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대체 가능해도 너희들 만큼은
작은 수첩 빈 틈에 만원 권 지폐를 넣다가 절반 조금 못되게 찢어졌다. 그것도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가로질러서. 테이프를 최대한 얇게 잘라 섬세하게 보수하면서, 백성을 세심히 살피셨던 군주의 덕을 칭송했다. 그러다가 다른 지폐의 초상들 중 한 두 분 정도는 근현대사 쪽 인물들로 대체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세종대왕께 속닥속닥, 구시렁구시렁.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지폐 속 위인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든지) 다른 인물로 대체될 수 있다. (사족이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나 우리가 잊지 말고 교훈 삼아야 할 사건들도 지폐 도안으로 새겨지는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세월이 좀 더 흘러야겠지?) 우리가 사는 현실은 많은 것들이 다른 것들로 빠르게 대체되며 돌아가고 있다. 뉴스의 소비는 종이신문에서 스마트폰으로 대체됐고 많은 영역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 회사에서 아빠 자리도, 누군가의 어떤 자리도 언제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다. 대체돼도 세상은 돌아간다. 일의 기능적 측면에서 사람이나 사물이 대체되는 것은,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존재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대체되는 것은 슬프고 아픈 일이다.
아빠에게는 대체 불가인 존재가 있다. 바로 아빠의 형님이다. 너희들이 큰 아빠라고 부르는 그분, 아빠가 존경하는 사람이고 다른 이로 대체되지 않는 존재이다. 왜 일까?를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여러 이유가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자기의 소임을 성실히, 꾸준히, 의미 있게 감당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 '어우, 저렇게 하기 참 힘들 텐데....'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사람들과 얘기 중에 존경하는 사람 얘기가 어쩌다 나오게 되면, 어김없이, 거침없이 '우리 형'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놀라는 눈치다. (형제, 자매들끼리는 존경 따위는 하지 않는 건가?)
지금은 존경한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형이 싫을 때도 많았다. 하나 예를 들자면, 중학교 때 집에 놀러 온 아빠 친구 상학이(엄청 똑똑한 녀석이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앞에서, 내 뺨을 때렸다. 끓여 달라는 라면을 얼른 안 끓였다고. 나도 배를 힘차게 가격했다. 그다음엔, 음...., 여기까지.
살면서 형한테 서운한 것도 많았고 화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형은, 언제나 형이었다. 속담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어서,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정확히 맞았다. 나이를 먹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중에도 형은 언제나 형 다웠고, 지금은 많은 이들을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서 함께 걷는 삶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으니, 존경받아 마땅하다. 라면 안 끓인다고 뺨을 후려 쳤던 형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내게는 너무 고맙고 배울 것이 많은, 대체 불가한 사람이다.
아들만 넷이다 보니, 가끔 걱정스러울 때도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놈의 자슥들, 서로 우애가 안 좋으면 우짤꼬, 각자 사느라 바쁘고 서로 무관심하면 우짜노." 이런 걱정이 '아주 가끔' 엄습하기도 한다. 아빠가 할머니께 효도를 하지 못하니 효도하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다만 너희들끼리라도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면서 대체 불가능한 형, 동생으로 잘 살아주면 좋겠다. (호형호제할 만한 사람들도 많이 사귀시고.)
부탁해요, 아드님들.
* 자녀들의 성장에 '어떻게든' 함께 하고픈 아빠가, 일상 가운데서 길어 올린 단상을 가벼운 토막글로 엮어 전합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아빠의 마음과 생각들이 때에 맞게 흘러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흘러가 닿아서 또 다른 생각을 듣고 배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요.
글 속 삽화는 아이들이 그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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