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배뚱뚱이
얼마 전 제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 근처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미용사와 할아버지 한 분이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매우 거슬리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아버님, 그러니까 목이 조금만 불편하면 이비인후과에 가서 다른 약 다 필요 없고 항생제 처방해달라고 해서 쭉 드셔야 돼요. 그러면 목이 편해져요!
항생제 처방도 일반인이 결정하고, 투약 기간도 본인이 직접 결정한다고? 실제로 이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돌팔이다” “자기가 쓰고 싶은 약 쓰려고 내가 말한 것 안 해준다”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개업을 한 의사, 특히 아이들을 진료하는 소아과나 감기 진료를 보는 과의 경우 이런 요청을 아예 무시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한번 맘까페나 동네 커뮤니티에서 소문이 나쁘게 퍼지면 영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싸우기보다는 환자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 합니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항생제 그거 좀 해달라면 해주지 왜 안 해주고 난리인가? 그 부분을 오늘은 Q&A 형태로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 항생제는 정확히 뭐하는 약이에요?
항생제는 영어의 Anti-biotics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항생제(抗生劑), 항=anti 생제= biotics 즉, 생물을 막는 역할을 하는 약이란 뜻입니다. 다른 자연 유래 약제들과 달리 항생제는 그 역사가 채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1928년 영국의 플레밍이 푸른곰팡이가 자란 실험실 배지에서 포도상구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보고 ‘페니실린’이란 항생제를 개발한 것이 시초입니다.
항생제의 상당수는 세균과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터트리는 (세포벽을 못 만들게 하거나, 세포벽 자체를 부수는) 기전으로 세균을 죽입니다. 즉 우리 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세균과 박테리아를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항생제는 꼭 먹는 약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고나 안약 형태로도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마데카솔도 네오마이신이란 항생제입니다. 상처에서 세균 등이 자라는 것을 막아주죠.
아래 링크의 동영상을 보면(영어이긴 하지만 한글 자막을 켜면 그런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림이 직관적입니다.) 항생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높일 수 있을 듯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Zbcwi7SfZE&t=102s
# 항생제로 어떤 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위에 말한 대로 항생제는 세균과 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합니다. 사실 저도 의학 공부를 하기 전에는 세균,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우리 몸에 나쁜 작은 것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항생제는 세균과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을 막습니다. 폐렴, 결핵, 부비동염(축농증이라고 하는), 세균에 의한 설사 등이 가장 대표적인 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감기가 없습니다. 네, 감기는 항생제로 치료하는 병이 아닙니다.
# 감기에는 항생제를 써야 해요 말아야 해요?
동네병원 원장님들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개인적인 진료 경험과 지식으로 말씀드리자면 감기는 기본적으로 상기도 (upper airway)의 감염입니다. 그리고 이 감염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합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작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아무리 항생제를 때려 부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항바이러스제가 따로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타미플루’가 대표적인 항바이러스제입니다.
그럼에도 항생제를 쓰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너무 어린아이 같은 경우 감기가 쉽게 폐렴으로 진행됩니다. 폐렴은 세균과 박테리아에 의한 경우가 많아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또, 만성 부비동염 (축농증)이 있는 경우에도 대개 감기로 증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증상이 완화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감기환자에게 항생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항생제를 쓰느냐 마느냐가 동네병원 선택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항생제를 쓴다고 빨리 감기가 나아진 게 아니라, 그냥 때가 되었기에 감기가 나아진 것입니다.
저의 과거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처음 근무했던 병원은 아무리 사소한 항생제를 쓰더라도 사유를 입력해야 했습니다. 이게 뭐냐면 이 환자에 대해서 세균 배양을 해서 어떤 세균이 나와서 항생제를 쓰는지, 만약 균 검사 없이 ‘예방적’ 항생제를 쓴다면 그게 어떤 상황인지 (예: 수술 전 사용, 면역억제 상태의 환자 등)를 자세히 입력해야만 처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환자분이 쓰고 싶다고 해도 처방이 구조적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큰 병원에서 나와 동네병원에서 근무도 해보고 하니 확실히 항생제를 많이 쓰게 되는 것이 사실이더군요.
# 항생제의 부작용은 뭔가요?
사실 항생제를 막 쓰는 것에 주저되는 이유 중 하나는 항생제를 대부분 경구 투여하다보니, 소화기관, 즉 장 안의 정상적인 세균까지 함께 죽이기 때문입니다. 항생제를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설사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항생제에 의한 배탈 때문이죠. 그래서 소화기관이 예민하다면 항생제가 무턱대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체 병원에서 항생제 사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할 경우, 그 항생제들에 대항하는 균의 출현이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이게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리인가 싶으실 것 같아 다음의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성인 여성이 겪는 급성 감염인 ‘신우신염’이란 병이 있습니다. 이 경우 소변에서 어떤 균인지 배양하는데 1~2주 정도가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증상에서는 이런 약을 쓰면 대부분 잘 듣더라 하는 ‘경험적’ 통계를 갖고 항생제를 처방합니다. 그런데 이 항생제를 항생제가 필요 없는 다른 병에서 너무 많이 쓰면 우리나라에서 돌고 있는 세균들이 점차 이 항생제를 이겨내기 시작합니다. 세균이던, 바이러스던, 코로나던지 간에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해 조금씩 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자꾸 A라는 항생제가 세균 사회에서 많이 노출되면 A에 내성을 가진 균이 주류가 되는 것이죠. 이런 현상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신우신염에 쓰던 항생제를 썼는데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현상들이 쌓이다 보니 항생제가 나온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현재 개발된 항생제로 절대 죽일 수 없는 균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흔히 ‘슈퍼 박테리아’라고 합니다.
제가 학생 때만 해도 ‘반코마이신’이나 ‘테이코플라닌’은 항생제의 끝판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반코마이신 내성균이 나왔습니다. 또, 그 반코마이신 내성균에 대항하는 텔라반신이란 약도 개발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균의 변이를 따라잡기에는 약을 개발하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의 항생제 오남용 국가로 분류되어 있고, 가장 최신의 2017 OECD 통계에서도 별다른 발전없이 최상위권에 있습니다. (Health at a Glance 2019 참조)
# 그럼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아닌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꼭 써야 하는 경우들은 이미 많은 의학적 연구가 진행되어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술 전 항생제 등) 위에 소개해 드린 내용은 '가급적이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은 줄여야겠다'라고 받아들여야지 ‘모든 양약은 독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항생제가 없었으면 정말 생명이 위독했을 환자가 항생제 하나 잘 써서 아무 일 없이 회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쓰지 않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다만 주변 아이 부모들이나 친구,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에 휘둘려서 비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항생제 처방을 스스로 결정하시는 것을 피해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저 같은 잘 모르는 의사도 이렇게 알 정도로 항생제는 현대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약제입니다. 꼭 필요한 때에 잘 사용되었으면 좋겠으며, 이렇게 쓴 제 글이, 감기에 처방되는 불필요한 항생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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