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가을의 문턱에도 가지 못했는데
돌아보니 이미 낙엽이 지고 있었다.
남들보다 느리게 느리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가을을 너무 좋아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일까.
정말 몰랐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는 내 마음을 다 줄 수가 없었다.
그 끝에 있을 두려움을 너무 빨리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쓸쓸함이 먼저 떠오르는 가을이 좋은 이유는,
참으로 나와 닮아서였다.
그 허전함이 너무도 공감되어서였다.
가을에는 괜히 울어도 괜찮을 것만 같고,
혼자가 되어 외로워도 괜찮을 것만 같다.
이름 모를 그리움에 온통 붉어진 마음을 슬며시 보여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기댈 수 있는 계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제는 캄캄하다.
그럼에도 이 계절이라 참 좋다.
캄캄해도 적당히 서늘해진 가을 밤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가을 밤을 고이 접어, 안녕,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