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도다 신약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by 제이앤

"아빠, 장하도가 무슨 뜻이에요?"

"장하도? 친구 이름이야?"

"아니고요, 장하도라고 있어요. 근데 뜻을 모르겠어요."

"글쎄다. 처음 들어본 말인데? 무슨 섬 이름인가? 어디서 들었는데?"

"우리 학교 교가에 나와요."

"교가에? 한 번 불러봐."

"아직 못 외워서 잘 모르겠는데, 장하도다~ 그 이름~ 뭐 대충 이렇게 시작해요."



끄응. 미안하다, 얘야.

아 하면 어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너한텐 아무 잘못 없다. 전학 온지 얼마 안 돼서 교가가 낯설었던 거고, '장하다'라는 어휘와 '~도다'의 쓰임새를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아빠의 불찰이다. 하지만 괜찮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고 씩씩하게 물어보는 용기, 장하도다! 대견하도다! 자랑스럽도다! (뭐, 대충 이런 류의 단어들이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도다'는 감탄할 때 붙이면 느낌이 좀 더 산다고 해야 하나? 종결어미니 뭐니 하는 건 나중에 배우도록 하고.)






"끝말잇기? 좋지! 엄마가 먼저 할게. 창고."

"고무신."

"신약."

"오호~ 신약이라. 아빠가 신약 개발하는 회사 다닌다고 대뜸 신약을 생각했네?"

"에이, 구약, 신약 할 때 그 신약을 말한 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요, 신~약이요. 맛이 '시다' 할 때 신~약이요."

"........."


끄응. 넌 정말 매력적인 아이구나.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 매력이 있어.

난 너의 그런 점을 무척 좋아해. 근데 아이셔같이 신맛이 나는 약이 있다면 아이들이 좋아하려나?





장하도다신약최종2.jpg 너희의 (마음 속) 언어를 잘 헤아리는 아빠가 되고 싶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옛말이 있다. (개떡에 붙은 개-때문에 '개떡 같은 놈, 성격 한번 개떡 같네'처럼 욕설에 가깝게 사용될 때도 있지만, 아마도 그 어원은 어려웠던 시절 보릿겨 등을 개어 아무렇게나 쪄낸 떡이라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뭔가 변변찮을 때 쓰는 비유 정도로 이해하자.) 나의 작은 바람 중 하나는, 너희들과 소통을 잘 하는 아빠가 되는 것이다. 아 하면 어 하고 싶다는 거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을 개떡같이 표현했어도(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서 개떡은 변변찮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날름' 알아먹는 아빠이고 싶다.


소통은 정확한 어휘와 오류 없는 문법을 구사할 때만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와 소통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면 누구와도 가능하다. (정체불명의 옹알이를 해대는 막둥이 후니와 진지하게 소통하는 아빠가 산 증인이다.) 진심으로 소통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보통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만 할 뿐,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외면하고 왜곡한다. 질문을 하는 것도 질문을 받는 것도 귀찮아하고.


그만큼 '진짜 소통'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진심과 관심은 기본이다. 내가 너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내 하고 싶은 말만 떠들어 댄다면 내 입에 재갈을 물려다오. 너희의 말을 귀담아듣고 너희의 (마음속) 언어를 잘 헤아릴 수 있는 아빠가 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그동안 너희의 언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근데 말이야, 나는 찰떡같이 말했는데도 상대방이 개떡같이 알아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좋은 방법을 알거들랑 가르쳐줘.














* 자녀들의 성장에 '어떻게든' 함께 하고픈 아빠가, 일상 가운데서 길어 올린 단상을 가벼운 토막글로 엮어 전합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아빠의 마음과 생각들이 때에 맞게 흘러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흘러가 닿아서 또 다른 생각을 듣고 배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요.

글 속 삽화는 아이들이 그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그림이 시작된 배경이 좀 더 궁금하신 분은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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