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지혜 :
솎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과감하게 솎아야 한다.
씨앗을 심고 나면 이제나 저제나 싹이 올라오기만 기다린다. 감감무소식이었던 땅을 가르고 그야말로 뾰로롱 뾰로롱 뾰로롱 싹이 나기 시작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새싹들의 향연은 어떤 채소를 막론하고 너무 귀엽고 예쁘다. 마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이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노는 모습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서 귀여운 게 아니라, 그저 아이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 귀엽고 예쁘다. 새싹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새싹들도 조금씩 성장하여 어떤 시점이 되면, 옹기종기의 모습에서 빽빽해서 비좁아 보이기 시작한다. (아, 여기서 이야기하는 어떤 시점이란 작물마다 다르지만 대게는 10~15cm 정도 자랐을 때를 말한다.) 말을 못 하는 작물 대신에 이웃 텃밭 지기들의 아우성이 시작된다. "빨리 옮겨 심어라. 솎아라. 그러다가 애들 다 못 자란다. 제대로 못 큰다." 등등.
아이가 뱃속에 임신하면서부터 태어나서 기르는 동안에 먼저 겪어본 어른들의 잔소리들은 계속되는데, 텃밭농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식농사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하.
아무튼. 최대한 시간을 벌다가 솎아주기로 날을 잡는다. 왜냐면 솎아주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농사일이 대부분 몸으로 하는 노동이라면, 솎아주는 일은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해야 하는 감정의 노동이 뒤섞여있어, 무척 고되다.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을 남기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아이들을 솎아내는 것도 고민은 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마음 단단히 먹고 뽑아버린다.
진짜 힘든 일은, 심어주면 그래도 중간으로 자랄 것 같긴 한데, 땅이 넉넉하진 않으니 살릴 것인가 버릴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분류들이다. 얘네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 살아있는 것. 눈을 딱 감고 솎아 던져버릴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잔인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아이의 재능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탁월한 재능은 키워줘야 하고, 별 흥미가 없어 보이는 분야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도와주면 잘할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모두 투입하기엔 고민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비트을 솎아주던 날, 일단 살릴 것과 버릴 것을 분류했다. 그리고 고민되는 아이들도 따로 챙겨두었다. 살릴 것을 먼저 심어주었다. 버릴 것은 눈에서 고민되지 않도록 밭 옆으로 던져두었다. 살릴 아이들을 먼저 심어 두고, 남은 땅에 고민되는 아이들 중에서도 또 골라서 골라서 심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받아 심긴 아이들은 대부분 죽었다. 아차, 싶었다. 가능성이 조금 있어 보여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나의 관심 1순위에서는 자연스레 밀려난 아이들이었다. 잘 자라지 못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했을까? 아니, 선택했으면 귀하게 여기고 잘 돌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왜 어른들이 '과감하게 솎으라'라고 말씀하셨는지. 땅의 크기도 한정되어 있지만, 땅 속의 영양분도 무한하지 않다. 돌보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도 한정되어있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도 분명 최대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는 한계를 인정할 것을 다짐해본다. 쉽지 않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선택받은 아이들을 잘 길러낼 수 있을까?
다음번 연재에서 계속된다.
| 예고
세 번째 지혜 : 넓게 심어야 한다. 간격이 너무 촘촘하면 모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