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퀸의 대각선은 체스와 네메시스라는 두 단어가 주된 주제다. 네메시스는 처음 알게 된 단어인데, 영단어 'Nemesis'는 이길 수 없는 적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숙적'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흥미롭다.
누구에게나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한 명씩 있다. 이 사람은 영혼의 형제가 아니라 영혼의 적이다. 둘은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보고 상대를 파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이것이 그들의 삶이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는 걸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최악의 적이 최고의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에드몽 웰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책에서는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아이가 등장하는데, 성별이 여자고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다른 두 여인의 일생을 꽤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단체의 힘을 믿는 니콜과 개인의 힘을 믿는 모니카가 서로 자신들의 신념을 믿으며 살아가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다.
퀸의 대각선은 체스 게임에서 강력한 말인 퀸이 적을 위협하며 거침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니콜과 모니카가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서로를 적이라 여기고 퀸처럼 서로를 위협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극적인 이야기를 위해 두 캐릭터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그렸기에 둘 다 극과 극이라 누구에게도 연민이나 마음이 가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폰들을 조정하는 니콜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읽혔다.
베르베르의 이전 작품들은 주로 공상과학과 판타지 요소가 강하게 들어갔다. 이와 반대로 이번 퀸의 대각선은 보다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좀 더 스파이 소설과도 가깝다고 느껴졌다.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부분이나, 베르베르 특유의 공상과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 작품을 읽은 후 약간의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끝으로 갈수록 엉성하게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급하게 끝내려는 느낌이 너무나 강했다. 특히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만 떠다녔다. 개인적으로는 두 권으로 쓰지 말고 좀 줄여서 한 권으로 끝냈어도 꽤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베르 특유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또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