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가고 하지만 다시 웃고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아빠 얘기는 아니다. 너의 할머니께서 일터에 나가셨던 건 맞지만, 아빠 혼자 라면을 지겨울 정도로 먹지는 않았다. 십수 년 전 지오디가 세상에 들고 나온 ‘어머님께’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이 노래는 언제나 아빠 마음에 머물고 있다. 애잔한 노랫말과 편안한 멜로디가 향수를 자극하고, 어려웠던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겪은 삶의 고단함을 담아내어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이 페이버릿이다. 그렇다고 애창곡은 아니고.
‘예뻐서 사랑에 빠지는 걸까, 사랑에 빠져서 예뻐지는 걸까?’라고 어느 가수가 노래하며 묻는다.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웃어서 행복 해지는 것일까?’라는 물음과 닮은꼴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자의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후자일 게다. 사랑에 빠져서 예뻐지는 것이고 웃다 보니 행복해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노래도 매한가지일 터. 좋은 노래라 내 마음에 머물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머물게 된 노래가 결국 좋은 노래다.
남편과 헤어진 후 두 자녀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던 한 여인은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라는 노래(너희가 몇 년 전 엄청 불러댔던 바운스, 바로 그분이 부른 노래다.)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사연이다. 이런 예는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비근하다. 몇 해 전 여름 명량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받은 루저들을 일으켜 세워주며 선전한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도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마크 러팔로. 어벤저스 헐크 알지? 이 아저씨가 그 헐크다.)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 ‘A Step You Can’t Take Back‘을 통해 회복되기도 한다.
한 때 대한민국 대중음악계가 가시나무로 뒤덮인 적이 있었다. 맑은 영혼으로 노래하기를 열망했던 가수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를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다시 불렀고 조성모의 리메이크가 그 정점을 찍었다. (응팔 이후 네가 즐겨 부르는 전인권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가 곽진언과 김필, 그리고 이적에 의해 다시 불려진 것처럼 인기가 대단했지.)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내면의 성찰과 촉촉한 깨달음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그 하덕규 역시 노래로 인해 다시 살게 된 인생이었다. 깊은 공허감과 우울증으로 술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어느 깊은 겨울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찬송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예배당을 찾아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에는 힘이 있다. 사람은 노래하며 살아가도록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울적하고 깊은 낙심에 허우적거릴 때 마음이 저절로 호출해내고, 삶이 기억해내는 인생의 노래가 있으면 행복하다. 주저앉은 나를 위로하고 절망의 늪에서 건져줄 노래라고 해서 반드시 고해성사 같은 ‘가시나무’나 찬송가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창 밖의 여자일 수도 있고 차차차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느 날 밤, 평소 안 그러던 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흥이 나서 부르는 콧노래라기보다는, 왠지 힘을 내려고 부르는 것같이 느껴졌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 살다 보면 외로운 날도 있고 서러운 날도 있고 억울한 날도 꽤 된다. 그럴 때 나지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거, 좋은 방법이다. (노래방 가서 혼자 고래고래 부르는 것도 물론 좋고.) 그렇게 너에게 찾아온 감정을 안아주고 그렇게 그 감정을 보내주는 것만 같았던 너. 우리 아들 다 컸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 자녀들의 성장에 '어떻게든' 함께 하고픈 아빠가, 일상 가운데서 길어 올린 단상을 가벼운 토막글로 엮어 전합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아빠의 마음과 생각들이 때에 맞게 흘러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흘러가 닿아서 또 다른 생각을 듣고 배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요.
글 속 삽화는 아이들이 그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그림이 시작된 배경이 좀 더 궁금하신 분은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