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을 따라 걸으니 온통 당신 생각 뿐입니다
웬일이냐며 마지못해 손을 흔드는 억새를 보고 있자니
사이에 숨어 환하게 웃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흐르는 시간에 저항하려 발버둥치던 나는 이제
가만히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강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봅니다
당신과 나 사이 바람결 따라 갈리는 듯 하여
부러 당신에게 꼭 붙어 있으려던 나는 더이상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조차 없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
마음 한 구석이 또 아픕니다
떠올리려 애를 쓰니
손끝이 자꾸만 저려옵니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십니다
반대로 반대로 걸으며 등 돌리던 바람을
그 바람 내음을
이제 온전히 마주합니다
네, 당신,
그런 사람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