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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03. 2018

우연히 봄, 우연히 옴.

우연히 봄. 우연히 옴.

몰랐던, 어쩌면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 오후였다.

꼬불꼬불 낯선 길을 지나자 익숙하게 아픈 길이 나왔다.

같은 길을 가는데 이토록 기분이 제각각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나도 그래요, 당연한 걸요,

라는 대답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이토록 나와 닮은 사람임을 알면서 그게 너무 미웠는가 보다.

항상 옆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감히 함부로 대했는가 보다.
-
떠나기 전에 또 보아요, 라는 말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줄게요, 라는 말은 반드시 다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려운 만남이 아니면서도 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려 한 것은

항상 모순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내가 너무 위선자같아서였다.

미안한 게 많으면 더 잘해주어야 하는데,

만났을 때 혹은 만나지 않았을 때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고맙고 미안할 때의 표현이 서툰 탓이다.

변명일 지 모르겠지만 잘해주면 다시 내게 더 잘해줄까봐 겁이 나는 탓이다.

-
네비게이션을 보고 가면서도 늘 잘못 드는 길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만나는 것들이 많다.

우연히 잘못 든 길에서 좋은 풍경을 만났고 서울에서도 봄이 온 걸 알았고 투닥투닥 이야기를 하다보니 결국,

왔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내 말에 다른 이야기를 내뱉던 사람이 오늘은 동일한 말을 했다.

아픔과 슬픔의 가장 깊숙한 곳을 보았던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나지 못할 것 같았던 길을,

빠르게 심장 부여잡고 수동 특유의 덜컹거림을 느끼며 아주 잘, 지나왔다.

-

그렇게 오늘을 보낸 내게, 네게, 고생, 많았다.

한 마디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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