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보지 못한 갖고 싶은 시간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아련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게시물을 봤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장면이 짤로 함께 게시된 글이었다. 아빠가 운전석, 엄마가 조수석에 앉아있고 어린 주인공이 차 뒷좌석에 누워있다가 엄마, 아빠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담긴 영화의 첫 장면은 특별할 것 없이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장면을 그립고 아련한 시간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생각했다. 차에서 자다 깨 몽롱한 상태로 엄마와 아빠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와 음악소리를 듣다가 다시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잠들었던 그 공간과 시간을 사람들은 그리워했다. 그만큼 부모님과 함께 탔던 자가용 속의 시간은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에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장면이 그리워하는 추억이었다면 나에게 그들이 그리워하는 추억은 로망이었다. 우리 집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차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차가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대중교통을 타는 게 익숙했기 때문에 이동이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엄마에게 차를 사자고 그렇게 졸랐던 이유는 딱 하나. 앞에서 말한 차 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면서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보는 것. 우리 가족만의 공간과 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때 차를 샀다고 하더라도 나의 로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동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조부모님의 존재감은 그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집밖으로 잘 나가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지만, 어딘가를 놀러 간다고 생각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 우리끼리 놀러 가는 게 조심스러웠다. 두 분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도 있었고 자칫하면 두 분이 가족구성원으로서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두 분을 모시고 가는 건 엄마에게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엄마뿐만 아니라 조부모님이 계시면 아빠와 나, 동생도 우리끼리만 있을 때의 완전한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조부모님이 의도해서 만들어낸 것도, 우리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건 어른을 존중해야 하고 어른들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문화와 예절 속에서 살아오면서 내면화된 가치와 습관이 배인 탓이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 집은 4인 가족이 누리는 자유와 편안함을 누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4인 가족이 누리는 자유. 그래. 나는 평생 그것을 꿈꾸며 살아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끼니 챙기기를 생각하지 않고 엄마와 저녁에 영화를 보고 외식할 수 있는 자유, 조부모님으로 인해 일어나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지 않을 수 있는 평화, 우리끼리 다투는 와중에 상황을 파악한 못한 채로 갑작스레 끼어드는 조부모님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더 속이 뒤집히는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상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다른 4인 가족에 비해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에 따라 엄마와 아빠는 많은 경우에 자식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관계와 그들을 모셔야 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엄마는 그걸 평생 미안해한다. 그렇게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면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엄마에게 주어진 시간과 엄마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한정되어 있고 그렇기에 엄마가 우리에게 집중할 수 없었음을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조부모님께 엄마를 뺏겨버린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나도 다른 집들처럼 평범한 4인 가족에서 자랐다면, 우리 부모님이 당신들의 자식들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면 우리 네 명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지금도 온전히 부모님과의 관계만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여행을 갔다 올 때면 본인들은 괜찮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것만 챙겨 오라는 말을 매번 들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부모님을 우선순위로 두고 싶은 나의 마음은 무시당한 기분이다. 본인들이 두 분을 항상 우선순위로 두어왔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 방식을 요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에도 나는 후순위가 되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그 말이 싫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그런 마음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4인 가족에 대한 나의 로망을 누군가에게 솔직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건 가족으로서, 손녀로서 패륜에 가까운 생각이니까. 더욱이 내가 느끼는 이 불만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두 분도 우리와 살며 느끼는 불편이 있고 우리가 느끼는 불편을 일부를 인식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 죄송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과 함께 살며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일부가 분명히 있고 현재도 어떤 부분은 진행형이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갈망과 상실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것이 남긴 상실감 또한 실재한다.
아마 4인 가족의 자녀로 살았다면 겪어도 되지 않은, 겪어보지 않았을 감정일 것이다. 이 감정을 용기 내어 직시해 본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가족이 풍경을 이해하고, 동시에 그 속에서 여전히 원망과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의 일부를 다독이고 조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