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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의모든것의리뷰 Nov 26. 2023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아팠기에 사랑이었음을

 회사를 마치고, 이미 어두워진 길거리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 입안에 가득 머금고 발걸음을 옮긴다. 비가 그치지 않아 한층 더 쌀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에서 걸어가는 군청색 트렌치코트와 검정 슬랙스의 그는 가로등의 불빛이 보이지 않았으면 그 형태도 채 보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집까지 아직 조금 더 걸어가야 하지만 너무 힘들었는지, 길가에 놓인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내쉰 한숨에 입김이 살짝 묻어있다.


저 하늘을 가린, 아직 떨어지지 않은 곧 낙엽이 될 단풍나무의 넓은 이파리에서 채 떨어지지 않은 빗방울이 한 방울 떨어져 그의 눈가에 떨어진다. 우연하게 타이밍이 맞았을까, 마중물이 된 그 빗방울이 그의 눈에서 가을비를 내리게 한다.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이제는 각진 얼굴을 따라 내리는 가을비가 땅에 닿을 때까지 아무 미동도 없이 마음에서 올라온 슬픔은 눈으로 빠져나간다. 꽤 긴 시간이 흘러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의 슬픔은 한동안 그를 잠식한다. 


앳된 얼굴의 소년과 그가 3개월을 혼자 바라보았던 사랑스러운 소녀가 그의 용기로 인해 만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러난 행복한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혹시 로또가 당첨되었는지,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 일쑤였고, 그는 그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함박웃음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다. 


언제까지나 행복할 줄 알았던 시간들이었지만 행복도 잠시 함께 그를 힘들게 한 아프게 한 나날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이유로, 후회와 슬픔으로 범벅된 그 시간들이 그를 괴롭혔다. 너무 행복해서 사랑인 줄 알았던 시간들이었건만 지금의 아픔이 그때가 사랑이었음을 더 진하게 새겨진다.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흐느낌을 자제하던 그의 어깨가 차분해질 무렵,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본 그의 눈동자에 비친 하늘의 인공위성 하나에 기억 하나를 새기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 집으로 나아간다. 여전히 밤은 어둡고 쌀쌀하지만 그래도 좀 낫다.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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