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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남자 Jul 08. 2024

모욕이 사랑의 언어라고?

스톡이는 나를 진정 사랑한걸까?

https://youtu.be/2KDzDmDKE24?si=hbflkpVTDMpRM74n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가깝게는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어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를지를 선택하고, 멀게는 어떤 대학을 갈지, 어떤 배우자를 만날지, 어떤 직업을 갖을지를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 전체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선택의 무한루프를 해매는 과정이라 할만하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같은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어떤 사람은 A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B를 선택한다.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인생에서 선택의 가치가 다를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로의 피노타입( Phenotype)이 이라는것.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인지를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선택의 순간 '돈'을 선택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만,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결국 40대에 자살을 하고 만다.  반면 어떤  사람은  소소한 급여노동자를 선택하여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살아가지만, 자신의 가족을 만들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며 영겁의 세월을 살아갈수도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만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행복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수 있고,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독자적인 선택권이 부여된다. 다만, 선택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이번생에서 모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전에 이미 경험했던 선인들의 조언과 충고를 듣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조언일 뿐, 선택은 여전히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 외로운 존재일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우리들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택권"을 누군가에 의해 "통제"당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친구를 사귀어도 어디서 저런걸 친구라 사귀냐!!"


"너는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돼."


"니가 왜 못사는지 알아? 게으리고 미련해서야."


"너의 선택은 잘못되었어! 니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내가 뭐랬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어 안했어!! "


"미안할 짓을 왜 했어? 무릎꿇고 반성해!!"


"진짜 한심하다. 니가 그런 선택을 하고도 인간 새끼냐?"



혹시 여러분의 연인이나 반려자 중에 이런말을 여과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100이면 100 여러분의 선택을 조종하는 가스라이터이다. 이는 선택에 있어 진정한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일종의 모욕감을 주어 심리적으로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조종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 스팩트럼상 자기애적인 특성이 매우 두드러진 사람이다.



실제로 여기에 나온 말은 전부 스톡이가 나에게 혼인기간 내내 수년간 나에게 머리에 못이 박힐정도로 자주 했던 말이다. 처음엔 이 여자가 나를 진정으로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나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내가 정말 이래서 인생이 잘 안되나 싶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스톡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인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에 의하면 "나르시시스트에게 모욕은 사랑의 언어"라고 말한다. 모욕이 사랑의 언어라니 일반인의 가치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에게 이러한 모욕과 폭언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방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그것을 사랑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르시시스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랑의 언어를 통해 관계를 지속하고 그러한 지배관계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이 이러한 자신의 나르시시스틱한 사랑의 표현방식을 이해해 주지 않고 혹시라도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들의 사랑의 언어는 점점더 폭력적인 성향으로 발전되어 간다.

 

실제 스톡이는 나에게 "너를 죽여버리고 싶다.", "병신새끼", "뒤져버려", "븅신아"라는 언어로 폭언이 발전되어 갔다.


이게 부부간에, 심지어 여자(부인)가 남자(남편)에게 말 할수 있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으나, 어쩌겠는가 이 모든게 카카오톡과 대화 녹취록에 그대로 담겨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내용은 이혼청구소송에 증거로 들어가 있다.)  스톡이의 사랑의 언어는 모욕과 폭언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나르시시스트 관점에서는 스톡이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한게 맞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언어를 계속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고, 스톡이를 감당하기엔 내 사랑의 그릇이 그렇게 까지 크지 못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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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글이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저의 일상생활의 일기임을 말씀 드립니다.  누군가를 특정화하지도 않았고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써내려간 글임을 말씀드리며 사실여부도 확인해 드릴수 없음을 다시한번 말씀드리니 참고해주세요. 생각나는대로 감정가는대로 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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