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꽂혀있는 여러 권의 책들 중에 한 권의 책을 다시 뽑아본다. 이 책을 살 때만 하더라도 꼭 다시 읽을 것만 같은 느낌과 다짐이 함께였었는데 까마득한 오래전 이곳에 정착해 버린 그들의 운명에서 다시 빛을 보게 해 주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줄어들었다기보다, 우연히 둘러본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꼭 언급을 하려고 했던 책인데, 책이 말하고자 했던 느낌만 어렴풋하게 기억한 채, 이곳에 묻어두었던 책의 제목은 '미움받을 용기'이다.
한 때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이 책은 어느샌가 잊혔지만 기억 속에서는 살아있었다.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을 때,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느낌과는 비슷했지만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서 왜 이 책을 좋아했었는지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아닌 나의 선택과 나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부정.
몇 년 만에 다시 펼쳐보는 이야기는 그대로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는 달라지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나의 상황, 환경, 행동들의 변화는 책을 소화하는 필터를 변형시키면서 받아들이는 포인트와 맥락이 새롭게 들어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다시 보니 되새겨지는 명장면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같은 것들이 다르게 들어오면서 다른 책이 되었다.
다시 읽기의 처음 시작은 학교에서부터였다.
가장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복습이었다. 배운 것들을 다시 한번 보는 건, 먼저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재미도 없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왜 또 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복습을 해야 했던 것은 시험을 위해서였다. 전체적인 맥락보다 세세한 것들을 물어보는 시험은, 아무리 봐도 존재 유무조차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한번 더 보면 언젠가는 다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절망으로 재미없는 것들을 반복해야 했다.
오로지 중장기적인 기억에 집중하기 위한 단기적인 다시 읽기의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 해야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재미없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읽기가 단순히 내용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쌓아온 인생이 조금씩 바꿔둔 초점에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더 좋을지도 좋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더 풍부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