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자가주사의 현실
여러분은 '내가 이것만은 절대 못한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제가 절대 못하는 건 바로 제 몸에 들어오는 주삿바늘을 제 눈으로 보는 거예요. 건강검진에서 채혈을 할 때면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고 1부터 10까지 계속 숫자를 세며 제발 빨리 지나가라는 주문을 외우곤 하죠. 그래도 1년에 한 번이니까 어떻게든 참으며 살아왔는데, 더 이상 참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임시술은 주사로 시작해서 주사로 끝난다
용종제거 등 시술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전 드디어 난임시술의 첫 단계인 인공수정을 시작했습니다.
'자, 드디어 인공수정을 시작하네요. 자궁 상태 좋고요.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약을 먹고, 3일간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됩니다'
'네? 시험관만 자가주사 있는 거 아니에요? 인공수정도 자가주사 맞아요?'
'네, 인공수정도 과배란이 필요하니 과배란주사 등 자가주사가 있습니다. 오늘은 병원 오셨으니까 여기서 맞고 가시고, 내일부터는 자가로 주사 놓으면 됩니다'
'진짜요? 아, 혹시 본인이 주사를 못 놔서 병원 와서 맞는 분이 계실까요?'
'간혹 한분씩 계시는데, 비슷한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하고 당분간 매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맞춰서 병원 오시기는 어려우실 거예요'
인공수정을 하려고 오래 기다렸기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건 설렘은커녕 제 배에 제가 주사를 놓는 자가주사였어요. 인공수정 1차에서 제가 맞아야 하는 자가주사는 총 8번, 8번... 믿고 싶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주사를 무서워하냐면 병원에서 받은 주사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배가 아파왔고, 아니 정확하게는 병원 대기실 TV에서 자가주사 놓는 방법을 계속 틀어주거든요. 저는 그거 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TV 쪽을 안 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할 정도였어요. 사람 시선이라는 게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그 TV가 계속 시야에 걸리잖아요. 당연히 이런 제가 제 배에 주사를 놓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서 남편이 주사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 주사 전담 인력, 남편의 주사 놓기 프로젝트
남편에게 주삿바늘 공포증이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내를 둔 죄로 남편은 전담간호사가 되었답니다. 주사를 맞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지만 생각지 못한 주사 에피소드 덕분에 즐겁게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답니다. 그저 웃음만 나오는 주사 에피소드 들어보실래요?
1) 내 배가 아닌 남편 손에 주사 놓기
'남편 간호사님, 잘하실 수 있죠? 오늘 첫날입니다'
'아, 그럼요! 맡겨만 주세요. 먼저 알코올 솜으로 주사 놓을 부위를 소독하겠습니다. 뱃살이 통통하시네요.'
'됐거든. 얼른 주사 빵! 쏘세요'
'이제 주삿바늘에 뚜껑만 빼면 되는 거지? 뺀다?'
'응! 자신감을 가지세요. 간호사님'
'엇, 앗!!!'
남편이 주삿바늘 보호 뚜껑을 빼다가 바늘에 손을 찔린 거예요. 살을 뚫고 들어가는 주삿바늘이 남편의 손을 찔렀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괜찮냐고 물어보는 순간
2) 공중에 주사 놓기
갑자기 제 눈에 주사액이 발사되었습니다.
'엇, 앗!! 오빠!!! 왜 내 눈에 주사를 놔!!!'
펜처럼 생긴 주사여서 뚜껑을 누르면 주사가 놓아지는 형태였는데 잘하겠다고 자세를 고치다가 실수로 펜 뚜껑을 눌러버린 거죠. 맞아야 하는 주사액의 정량이 있는데 공중에 주사액을 발사했으니 솔직히 잠깐 진심으로 화가 났는데, 그냥 꺄르르르- 웃음이 터졌습니다. 주사 하나 놓는 게 쉽지 않은 이 상황이 그냥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웃으면서도 출근시간은 다가오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데 어쩌지 하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3) 피가 철철
겨우 주사를 놓고 알코올솜으로 주사 맞은 부위를 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보통 병원에서 주사 맞고 잠깐 누르면 알코올솜에 피가 묻어 나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남편 간호사가 주사를 놨으니 더 오래 꾹- 누르고 있었어요. 뭔가 뱃속으로 꿈틀꿈틀 약이 들어가는 느낌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알코올솜을 딱 떼었습니다. 두둥- 그런데 솜이 빨갛게 물들어 있고 주사 맞은 부위에서는 계속 피가 나오고 있었어요. 병원에서 주사 맞을 때는 주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말이죠. 하하. 남편이 당황할까 봐 얼른 솜을 버리고 출근 준비를 했답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주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튿날 아침이 되었죠.
4) 튕겨져 나오는 주삿바늘
'여보, 오늘은 주사가 좀 다른데?'
'응, 어제까지가 펜타입으로 된 좀 편한 스타일이었고, 오늘부터는 그냥 진짜 주사기모양 주사야. 할 수 있겠어?'
'똑같은 주사인데 겉모습만 다른 거잖아. 할 수 있지. 어제의 실수! 오늘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시작합니다.'
'네! 간호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남편의 두 번째 주사가 시작되었는데,
'아!!!!!!!!! 너무 아파!!!!!!!!!! 뭐야???????'
'엇, 아니 주사가 배에 안 들어가고 이렇게 쏙 들어갔다가 다시 튕겨져 나와, 뭔지 알지? 들어가려다 만 거'
'어, 아 너무 아픈데?'
'미안 미안. 어제보다 주삿바늘이 두꺼운 것 같아. 힘을 더 줘서 넣어볼게'
'그래'
'아!!!!!!! 너무 아파!!!!!!!!!!!!!'
'힘을 더 줘야 하나 봐 어떻게. 괜찮아?'
'어, 어, 힘 더 줘서 넣어줘.'
'아!!!!!!!!!!!!!!!!!'
'아니 어떻게....? 그냥 팍 넣어버릴게'
'어.. 한 번에 그냥 팍...'
험난한 3번의 찔림과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4번의 찔림을 끝으로 주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제 배에는 4개의 주사 자국이 생겼죠. 며칠간은 샤워하면서 배에 남은 4개의 흔적을 보고 그저 웃음만 나왔답니다. 저도 제가 제 배에 주사를 못 놓겠어서 남편에게 전담 간호사를 시켰지만, 사실 남편이라고 어떻게 주사를 잘 놓겠어요. 해본 적도 없고, 게다가 본인 배도 아닌 다른 사람 배에 놓아야 하는데 말이죠. 물리적인 3번의 찔림보다 남편 마음에 부담의 찔림이 더 깊게 파이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남편과 함께하기에 절대 못했을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비록 주삿바늘에 손을 찔리고, 주사액을 눈에 맞고, 피가 철철 나고, 주삿바늘에 4번이나 찔리고, 다 맞은 주삿바늘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혼자였으면 아예 못했을 일이잖아요. 남편과 함께이기에 이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답니다.
난임의 여정은 끝이 정해져 있지만,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참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도 남편과 함께이기에 이 길을
그저 웃으며 지나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결혼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즐겨보아요. 살면서 언제 이렇게 또 주사를 많이 맞아보겠어요. 그냥 다 지나 보면 추억이고 즐거운 일이 되어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