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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Sep 13. 2022

차(茶), 이효리 그리고 강아지.

공통점은 내가 다 좋아하는 키워드라는 것.

B의 기록


차(茶)

선흘리는 대충 보면 시골이지만 구석구석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공간이 많다. ‘연화차'라고 하는 찻집은 그렇게 지도를 계속 기웃거리다가 찾아낸 보석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제주의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야생초를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전통 기법을 사용하여 차를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차를 정성스럽게 다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티 코스를 운영한다. 


카페에서도 커피보다는 녹차나 허브티를 좋아했던 평소 나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이런 찻집에서 운영하는 티코스는 주로 2-3개 정도의 찻잎을 여러 번 우리면서 차를 내어주시는데 당연히 카페에서 그냥 차를 주문하여 마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여러 번 우릴수록 달라지는 차의 맛, 덖어진 차와 물에 우려진 차의 향의 차이, 찻물을 따르는 영롱한 물소리, 따뜻함이 전해지는 찻잔, 그리고 아기자기하면서 단아한 차도구들.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맑은 차 한 잔을 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지도 두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차의 맛은 더 깊어진다.


첫 번째로 방문한 찻집에서 120%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이후 제주도에서 더 많은 다원과 찻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제주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새로운 찻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제주에서의 생활로 얻게 된 새로운 취미이다.


이효리


하루는 미리 봐 두었던 숙소 근처의 멋있는 남미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초보운전자인 내가 뽈뽈거리면서 차를 운전하여 도착한 그곳은 ‘오래된 구름'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남미의 어느 가정집에 초대받은 것과 같은 기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에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이름의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다. 


가게 밖에 세워져 있던 차만 보아도 로컬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가게였고 안에는 사장님의 지인으로 보이는 듯한 손님들도 있었다. 그 테이블에는 이효리 스타일을 하고 계신 여자분과 이상순 스타일을 하고 계신 남자분께서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음식과 술을 즐기고 계셨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소위 이효리 st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스타일이 그들 부부와 너무 똑같아서 실제로 오해했던 적도 있다. ‘이효리 st’란 구체적으로 서술해보자면 정돈되지 않은 풍성한 머리숱의 히피펌, 빛바랜 색상의 펑퍼짐한 하의,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조끼, 흙이 잔뜩 묻은 스니커즈 그리고 화장기가 전혀 없는 건강한 피부톤이다. 내가 파악한 이 이효리 스타일의 제주도 패션을 기준으로 대충 육지 사람인지 제주도 사람인지 구분이 가능했다. (물론 이것은 제주 시내가 아니라 내가 주로 돌아다녔던 제주도 산간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감상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외국도 아니고 같은 한국인데 이렇게나 패션 트렌드가 다른다니 좀 신기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제주도에 살면서 저러한 스타일을 갖게 된 것일까.


이 호기심에 대한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청바지보다는 조거 팬츠, 코트보다는 후드 집업을 더 자주 꺼내 입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아지


제주도는 서울에 비해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음식점들이 많다. 어느 날은 내가 방문했던 카페와 식당에서 만났던 동물의 수를 세어보니 무려 5마리였다. 사람에 따라 이러한 제주의 문화를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제주도가 대체로 동물 친화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는 “유기동물이 가장 많은 지역 1위"라는 어두운 면도 갖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집계가 가능한 수준에서만 파악해봐도 매년 서울의 10배 이상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자신이 기르던 동물을 자신의 손으로 버리는 개체(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한 행동에 갖다 붙일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은 내가 그 동물보다 먼저 죽게 되는 경우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왜인지 버려진 것 같은 강아지를 도로 옆 풀숲에서 목격했던 적이 있다. 무언가를 판단하기에는 짧은 순간이었고 차를 돌릴 수도 없었던 길이라 그냥 지나쳐 버렸다. 같은 길로 돌아오며 확인해봤지만 다시 그 아이를 찾을 수는 없었고 이후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다른 누군가가 안전한 곳으로 잘 데려다주었거나 아니면 다시 자신의 집으로 잘 돌아갔을 것이라고 믿으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제주에 있는 한 달 동안에는 이렇게 동물 때문에 행복하고 동물 때문에 우울했다. 나는 감정적인 측면에 있어서 다소 회피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완전히 정착하여 살 수 없는 이유를 대라면 ‘버려진 강아지를 너무 많이 만날 것 같아서'일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 이전에 그냥 버려진 동물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싫고 무섭고 힘들다. 자칭 동물을 사랑한다는 사람으로서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선적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상황을 내 현실에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지금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것 자체도 나에겐 용기가 필요했다.)


당장은 버려진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육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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