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쓰고 미래 남편 조건이라고 읽는다.
B의 기록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방(room)을 공유하는 것 이상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면 더욱이 그러하다. 특히 나와 같은 재택 근무자는 집에서 많은 것을 한다. 휴식, 일, 식사, 취미 활동, 운동 등 집은 나의 삶 그 자체이다.
한 달 동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룸메이트로서 J와 나의 합은 어땠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퍽 합이 좋은 룸메이트였다. 물론 J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추후에 룸메이트를 또 맞이하게 된다면 (예를 들면 남편…?) 어떤 부분들을 잘 맞춰봐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어떤 부분들이 같이 사는 데에 있어서 갈등 요소가 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었다.
1. 생활 루틴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잠귀가 어둡거나 옆에 있는 사람이 뭘 하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잘 맞으면 같이 살기 편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같은 알람 소리로 잠을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더 자도 되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1시간이나 먼저 일어나야 된다면.. 내가 그의 알람을 강제로 들어야 한다면.. 상쾌하지 않은 아침이 예상된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본래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9시 반에 겨우 일어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이미 J가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루틴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같이 사는 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멱살 잡고 아침에 깨워줄 사람이 있으니 나에게는 ‘오히려 좋아.'였다.
개인적으로 생활 루틴에서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식사 시간이 맞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저녁밥을 가족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생각보다 밥을 혼자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같은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식탁을 정리하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여럿이서 먹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요리를 준비하기 쉬워지고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기에 천천히 식사할 수 있다. 또 같이 뒷정리를 하기 때문에 상차림에 대한 부담이 없다.
J는 나와 회사 동료였기에 업무 시작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업무 종료 시간이 동일했다. 때문에 삼시세끼 같은 시간에 먹을 수 있었고 매번 야무지게 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단언컨대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면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져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며칠 전 회사 동료들과 동거인과의 생활 루틴이 맞지 않는 것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만약 같이 사는 두 사람의 생활 루틴이 다르다면 대체로 ‘안 좋은 사람 쪽'으로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예를 들어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족이 함께 살면 둘 다 올빼미족이 되는 것이다. (올빼미족이 안 좋은 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활 루틴이라는 것은 어느 쪽으로든 자연스럽게 같아지거나 양쪽 다 무던한 편이라면 다행이지만 잘 협의되지 않는다면 같이 살 때 다투기 딱 좋은 요소라고 생각했다.
2. 청결에 대한 예민도
어떤 상태를 깨끗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사람마다 이것은 매우 다르다. 머리카락 한 두 개 정도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사람, 머리카락만 안 보이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델하우스 같이 깔끔하게 정리 정돈까지 해두어야 청결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머리카락, 먼지 등 직접적인 청결도와 관련한 요소들에는 예민하다. 하지만 정리 정돈 자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공간'에 대한 정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의 공간’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제주도에서 머물었던 공간은 나에게 ‘남의 공간'에 속했고 제주도에서의 나는 머리카락과 먼지만 안 보이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J가 실제로는 어떤 유형의 사람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지냈던 한 달 간의 모습은 나와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청소를 누가 언제 하냐에 대한 명시적인 합의도 없었고 그저 머리카락을 발견한 사람이 머리카락을 치웠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냥 눈치껏 누구 한 명이 집안일을 하면 다른 한 명도 다른 일거리를 찾아서 하고 있었다.
분명 둘 중 한 명이라도 이 청결에 대한 예민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면 좀 피곤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극단적으로 깔끔쟁이인 아빠와 2N년째 매우 피곤하게 살고 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적당한 수준의 청결 예민도를 가지고 있었고 남이 무엇을 하고 있나를 살피는 눈치력이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집안일 밸런스는 깨지지 않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 기간 동안 이 문제로 갈등을 빚을 일은 전혀 없었다.
3. 건식 화장실
나는 원래 살고 있는 집에서 화장실을 건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것은 샤워부스 안쪽에만 허락하고 세면대와 변기가 있는 영역은 맨발로 다녀도 될 정도로 뽀송하고 깨끗한 바닥으로 유지시켜둔다.
왜 이런 건식 화장실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외출 준비를 할 때 머리를 하는 과정에서 화장실을 종종 들어가게 된다. 그럴 때 만약 내가 양말을 신고 있고 바닥이 젖어있으면 슬리퍼를 신더라도 양말이 젖게 될 확률이 높다. 나는 그 양말이 젖는 기분을 정말 싫어한다. 또 아무래도 바닥에 물이 있으면 먼지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더 잘 들러붙어서 쉽게 더러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화장실을 건식으로 쓰면 양말이 젖을 일도 축축한 바닥에서 머리카락을 치워야 하는 일도 없다.
제주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이소에 가서 화장실 바닥을 닦을 용도의 걸레를 구매하여 샤워부스 영역이 아닌 영역에 물이 떨어지면 바로바로 닦아내었다. 사실 J가 화장실을 건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J가 화장실을 사용 후 바닥을 닦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내가 닦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며칠 우리 숙소로 손님이 찾아왔던 적이 있다. 그 기간 동안 화장실 바닥은 건식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손님들이 떠나고 나서 집 청소를 하다가 J가 나에게 물었다.
“B님, 혹시 화장실 건식으로 써요?”
“네, 저는 무조건 건식이요.”
“아, 저도 건식이 좋은 것 같아요.”
이후 우리의 제주도 숙소의 화장실은 계속해서 뽀송하게 유지되었다. 맘이 편안했다.
머리로는 내가 사는 방식을 룸메이트가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상대가 나의 방식을 따라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나의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집에서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룸메이트에게 구구절절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번에는 운 좋게 여러모로 J와 잘 지냈지만 지금까지 잘 맞는 부분만 드러난 것일 수도 있고 이후에 또 같이 워케이션을 가게 된다면 지금까지는 몰랐던 서로가 타협하고 협의해야 하는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이런 요소들을 상대방과 어떻게 조율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다. 때문에 다음 합동(?) 워케이션에서도 평화롭게 잘 지내고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근거 없이 작동되는 자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