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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ug 31. 2019

일곱 번째 지혜 :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일곱 번째 지혜 :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자연, 즉 햇빛과 바람, 땅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은 뒤부터 주로 해야 할 일은 '물 주기'다. 물론 어김없이 올라오는 잡초도 뽑아주고, 줄기가 약한 아이들에 지지대를 세워주는 일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땅이 마르지 않게 규칙적으로 물을 주는 일만큼 텃밭 농사에서 절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없다.


  물을 주는 데에도 몇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물은 햇볕이 약한 아침이나 저녁에 주어야 한다. 한낮에 주었다가는 오히려 안 주느니만 못한다. 강한 볕에 반사되어 잎사귀가 타버리거나, 물이 땅속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겉에서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한번 줄 때 흠뻑 주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또는 귀찮다고 그냥 살짝 주고 나면 충분히 수분을 머금지 못한 작물의 꽃은 떨어지고 말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셋째, 작물마다 물의 양을 달리해주어야 한다. 개 중에는 물을 많이 먹는 오이 같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물을 많이 주었다가는 터져버리고 마는 토마토 같은 아이들도 있다. 이러니 이것저것 기르는 나 같은 텃밭 농부에게는 물 주는 데도 학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물을 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빼게 된다. 가장 규칙적으로, 가장 자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에 정작 치열하게 힘을 쏟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대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건 왜일까? 바로 물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기 때문이다. 물을 주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그뿐이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


  조급해하지 않고 하늘에 온전히 맡기는 것. 그것은 곧 기다림이다. 걱정한다고 싹이 움트는 것도,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밤새 마음을 졸인다고 오늘 심었던 씨앗이 내일 열매 맺는 일은 절대 없다. 떡잎이 나오고 지고, 줄기가 굵어지면서 자라 오르고, 뿌리가 깊어지면서 꽃을 내민다. 각자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피어있는 꽃은 이내 지면서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는 몸집을 불리면서 온몸에 색을 입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여전히 물을 주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작은 수박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물 주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는 매일 몸과 마음의 양식을 제공한다. 밥과 간식 같은 몸의 양식과 의사소통이나 가치관 같은 마음의 양식을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자주 준다. 이 루틴 속에서 우리가 범하는 우는 이 반복적인 일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힘을 준다는 것이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물 주기까지만 해당)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햇빛, 바람, 땅 같은 환경)에 곧잘 침범하고 만다. 기다리지 못해서.


  완쭈는 말이 참 빠른 아이였다. 9개월이 될 무렵 아빠를 부르고, 돌이 지나고 얼마지 않아 '쮸르 몇 살?' 물으면 '두짤.' 이라며 대답했다. 18개월 무렵에는 크리스마스 캐롤 '울면 안 돼'를 외워 부르고, 창세기 1장 1절을 암송했다. 이렇게 언어에 두각을 보이는 아이에게 나는 욕심을 내어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숫자를 세는 것이나 간단한 동요는 제법 잘 따라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문장으로 이야기하거나, 영어 책을 읽으려는 순간 아이는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엄마. 한글말로 해.'


  '엄마. 여기 쓰여 있는 대로 읽어줘.'


  라고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멈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기다림'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가 겨울왕국에 나오는 노래 'Let it go'를 흉내 낼 때 그 노래가 나오는 멜로디 북을 골라주고, CD를 사주고, 옆에서 함께 흥얼대는 정도로만 물을 주었다. 아이는 스스로 터득한 대로 발음했기 때문에 고쳐주고 싶은 부분은 참 많았다. 그래도 기다렸다. 물론 너무 다른 부분에 대해 참지 못하고 얘기한 적이 두어 번 있긴 하다. 아이는 어김없이 자기가 맞다고 우겼다. 알았다고 하고 넘어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또 기다렸다.


  만 4살이 지난 완쭈는 여전히 자기가 들리는 대로 Let it go를 따라 부른다. 고쳐주고 싶은 부분 또한 여전히 많다. 하지만 오늘도 차에서 겨울왕국 OST를 들으며 함께 따라부르는 것까지만 하기로 한다. 언제가 완쭈가 스스로 영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를 기다린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끝내 기다리기로 오늘 다시 다짐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 엄마가 기다리면 아이는 차근차근 자란다는 믿음을 갖는다.




| 예고


  기다림 후에는 많던 적던 반드시 수확이 있다. 그런데 이 수확의 시기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이 것에 대해 다음 연재에서 다루려고 한다.


  여덟 번째 지혜 : 수확의 시기는 작물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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