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걸 누구도 대신하지 말아
여느 날처럼 침대에 딱 달라붙어있었던 주말.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투명 매니큐어를 손에 쥔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앉으셨다. 장난감을 가지고 와 함께 놀자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잡아당기더니 손톱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짧은 손톱에 바로 매니큐어를 바르려고 하셨다. 손톱 건강에 좋다는 이유였다.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가셨던 전적이 몇 번 있던 터라 통하지 않을 몇 번 거부 의사를 밝히고 할머니에게 손을 맡겼다. 굳이 할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꾸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와 달리 할머니는 꾸미고 사치 부리는 걸 좋아하신다. 60대까지 뾰족구두를 신고 다니셨고 지금도 외출할 때면 열심히 화장을 하신다. 가끔 원피스를 입고 나가시거나 둥근 챙모자를 쓰고 나가실 때면 "할머니가 멋 좀 부렸다" 하고 웃으시기도 한다. 그래. 할머니는 '멋쟁이'이다.
꾸미는 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할머니의 관점으로 나는 멋없는 사람이다. 원피스는커녕 고등학교 치마 교복 이후 한 번도 치마를 입어보지 않고 화장도 아침에 한번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인 나는 할머니 눈에 선머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종종 나에게 "예쁘게" 하고 다니라고 말하신다. 머리도 기르고 안경도 벗고 구두도 좀 신고 치마도 좀 입어서 여성스러워야 남자친구가 생기지.
항상 안경을 쓰고 운동화만 신고 바지만 입고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을 고수하는 나는 할머니의 기준에서 정석적인 여자가 아니다. 예전에는 나의 꾸미지 않는 모습이 "여성"스럽지 않아서 안타까워했던 마음이 요즘에는 30줄에 들어선 손녀가 여성스럽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으로 진화한 거 같다.
"할머니, 저 친구랑 여행 다녀올게요~"
"그래. 가서 남자친구 좀 만들고 와라."
"?"
(친구와 노느라 늦게 들어온 날)
"다녀왔습니다."
" 지금 왔나?"
"네. 친구랑 놀고 왔어요."
"이제 남자친구랑 놀아야지. 할머니는 일상이 남자친구 생기면 이제 걱정이 없을 거야."
"?"
남자친구가 없어도 친구들과 충분히 재미있게 지낼 수 있고 결혼이 나에게는 정해진 삶의 통과의례가 아니라는 걸 할머니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스러움은 옷차림이나 행동이나 외모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여성인 내가 입고 취하는 행동들이 여성스러운 것이라는 걸 할머니는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충분히 이해한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계는 '여자'라는 존재가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였으니까.
할머니가 살아온 세상은 결혼하지 않으면 하자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 경제권 획득 또한 어려웠던 사회였다. 그 사회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결혼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성에게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살아온 할머니가 여성의 외모와 행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 역시 필연적이다. 인간의 인식은 사회 문화를 통해 빚어지고 인간의 행동은 빚어진 인식의 틀로 말미암아 발현된다. 그러니 할머니의 사고는 그동안 당신이 살아내 왔던 세상의 모양과 구조, 성질을 담고 있다. 하지만 물질에 열을 가하면 변형이 일어나듯 사회도 시간을 거치며 변화한다. 역사를 거치며 변형된 사회는 전과 다른 세상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할머니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 내 세상에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고 예뻐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다. 생물학적인 요소를 제외한 어떤 행위와 상태로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고 싶지 않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성애적 사랑으로 결합하지 않아도 다양한 관계로 가족을 만들 수 있다. 그 가족에서는 여자이기에, 남자이기에 주어지는 역할 구분이 없다. 어찌 보면 할머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서로의 정반대 편, 양 극단에 서있을 수도.
저 멀리 있는 할머니의 세상과 여전히 내가 그 세상 속에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슬퍼진다. 있는 힘껏 살아온 할머니(+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본인이 누리지 못했던 교육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노력 위에서 나도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갈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조부모님의 인생으로 만들어낸 교육의 기회를 통해 나는 두 분이 손녀에게서 원하는 모습과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멀어짐'이 두 분이 내게 주신 교육의 기회를 통해 내 삶을 꾸려나갈 용기를 갖음으로써 생긴 거리라면, 두 분이 만들어준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할머니. 할머니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저도 여자랍니다. 꾸밈에 큰 관심 없고 결혼에 큰 뜻이 없는 여자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여자이니 너무 걱정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