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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May 10. 2020

우울함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

시린 마음에 덮어주는 극세사 이불은 바로

평소에 선명한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엊그제는 달랐다.


엄마가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엄마가 요리를 너무 이상하게 했다.

내 손님이 4명이나 와있었는데 고작 1인분도 안되는 요리를 만들어 접시에 담고 계셨다.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 왜이래? 왜그래? 사람이 몇인데 왜 이렇게 만들었어?'

삼십 평생 단 한번도 부모님께 언성 높여 본적 없는 나로서는 소리지르는 내 모습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아침 다섯시 반, 갑자기 마음이 얼음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는 어쩌면 다시는 서서 요리를 할 수 없으실테니까, 다시는 나와 이렇게 말싸움을 할 수 없을테니까.

당장 누군가에게라도 '나 이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디에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슬픈 이야기들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라 생각하고 나는 나의 이불을 힘껏 끌어안았다. 한낮의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요즘에도 극세사 이불을 포기할 수 없는건 나를 물리적으로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건 이 이불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날 저녁 잠들기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오늘 슬픈 일이 있었어! 말해도 괜찮을까?'

조잘조잘.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아니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이야기 했다.

그런데 친구가 '엄마한테 왜 화냈어~ 음식은 맛있었어?' 라고 물었다.


응? 뭐지? 내가 왜 슬픈지 모르는건가 갸우뚱. 그래서 굳이 또 설명을 했다.

'우리 엄마 아픈거 말 안했어? 나는 엄마가 요리 하는 모습이랑 엄마랑 말하는게 꿈이라서 그래서 슬펐어.'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알고 있어! 그치만 꿈에서라도 화내지마. 엄마 음식 맛이라도 기억 났으면 기분이 좀 더 나았을텐데. 너가 화낸다는건 그만큼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는게 아닐까. 그니까 우울해하지마'


갑자기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며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180도 달라진다.


나는 나의 슬픔, 절망에만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 생각이 과거에 있으면 우울해지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진다고. 나는 계속해서 과거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꿈을 꾸고도 그렇게 슬퍼했던거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친구는 단순히 내 행동, 내가 느낀 슬픔, 이 슬픔을 어떻게 하면 기쁨이 될 수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엄마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면 행복했을텐데! 엄마 음식맛이라도 기억이 났으면 더 멋진 꿈이었을텐데. 곧이어 친구는 꿈 해몽을 찾아서 보내주었다. (참고로 친구는 천주교)

내가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고 화내는 꿈을 꾸었다면 더욱 길몽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현실에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의 길몽입니다

갑자기 얼음장 같던 마음이 갑자기 사르르 녹아 마치 봄날의 샘물처럼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여유로운 콧노래까지 부르며 말이다.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다르게 고쳐먹지 않으면 어떤것도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치고 지쳐버려 스스로를 구해낼 힘이 없어지자 더이상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엔 내가 어둠속에 있는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밖으로 나오기 위한 걸음을 멈춰버렸다. 마치 여기가 내가 원래부터 있었던 곳처럼 익숙해지고 말았다.


우울함은 마치 도미노처럼 한번 넘어지면 계속해서 넘어지는 방법밖에 모른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자꾸만 스스로를 더 바닥까지 치닫게 한다.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절망이란 감정을 학습해버리면 희망을 꿈꾸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이렇게 아름다운 면을 발견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화들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슬픔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던거야 하고 말이다.


친구과 나누었던 늦은 밤 짧은 이 대화가 나에게는 마치 우울함의 고리를 끊어주는 작은 망치질과도 같았다.

세상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그 일이 나 혼자만의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도 자신의 마음을 덜어내어 나를 위해 충분히 위로하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슬픈 마음이 도저히 혼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친분의 깊이와 상관없이 나에게 어떤 존재의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그 순간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 털어놓는 건 어떨까. 그렇게 털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꽤나 길어지는 슬픔의 시간들을 겪으며 느꼈다. 이렇게 발견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감정의 인사이트가 나의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모이고 모여 더욱 단단한 나를 만들수 있을거라고 오늘도 믿는다. 그 믿음 하나로 또 다시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며 여유롭게 헤엄을 쳐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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