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4월 탄생석 다이아몬드(Diamond)는 슬픈 눈물을 닮았다. 250톤의 자갈과 바위를 채취해야 고작 0.00000008%인 1캐럿(0.2g)의 다이아몬드를 얻을 수 있다.1) 다이아몬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20년간 쉼 없이 달려왔던 나의 직장 생활과 같다.
학군 인턴이었던 나는 2000 7월 전역 후 바로 입사했다. 입사 후 5년 차까지는 직장에 대한 만족이 없었다. 금융권에 입사하고 싶었던 내게 패션 회사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연봉도 기대 수준을 밑돌았다. 한 달에 4, 5일은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있을 만큼 근무시간도 길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마음속으로 퇴사를 결심한 뒤 이야기할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정 선배의 눈에는 보였던 것 같다. 정 선배는 "요즘 고민 있나요?"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 고민은 다 있죠." 얼버무리는 나에게 정 선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 선배는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했지만, 주임과 대리 승진에서 연거푸 떨어져 내가 대리임에도 아직 주임에 머물러 있었다. 나보다 회사 다니기 더 힘들었을 사람이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나?'라는 질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회사의 승진제도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승진 심사를 한 경영자들에게도 원망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질문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나?'는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밤을 새워서 일했고, 성실했지만 진심은 없었다. 생각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불만족의 이유는 상황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일한 결과물이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내 옆의 동료가 편해지고, 내가 맡은 매장의 매출이 올라 매장주가 돈을 더 벌게 되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의미 부여는 내 태도를 바꿨다. 일은 더 많아졌고,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마음만은 훨씬 편안해졌다. 어느덧 과장이 되고, 작은 조직의 리더가 되었다. 실력보다는 성실성으로 리더가 된 것이다.
회사생활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김 전무님을 상사로 모시게 된 것이다. 김 전무님은 리더들을 혹독하게 트레이닝했다. 과업, 목표관리, 시간 관리 등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말하는 성과 습관을 하나둘씩 요구했다. 그 요구를 숙제하듯 해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요구들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14년에 차장, 17년에 부장, 19년에는 임원 및 대표이사가 되었다. 무명으로 묻혀 있던 내가 차장 이후 빠르게 승진한 것이다.
임원까지 성장한 것 뒤에는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중요했다. 후배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를 찾았다. 상사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나에게 맡기곤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실력도 갖춰져야 했다. 김 전무님의 트레이닝으로 깊은 고민과 빠른 실행을 익힐 수 있었다. 연마가 잘 된 다이아몬드가 더 높은 가치를 갖듯이 2) 나에 대한 연마 과정이 나의 가치를 높인다. 수고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성장하길 바란다면 복권을 사서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2020년 4월 회사로부터 퇴사 통보를 받았다. 정확히는 임원 재계약이 안 된 것이다. 2020년 4월 7일 부회장님으로부터 퇴사 통보를 받은 날 나는 덤덤했다. 회사는 내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어느 순간 나는 모스 경도 10의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지하 100 ~150km 아래의 킴벌라이트(kimberlite)에서 생성되는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게 단련돼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가짐이 회사에 목을 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4월의 탄생석 다이아몬드는 불멸과 사랑을 의미한다. 한 회사의 마침은 나의 마침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정복할 수 없는 다이아몬드 3)처럼 세상의 굴곡이 나를 정복할 수 없다. 남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나아가는 과정 중에는 힘듦이 있을 수 있다. 힘든 나머지 슬픔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행복하게 한다. 화려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뒤에는 힘듦과 슬픔이 함께한다.
1) 네이버 지식백과 - 나만의 비즈, 탄생석 발췌
2) 다이아몬드는 색상(Color), 투명도(Clarity), 무게(Carat), 및 연마(Cut)의 4가지 요인(4C)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
3) 다이아몬드(diamond)라는 명칭은 '정복할 수 없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