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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Sep 23. 2020

첫사랑을... 기억하나요?

첫 사랑과 므드셀라 증후군


‘엄마, 나도 3~4년 뒤에는 반장을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이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반장이 되어 반친구 모두를 챙겨주고 싶다는 것이다. 친구를 잘 챙기는 아이다운 생각이었다. 아이의 반장선거 이야기를 듣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 


#딸아이가 불러온 첫사랑의 기억

요즘 아이들의 반장선거는 꽤 요란하다. 포스터는 기본이고 선거송을 만드는 친구도 있다. 30여년 전인 라~떼는 ‘반장선거’가 매우 허술했다. 그 때는 “반장으로 추천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라고 선생님이 물으면 아이들은 장난반, 진심반으로 친구 이름을 불러댔다. 그 중 내 이름이 ‘갑툭튀’하면 얼떨결에 반장 후보에 오르게 되는 희한한 방식이었다. 새학기에는 특히 기억하기 쉬운 이름(나처럼)이 특히나 자주 불렸다. 그렇게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모두 앞으로 모였다. 그러고는 아주 익숙한 문장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제~가 반장이~ 된다면’
 
초등학교 2학년 반장선거. 그때도 나를 포함해 기억하기 쉬운 이름의 아이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얼떨결에 표를 많이 받은 ‘남자아이’는 반장, 나는 부반장이 됐다. 친구들은 그 아이와 나의 이름을 조합해 우리반을 ‘빛나는 은하수반’이라고 부르곤 했다. 사실 당시 반장 부반장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등교와 하교할 때 ‘선생님~ 인사’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거의 다였다. 하지만, 우리는 매우 친해졌다. 나는 ‘그 친구’네에 자주 놀러갔고 친구의 엄마는 늘 반겨주셨다. 우리는 숙제를 후다닥 끝마치고 매일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다. 화장이라고 시작했지만 결국 귀신 분장으로 끝난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세수를 하며 깔깔댔다. 


#첫사랑은 이뤄지기 힘들다?!?

반이 바뀌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놀이를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 기억은 점점 희미 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너 소개팅 할래?’라고 물었다. ‘누군대?’라고 묻는 나에게 친구는 ‘가보면 알아~ㅋㅋ’라고 애매모호한 답을 했다. 이성이 궁금한 고딩들에게 소개팅과 미팅은 매우 흔한 대화의 소재였으니 나는 그냥 그러려니 넘겼다. 소개팅 당일, 친구가 말한 장소에 가니 매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내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어 친구의 친구를 수소문해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9살 꼬맹이 시절로 돌아갔다. 귀신 분장을 하며 깔깔대며 웃던 기억을 소환해내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9살 첫사랑은 18살의 풋풋한 연애로 이어졌다. 하지만 만남은 고작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8살이 된 우리는 9살 때와는 너무 달랐던 것이다. 다시 만난 것치고 너무도 싱겁게 끝나버린 첫사랑이었다.


#기억의 왜곡, 므두셀라 증후군

우리의 첫 사랑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은 ‘기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9살 좋았던 기억의 후유증, 흔히 말하는 ‘므두셀라 증후군’이었을 지도 모른다. ‘므두셀라 증후군’은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이다. 기억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당시의 감정이 기억으로 남느냐 마느냐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많은 이들이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더 오래 남기려고 한다. 과거 좋았던 시절, 첫사랑의 아름다운 면만 떠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9살 당시 그 친구와 나도 싸웠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깔깔거리고 웃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사실 9살에 만난 그 친구와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18살에 만난 그 친구와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주변에서도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실망했다는 얘기를 한다. 다시 만나보니 기억과 달랐다는 것이다. 첫사랑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말은 결국,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기억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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