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지혜 : 땅에도 겨울잠이 필요하다.
무더위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해가 지는 시간이 무척 짧아진다. 6시에 퇴근을 하고 텃밭에 올라가도 아직 태양이 뜨거웠었는데, 이제는 햇빛은커녕 주위가 어두컴컴하다. 가을농사는 역시 배추, 무, 파 등과 같은 김장채소 위주이다. 그리고 김장채소 수확을 끝으로 텃밭은 일구는 이에게 긴 휴식을 고한다.
부추와 같은 다년생 작물들은 점점 누레지고, 채종을 하기 위해 남겨놓았던 작물들도 씨앗을 남기고 말라간다. 양파처럼 땅에 묻어두는 것들은 그저 쌀겨를 덮어주는 것으로 월동준비를 해 놓는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한두 번 더 발걸음을 옮겨보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땅도 겨울잠을 잘 준비를 시작한다.
모두가 마르고 꺾이고 뽑힌 뒤, 땅은 아주 조용히 숨죽여 잠에 든다. 추위에 얼고 굳어진 땅에서 모든 것은 멈춘 듯하다. 눈이라도 오는 날엔 여기가 텃밭이었는지 알려주는 것은 구획정리를 위해 세워진 나무 받침대뿐이다. 텃밭 동지들의 발걸음마저 끊긴다. 매일같이 돌보던 곳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달이 넘도록 보러 가지도 못한다.
그러나 봄부터 열 일했던 땅에게도 쉼이 필요하다. 모두를 잊은 채 쉬는 것이다. 기계에게도 열을 식힐 시간을 줘야 하는데 하물며 생명의 원천인 땅에게도 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잊고 지내던 땅은 충분히 잠을 자고 나면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다. 작년에 미처 움트지 못했던 새싹이 손을 내밀고, 심어놓지도 않았던 냉이와 돌나물이 자리를 잡는다. 부추는 고개를 내밀고, 옆 밭에서 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깻잎 씨앗도 자리를 트고 눌러앉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외친다. 'I'm ready!'
<봄>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 차 나지 않는가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뛰어노는 것'과 '자는 것'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TV나 스마트폰을 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가고, 공부가 주업이 될 때 나는 과연 어떻게 아이에게 '잠'과 '휴식'을 허용해야 할까? 4당 5 락을 전설처럼 듣고자란 내가 과연 아이에게 '충분히 자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때도 '놀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워라밸'이 있다는 것을 엄마로서 인정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자고 일어난 땅이 생기를 얻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것 또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모두 '겨울잠'과 같은 진짜 휴식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휴식으로 인하여 새로운 기운으로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봄, 여름, 가을 동안 뿜 뿜 일을 하게 된다.
누구 말대로, 잠이 보약이니까.
| 예고
마지막 열 번째 지혜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