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늘부터 갓생
2019년 이후 ‘기생충’이란 단어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집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전 세계를 열광시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이 ‘기생충’이었고요. 같은 해 가을에는 항암 목적으로 개 구충제를 병용하는 미국인 암환자의 인터뷰가 빠르게 퍼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여러분은 뱃속의 기생충을 잡기 위해 구충제를 마지막으로 복용한 게 언제인가요? 분명 예전에는 봄, 가을에 구충제를 먹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구충제, 챙겨 먹어야 할까요?
1971년,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무려 85% 였습니다! 발효처리가 덜 된 인분 비료를 쓰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에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이 흔했습니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의 인분에는 기생충 알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인분이 밭에 뿌려져 채소를 통해 다른 인체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거든요. 회충 감염률이 가장 높았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생충처럼 생겼답니다. 얇고 긴 지렁이 같은…
1963년, 전주에서 활동하던 폴 크레인이라는 의료선교사(당시 전주예수병원장)가 장폐색증이 나타난 9세 여자아이를 수술했는데, 장폐색의 원인은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회충 떼였고 결국 아이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폴 크레인은 이런 안타깝고도 끔찍한 일을 영자신문인 ‘코리아타임스’에 알립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정부는 기생충 박멸을 위해 다음 해 ‘한국기생충박멸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또 2년 뒤에는 ‘기생충질환예방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죠. 기생충 소탕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연 2회 채변검사를 실시하고, 5년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내 기생충 감염률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기생충 감염이 확인되면 구충제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어요. 또 인분 사용 금지구역을 지정하는 등 강력한 기생충 박멸 활동을 펼친 결과, 기생충 감염률은 뚝뚝 떨어져 1976년 63%, 1981년 41%, 1986년 13%, 1990년대 이후로는 5%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한국기생충박멸협회는 협회 탄생의 목적인 ‘기생충 박멸’을 훌륭히 달성하였고, 사단법인 한국건강관리협회와 통합하여 지금은 한국건강관리협회(메디첵)라는 이름으로 건강검진사업, 건강증진사업(만성질환, 금연, 절주 등과 관련), 기생충감염병 연구, 사회공헌사업과 같은 국민건강증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기생충박물관(서울 강서구 소재)’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방문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의) 갔다 온 뒤 기생충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률이 높았기 때문에 연 2회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해 복용하도록 권장했습니다. 그러나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한국은 토양매개성 기생충을 박멸했다”라고 선포했을 만큼 이제 토양매개성 기생충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연 2회 구충제를 복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낮은 확률이지만 여전히 기생충 감염이 발생하긴 하는데요. 주의해야 하는 경우부터 헷갈리는 것까지 한 번 볼까요?
(1) 자연산 민물회 섭취
자연산 민물고기를 생식할 경우 간흡충(간디스토마), 장흡충 등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특히 5 대강 유역에 부근에서 감염이 지속되고 있어 질병관리청에서 위험지역을 지정해 놓고 기생충 퇴치사업을 펼치고 있답니다. 민물고기 회를 먹었는데 괜히 배가 아프거나 메스껍고 찜찜한 마음에 약국에서 구충제를 사 먹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프라지콴텔 성분의 구충제가 필요한데 병원에서 처방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이에요. 민물회 섭취 후 배가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대부분 증상이 미미합니다만) 즉시 병원을 방문하셔야 합니다.
(2) 소의 생간과 육회 섭취
육회는 민촌충, 소 생간은 개회충 감염 위험이 있습니다. 민촌충은 증상이 거의 없고 약으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심하고 육회를 즐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다행이죠? 그러나 소 생간의 개회충은 드물지만 눈이나 뇌로 이동해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민촌충은 전문의약품이 필요하니 병원에 가셔야 하고요. 개회충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구충제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5일 이상 복용해야 하거나 다른 의약품을 함께 복용해야 할 수도 있어서 결론적으로 둘 다 병원 진료를 받으셔야 한답니다.
(3) 감염에 취약한 영유아
영유아는 손을 잘 씻지 않고 또 손가락과 온갖 물건을 빠는 습관이 있어 요충에 감염되기 쉽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요충은 인체에 들어온 뒤 대장에서 살다가 밤에 항문으로 슬그머니 나와 알을 낳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이가 밤에 항문 주위를 긁는다면 요충 감염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가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요. 항문 주변을 긁으면 손에 요충의 알이 묻어 재감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염된 손을 입에 넣거나 이불, 옷에 충란을 묻히기가 쉽기 때문이죠. 따라서 요충 감염 시 가족이 모두 구충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약국이나 병원을 방문하세요
(4) 동남아 여행자
동남아 국가에서는 여전히 인분 비료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서 동남아 여행 중 음식을 통해 감염될 수 있습니다. 2005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검출되어 어마어마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인분 비료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는데 찝찝하다면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해 복용하세요. 다만 구충제는 예방이 아닌 치료 효과만 있으므로 미리 복용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5) 반려동물 가족
반려동물도 개/고양이 회충, 심장사상충 등 다양한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중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 것은 개/고양이 회충입니다. 다행인 것은 반려동물이 회충에 걸렸다고 해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 쉽게 옮지는 않습니다(옮을 가능성이 0%라는 것은 아닙니다. 변은 즉시즉시 치워주세요~) 반려동물이 회충에 오염된 분변을 섭취하여 감염될 수 있으므로 유기견, 유기묘를 입양하는 경우 반드시 구충제 복용이 필요하나 가정에서 사료를 먹는 동물의 감염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산책도 나가고 하니 정기적으로 기생충 검사를 시키고 구충제를 먹일 필요가 있습니다.
(6)유기농 야채를 먹는 사람
유기농 야채에는 왠지 기생충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인분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 야채를 통한 기생충 감염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1] 이순형, 『우리나라 기생충 질환의 변천사』, J Korean Med Assoc, 2007; 50(11): 937-945
[2] 이명노 외, 『2021년 유행지역 주민 장내기생충 감염조사』, 주간 건강과 질병, 제15권 제25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