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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Sep 23. 2020

야구장이란 곳을 가보고 싶었다

by 마흔살 어른이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어느 월요일 점심시간, 구내식당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 무렵이었다. 다급한 엄마의 전화가 울렸고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의 엄마는 아빠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아빠는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고 나는 슬프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 새벽까지 이어진 수술, 의사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의식을 되찾는 건 하늘의 뜻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빠는 침대에 누워있다. 가끔 눈만 껌뻑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고프더라

아빠가 쓰러진 다음날부터 우린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장기전이 될 수 있을 거란 의사의 말에 우린 하나씩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아빠의 병원비, 엄마의 생활비를 위해 아빠의 은행 계좌부터 보험까지 모두 찾아야 하는데 서류가 참 많이 필요했다. 급하게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동사무소와 은행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은 벌써 2~3시. 정말 어이없는 건 정신없이 바쁘고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다. 아빠에게는 왠지 모르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고 서둘러 다음 장소로 떠나기로 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하염없이 쏟은 눈물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으며 아빠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공놀이 했던 기억,, 아빠와 함께 수영장을 갔던 기억, 아빠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던 기억...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게는 아빠와의 그런 추억이 없었던 것이다. 아빠는 참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전형적이 옛날 사람. 아들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공놀이 한번 제대로 안 했던 아빠, 목욕탕에서 서로 등도 밀어주지 않던 아빠.. 그 당시 아빠들의 대부분이 그랬다지만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아빠와의 추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몇 년 만에 펑펑 울었다. 엄마 앞에서는 가급적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꾹꾹 참았던 눈물까지 터져 나왔다. 편의점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상황에서..  


홈런볼 보다 야구장이란 곳을 가보고 싶었다


내가 6살 때쯤 옆집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친구는 없었지만 금방 돌아올 거란 아줌마의 말에 먼저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친구가 친구 아빠와 함께 돌아왔고, 야구장에 다녀왔다며 야구장에서 잡은 홈런볼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야구공의 부러움과 함께 '아빠랑 야구장을 다닌다고?' 매우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왜 우리 아빠는 아들들이랑 야구장 한번 안 가봤을까? 여름휴가 때 바닷가나 냇가에 가면 왜 온몸이 벌개 질때까지 맥주만 마시고 수영 한번 같이 하지 않았을까? 한강 고수부지가 그렇게 가까웠는데,, 왜 공놀이 한번 같이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아빠가 나쁜 아빠는 아니다. 훌륭한 가장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셨다. 단지 아들과 그런 추억이 없었을 뿐.. 


자상한 할아버지가 아닌 아픈 할아버지의 기억 

지금 우리 딸이 홈런볼을 자랑하던 어린 시절 그 친구의 나이가 됐다. 아들들한테는 무뚝뚝했던 아빠지만 손녀딸은 끔찍이도 예뻐했던 아빠다. 손녀딸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도 직접 타서 먹이고, 안아서 재우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 딸은 그때 자상했던 할아버지의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냥 '아픈 할아버지'라고만 기억할 뿐... 

나는 자타공인 딸바보 아빠다. 가능하면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우리 딸에게 권력과 부를 물려줄 자신은 없지만 훗날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은 넘치도록 남겨주고 싶다. 편의점에서 도시락 먹으면서 울꺼라면, 나처럼 기억이 없어서 울지 않고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울 수 있도록...

ps. 아빠의 수술을 한 의사의 말이 뇌출혈이 적어도 몇 달 전부터 시작됐을 거라 한다. 만약 아빠가 건강검진을 몇 달만 빨리 받아 뇌출혈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면, 아빠는 우리 딸에게 만은 자상한 할아버지로 기억에 남았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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