를 내어 A의 손을 잡았을 때, A가 손을 빼지 않자 안도감과 함께 설렘이 밀려왔다. 'A의 손이 따뜻하다.' 영화에 집중하려 했지만, A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A가 액세서리 노점의 머리끈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A가 머리끈을 마음에 들어 할까? 선물해 주면 좋아하려나?' 머리끈을 사서 A에게 건넸을 때, A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A가 머리끈을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다음 데이트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A에게 "오늘 즐거웠어?"라고 물었을 때, A의 대답은 조금 어색했고,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혹시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걸까?' A의 짧은 대답과 머뭇거림에 조금 불안해졌다. 'A는 나와의 데이트가 즐겁지 않았던 걸까?' 걱정이 앞섰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B의 물음에 A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B는 아쉬운 듯 작별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A는 B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설렘과 행복이 교차하는 동시에 과거의 상처가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며칠 동안 A에게 짧은 메시지만 보냈다. 영화 데이트 이후 A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A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A의 SNS에는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모임에서 A를 만났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A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혹시 나를 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A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A의 마음을 존중하고 싶어 "좋은 친구"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A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A를 불편하게 만든 걸까?' '내가 A에게 상처를 준 걸까?' A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A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시간만 흘렀다.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한 발짝 다가가면 세 발짝 멀어지는 A 때문에 조급함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때, A에게서 문자가 왔다. "B, 시간 괜찮으면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 할 말이 있어."B는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A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B는 답장을 보냈다. A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A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지만, 이제는 나도 용기를 내어 A에게 다가가려 한다. A와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