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배뚱뚱이
[벤존슨부터 발리예바까지 - 스포츠와 도핑약물 2화]
안녕하세요. 배뚱뚱이입니다. 지난 시간에 한 번에 내용을 작성하려다 보니, 내용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두 편으로 나누어서 내용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도핑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그런 도핑을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 도핑의 영역: 스팀팩!! 아픔을 잊고 전진하라
저도 90년대 학번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밤을 지새우던 세대입니다. 스타크래프트 테란 종족의 가장 기본적인 전투 유닛인 ‘마린’은 스팀팩이란 스킬이 있습니다. 이 스킬을 쓰면 본인이 아픈 것도 모른 채 에너지가 줄어들며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그래서 메딕이 반드시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핑의 한 종류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약제가 암페타민입니다. 지난 편에 말씀드렸던 약물 복용에 의한 올림픽 최초의 사망 사례였던 선수가 복용한 약제죠. 기본적으로 암페타민은 ‘교감신경 흥분’, ‘중추신경 자극’입니다. 딱 얘기만 들어도 운동 경기중 막 흥분해서 날뛰려고 하는 그런 모습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심해지면 체온 조절이나 인체의 향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LG에서 뛰고 있는 김현수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뛰었을 때 동료 선수였던 크리스 데이비스 기억하나요? 이 선수는 처음에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를 위해 애더럴이라는 약을 예외 허가를 받고 복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이 금지되면서 약을 바꾸자마자 뉴스에 나올 만큼의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우연히 때가 맞아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한국에서는 애더럴 자체가 허가받지 않아서 처방이 불가능합니다.
진통제 또한 과다한 투여 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수 혹사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팬과 안티가 공존하는 김성근 감독이 계시죠. 이 감독에게 항상 따라오는 논란이 바로 ‘대포주사’입니다. 데포메드롤이 진짜 이름입니다. 이건 국소 진통제로 약을 쓰기 전에 사무국 내지는 도핑 부서에 “나 아파서 이약 쓸게요” 하면 쓸 수 있는 약이긴 합니다. 그런데 통증은 ‘관절 또는 이 부분이 아프니까 회복을 위해 사용을 하지 마세요~’란 신호입니다. 하지만 이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통증을 과도하게 마취시키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의견입니다. 특히, 성인이 아닌 어린 성장기의 선수들에게 까지 남용된다면 흔히 우리가 말하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될 수 있어 우려되기도 합니다. (통증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 도핑의 영역: 몸의 성장을 조절한다, 성 호르몬
자, 드디어 지난 동계올림픽의 발리예바 얘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일단 발리예바에게 문제가 된 것은 혈액에서 성인(그것도 대부분 고령)에서 나타나는 협심증 치료제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는 것입니다. 트리메타지딘은 혈관을 확장시켜 근육에 가는 혈류를 늘려줍니다. 사실 기전 자체는 근육 강화를 위한 스테로이드 계열과 비슷합니다. 예전에 박태환과 경쟁했던 쑨양 (중국 수영 선수)이 걸렸던 약물 샘플 또한 트리메타지딘이었습니다. 또, 하이폭센(hypoxen)이란 약과 다이어트 건강 보조식품에서 들어본 L-카르니틴(L-carnitine)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고 하는군요.
동계 올림픽을 봤다면 알겠지만, 발리예바 뿐 아니라 다른 러시아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몸과 골반이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매우 말랐지만 근육 성능은 매우 좋아 보입니다. 현재 의심되는 부분은 여성호르몬 발현을 막아 골반 성장을 제한하고 체지방 비율이 늘지 않도록 2차 성징을 막은 것은 아닌지입니다. 실제 피겨 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 같은 종목은 20대 초반만 되면 관절의 유연성이나 체지방 변화로 대부분 은퇴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중 동작이 많은 운동 종목의 경우, 극단적으로는 12~13세에 전성기를 맞기도 합니다.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 스케이트 보드, 보딩파크 종목 동메달 리스트가 스카이 브라운이란 친구인데, 올림픽 당시 13세 (2008년생)이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피겨스케이트에서 15세 이하 내지는 16세 이하는 아예 출전을 못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미성년자가 본인이 운동을 해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스스로 판단해 2차 성징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 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제가 이번 도핑 관련 내용을 준비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약제들에 공통적인 특징을 찾는다면, 의학용어로는 irreversible, 즉,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운 비가역적인 변화가 함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운동은 오래 달리기입니다. (마라톤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너무 짧아서 창피하고요) 사실 조사하면서도 ‘아~ 내 피를 뽑았다 넣으면 좀 기록이 좋아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가 걸쭉해졌을 때 생기는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내과 교과서를 보면서 다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노출된 도핑 약제는 아마 로이드로 불리는 스테로이드 계열 약제일 것입니다. 일부 헬스, 웨이트 트레이닝 유튜브에서는 ‘로이드’ 여부에 대한 폭로와 논란이 상당히 많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을 제가 왈가왈부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스테로이드는 그 부작용이 너무 명확한 약입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신체적인 부분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함께 변화를 가져오고, 그 이전의, 즉 약을 먹기 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운동은 건강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대회에서 몇 등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건강하게 운동하고 건강을 지켰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