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Jan 23. 2019

추억을 샀다

내 손으로 처음 LP판을 산 것은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였다.
정처없이 누군가의 뒤를 좇다가 내 눈에 포착된 중고서점.
서점 밖에 팔기 위해 내어놓은 수많은 LP판들은,
모두 옛주인을 잃은 채 슬프게 제 값어치를 뽐내고 있었다.
듣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돈 1유로에 혹해 무얼 살까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는 이름이라곤 음악시간에 배운 몇몇의 거장들 뿐이라 '슈만'이라 적힌 예쁜 녹색의 표지를 집어 들었다.
내가 이것을 들을 날이 올까,
하는 생각보다 어느 누군가의 오래된 추억을 고작 1유로에 샀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내 고작 1유로에 아빠의 행복을 구매한 것 같아 다시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날은 다시 시작했던 긴 여행들 중 마지막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빠가 턴테이블을 사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 장 안에 있는 무수한 LP판들 때문이 아니라,
지직거리는 이 특유의 음질을 타고 그 언제로든 돌아갈 수 있는 이 시간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추억을 1유로에 사서,

다시 나의 추억을 덧댄 LP판.

다시 그곳을 갈 수 없을지라도,

오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은 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