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번째 지혜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말이 있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 '결혼에도 때가 있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잔소리라 생각하고, 일단 거부하고 들지 않았는가. 나는 그랬다. 인생이 다 다른 것을 남들이 한다고 해서 나도 해야 하는가? 남들이 정해놓은 때에 내가 맞춰 살아야 하는가? 등등의 대꾸를 하며 무시하려 애썼다. 꼰대가 괜히 꼰대인가. 자기 경험 들먹거리며 '라떼는~' 하는 순간에 되는 것이 꼰대지. 아무튼, 건방지게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농사를 지어보니, 다른 건 몰라도 농사에는 때가 분명히 있었다. 심어야 할 때, 물을 주어야 할 때, 거두어야 할 때, 등등. 모든 일에는 때가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다고 내 상추가 더 잘 크는 것도 아니었고, 때 늦게 심은 배추는 기대치만큼 크질 못했다. 한마디로 쓰라린 실패를 무수히 경험했다.
그럼 그때는 어떻게 아는가?
프로 농부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은 '그냥 남들 할 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고추 심으면 따라서 고추 심고, 남들이 고구마 심으면 따라서 고구마 심으면 된다고. 한 주만 늦어져도 정말 늦는다고 그러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들 할 때 따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처럼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는 초보 농부들은 주변에 프로 농부를 만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도찐개찐 수준인 농사경험과 어렴풋이 주워들은 지식을 나누며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갈팡질팡하다 한 주 두 주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때를 놓치기 일쑤다. 이럴 때 가장 정확한 것은 '모종 가게' 사장님 조언을 듣는 것이다.
모종 가게에서는 적기에 심을 모종을 판매한다. 잘 되는 모종 가게는 사실 한꺼번에 10가지 이상을 판매하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많이 놓여있는 모종이 딱 그때 심어야 할 모종이라는 것도 눈치로 알게 된다. 제철 모종이라고 해야 할까나. 물론, 옆 사람이 뭘 사가는지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종 가게 사장님과 친분을 쌓으면, 적기에 심을 모종 외에도 농사에 대한 유용한 지식도 덤으로 얻게 되니 주말마다 시간만 되면 모종 가게에 드나들게 된다.
자녀양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정말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와, 벌써 이만큼 자랐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아이를 매일 보는 엄마인 나도 아이를 보며 '와, 진짜 많이 컸다.'라고 감탄할 정도이다. 이런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섬기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데, 그렇게 사회 구성원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교육이 필요한가. 당장에 인사예절이나 식사 매너와 같은 것부터 한글, 숫자, 영어 알파벳까지. 이 모든 것을 시작하는 '적기'는 언제인가?
요새 주위 엄마들을 보면 '조기'교육 열풍은 예전 같진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가 너무 늦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사라진 것은 또 아니다.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조기교육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제한된 인간관계, 정보 속에서 같은 반 엄마들하고 이야기하면 답이 나올까? 모두 초보 농부나 마찬가지라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답은 '카더라~' 정도의 수준이다.
그럴 때 우리가 찾아야 할 상담가는 '프로 농부' 또는 '모종 가게 사장님' 임을 잊지 말자. 프로 농부는 이미 자식을 잘 키워놓은 분이 될 것이고, 모종 가게 사장님은 교육현장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내 아이의 선생님쯤 될 것이다. 그분들에게 '때'를 물어보면 나름의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부지런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분별하고, 주변 엄마들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도찐개찐인 초보 농부들이나 하는 일이다. 내 아이의 교육의 '적기'를 알아차리는 것은 경험자와 전문가의 조언을 겸손하게 듣는 것이며, 들은 것에 그치지 않고 부지런히 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 에필로그
열 번의 연재가 끝났다. 늘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열 번의 글을 쓰는 것도 꽤나 성실함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사람이 한 번은 경험해봐야 안다고, 시작하기는 쉽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에게 이 짧은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 또한 그런 차원에서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텃밭을 가꾸는 2년은 약간의 수고로움을 더하는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고귀한 경험이었다. 내년에도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상황이 된다면 계속 이어나가겠지만, 하게 되더라도 확실히 작년과 올해보다는 욕심을 덜 부릴 것 같다. 텃밭을 일구며 깨달은 자연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이제 자야겠다. 잠이 보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