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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Jun 29. 2021

6살 그녀의 인싸 유전자는 어디서 왔나?

by 쓱길이

“대체 얘는 누굴 닮아 이럴까?” 이 말은 어린 시절 내가 부모님에게 종종 듣곤 했던 말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내가 아이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 가문은 기골이 장대한 것으로 동네에서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들은 군인 장교 출신이 많으셨고, 핸드볼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65세가 넘는 나이에도 큰 키에 어울리는 탄탄한 몸을 자랑한다. 당연하게도 나와 남동생도 타고난 골격이 컸던 탓에 함께 다니면 운동선수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딸을 임신했다는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골격만큼은 엄마를 닮기를 바랐다. 하지만, 올해 6살이 된 딸아이는 초등학생 1~2학년 언니들과 함께 어울려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또래에 비해 독보적으로 큰 키와 체격을 자랑한다. 놀라운 유전자의 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동통한 손가락과 발가락 모양은 아내와 똑 닮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유독 얼굴이 붓는 것은 나를 똑 닮았다. 덥지 않아도 항상 촉촉한 손바닥은 아내를 닮았고, 아이의 근본을 알 수 없는 춤을 본 장인어른은 아내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고 하셨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소름 돋을 만큼 우리 부부를 닮은 딸이지만
‘정말 누굴 닮아 이럴까’ 싶은 게 딱 하나 있다.

나와 아내는 평소 외향적인 편은 아니다. 운동과 술자리를 좋아해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나마도 친한 사람 몇몇과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게 대화를 걸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낯선 사람과 밥을 먹거나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경우라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주말에도 사람이 북적이는 공간보단 조용히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딸아이는 우리 부부의 성향을 단 1%도 물려받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아이는 외향적이다 못해 인싸력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평소 놀이터는 주로 내가 데리고 다니는 편인데, 놀이터를 오고 가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딸아이를 알고 있다.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동네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게 목표라도 되는 것 같다. 


딸아이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놀이터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쉽게 말을 걸고 같이 논다. 놀이터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곤 해도 항상 말을 먼저 거는 쪽은 딸아이 쪽이다. 심지어 나를 그 아이 부모님께 소개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나오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놀이터 엄마 모임에 참가하는 유일한 아빠가 됐다.) 

놀이터뿐 아니라 동네를 걷다가 또래 아이들을 마주치면 “나 00 유치원 다니는데!”를 시작으로 상대 아이의 호구 조사를 시작한다. 한 번은 동네를 산책하다 마주친 초등학생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전에 놀이터에서 만난 언니라 하더라.


덕분에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마냥 편한 차림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이 됐다. 원치 않게 동네 엄마들과 안면을 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써도 어떻게 알아보는지 멀리서 달려와 내게 인사를 하며 딸아이의 안부를 물어보는 동네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에게는 없는 초특급 인싸력을 지닌 딸아이가 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외향적인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가까운 친척 중에도 이런 인싸는 없다.) 성격도 유전이 된다면 아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 중 한 분이 엄청난 인싸는 아니셨을까 하는 추측만 해볼 수밖에……


비록 인싸 딸 덕분에 나의 동네 생활이 조금 불편해졌지만, 누구 하고나 잘 어울리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성격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바라는 것 없이 친구가 되고 함께 놀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가능한 오랫동안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이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면 역대 최연소 동 대표가 우리 집에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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