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히려 뉴스가 막 뜰 때 당시보다 몇 달 후 회자되는 것을 들을 때 실감이 더 많이 나는 빈자리라 먹먹해진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면, 8개월 후에는 꼭 자살하겠어! 라고 디데이를 세운다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달간 밤 늦게 맛있는 튀김을 원없이 먹으며 처음 찍어보는 몸무게도 만들어보고,
한없이 재수없었던 모 회사 대표한테 맞지만 가시가 있어서 하지 못했던 말도 해보고,
안티들을 겨냥해 스트리밍 방송으로 욕도 한지꺼리해주고,
기자들한테 내가 목격한 부정의 양심고발도 해보고,
머리카락도 빡빡 밀어보는
대중의 사랑을 위해 여태 걸었던 안전한 길을 반대로 걸어보면 어땠을까.
여태 열심히 쌓아온 모래성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즈 시절, 연예인이라서 먹지 말아야하고, 연습해야하고, 예쁜 말만 해야해서 억눌러왔던 소소한 일탈이 있었을 것이다. 잊혀진 버킷리스트.
마음 시원해지도록 사이다를 마시며 아무도 못했던 미친 짓을 해보는 용기를 내보자.
주위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몸부림치거나 우울함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는 것은 사실 소극적인 것이라, 이것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감정은 항상 바뀌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나를 향한 가시같은 뾰족한 말투에 공든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앞으로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현실이 아무 의미 없게만 느껴진다.
아름다운 명성과 모습으로 삶을 끝내도, 남은 사람들 기억 속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먹먹한 가슴만 남는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이를 두고 여혐 사회인지 젠더간 갈등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폭력을 되물림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폭력이 저질러진 상황 아래에서, 이런 변명을 한다고 해서 대중은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행위도 그렇다. 폭력은 용서가 안된다.
악플도 종류가 있다. 편히 신고를 할 수 있게 직접적으로 심한 욕설을 퍼붓는 사람,
듣도 보도 못한 루머를 만들어서 나를 까내리는 사람,
논리적인척하면서, 비평의 가면을 쓰고 나의 행동을 무력화 하는 사람.
나는 세번째 유형이 견디기 가장 힘들었다.
나한테 직접 인격모독을 하고 누가 봐도 명백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 그 사람만 욕먹는다.
루머 역시 참기 힘들지만 진실이 밝혀질 때도 있었고 어떻게든 죄의 값을 치루게 할 수 있다.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어려운 단어를 쓰며 논리적으로 보이게 하는 유형은 꽤 머리가 아프다. 내가 잘못됐나?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세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런 류의 글은 공개적으로 쓰지 말아 달라고.
세번째 유형의 사람들아, 당신의 생각을 꼭 전달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하길 바란다. 만약 꼭 말을 해야 겠다면 개인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해라. 개인 메세지로 당신의 생각을 부드럽게 전달해주면, 당사자는 그 생각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구별하는 생각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곳에서 시작된 물타기는 당사자의 방어벽만 높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범죄의 시발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터넷 세상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상어가 많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의 잘못된 행동에 야단을 치고, 이전에 했던 실수는 눈 감아주는 온실 속 화초의 삶과 정반대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것에 바로 처벌을 받고, 낙인자로 찍혀 세상의 눈초리를 감수해야 하는 실전 사회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