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지혜 : 수확의 시기는 작물마다 다르다.
어느 날 문득, 봄에 피는 꽃도 있고, 여름에 피는 꽃도, 가을에 피는 꽃도,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내 인생의 꽃은 언제 필까? 기대했던 적이 있다. 그 꽃이 벌써 폈는지, 아니면 아직 펴있는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는지 이 세상 떠날 때 깨닫게 되겠지만, 늘 꽃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내게 발전에 원동력을 준다.
텃밭을 하다 보니 한날한시에 심어도, 수확의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체험한다. 상추와 같은 쌈채소처럼 모종이 자리 잡고 나면 이틀에 한번 수확하는 아이들도 있고, 깻잎처럼 일주일에 한 번 수확해서 매번 밥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시금치나 열무 같은 아이들은 씨를 뿌리고 한 달만 지나도 수확할 수 있어, 자라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는 작물이다.
그런가 하면, 심어놓고 두어 달 기다리다가 일단 열매가 맺고 익는 순간 하루에 한 번씩 빨갛게 익은 아이들을 수확하는 아이들도 있다. 오이도 마찬가지다. 3일 만에 가도 못 보았던 아이가 쑤욱 자라 있고, 일주일만 손을 놓으면 벌써 노각으로 변하기도 한다. 호박은 자라나 안 자라나 싶을 정도로 성장이 더딘 것 같아도, 어느새 밭 한 귀퉁이를 덮고 있다가 보물 찾기를 하듯 잎 속에 열매를 숨겨놓는다. 그래서 호박을 수확하는 날에는 더욱 즐겁다.
그보다 더 길게는 배추처럼 속이 꽉 찰 때까지 석 달은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양파처럼 겨울을 완전히 나고도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작물들도 있다. 그래도 도라지나 아스파라거스, 더덕 같은 아이들은 아예 몇 년을 땅에 묻어두고 기다려야 하니, 왜 마트에서 비싸게 팔리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이마다 성향이 있고, 타고난 재능이 있음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그에 따라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도 다르다. 완쭈의 경우 운동신경이 발달하여 킥보드는 처음 오르자마자 앞으로 나가는 원리를 터득하여 씽씽 달리고, 자전거는 위층 언니에게 물려받자마자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할머니가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하자 무척 어려워하고 지루해하다가 시도한 지 만 2년이 넘어 이제 받침이 없는 몇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자기 이름 쓰는 것도 어려워한다.
앞으로 아이가 더 커나가면 커나갈수록 가르쳐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것도 많아질 텐데 그럴 때마다 이 텃밭에서 수확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려 한다. 두 달 만에 바로 성과가 나는 일도 있을 것이고 몇 년이 걸려서 겨우 하나 보일 것도 있을 것이다. 절대 가성비를 따지지 말아야지.
이번 연재를 기록하여 내가 받았던 교육을 한번 되돌아본다. 어릴 적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께 받았던 교육은 크게 신앙교육, 예술교육, 그리고 외국어 교육이었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그것은 여행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단기간에 어떠한 결과나 성과를 내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나 부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져야 할 가치를 배웠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내 밭이 아니라 빌려 쓰는 밭이기에 아직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농사에 임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만큼은 10년 뒤, 100년 뒤를 내다보고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다.
| 예고
아홉 번째 지혜 : 거둔 뒤에는 땅에도 겨울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