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의모든것의리뷰 Nov 26. 2023

첫 눈

카페에 앉아

11월 중순 수능 다음날, 올 겨울의 첫 눈이 내려왔다. 오후부터 시작될거라던 눈은 조금 더 이르게, 오전부터 시작되었고, 마침 연차를 쓴 나는 첫 눈이 오는날, 집에서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지난 가을, 이렇게 온전히 하루를 쉴수 있는 가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평화로운 하루는 나의 일상을 조금은 비틀었고, 그 비틀림에 눈까지 오니 뭐랄까 겨울을 맞이하여 사용하는 연차같고,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들렀다 아주 애매한 12시,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기 시작할때 카페에 들어가 앉아 공간을 통째로 빌린것 마냥 그 넓은 공간에 혼자 앉아 밀려온 카톡과 인스타를 확인하고 답변을 보내며 밀크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보니 어느 새 사람들이 하나 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카페의 공간이 가득 차진 않았지만 카페 전체가 나의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의 테이블로 공간이 한정되었다. 

밀크티가 나오고, 문득 창밖을 보니 세차게 눈이 내린다. 첫눈이 함박눈이라는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눈인지 비인지 모를정도로 빠른 속도로 하얀색 물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언듯보면 우박처럼 보이기도 하는 눈이 쏟아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면 언제봐도 눈이 오는 창밖의 계절은 낭만이 한스푼 추가된다. 금방이라도 쌓일 것과 같이 쏟아지던 눈은 그 기세가 약해지면서 서서히 잦아들지 않고 언제 눈이 왔냐는 듯, 갑자기 멈추어 버렸다. 

첫 눈은, 아니 눈은,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기 때문에 마치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항상 드러나있는 도로와 보도블럭, 운동장의 흙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눈으로 뒤덮어 이 세상이 한층 푹신해보여진달까, 막상 눈을 만져보면 한없이 낮은 밀도에 손바닥위에서, 손가락 위에서 녹아내리는 하얀 신기루. 하얀 신기루에 빠져 조금 더 낭만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나 세찬 눈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지금 빨리 나가야한다며 부랴부랴 짐을 싸고 나갈 준비를 한다. 짐을 다 싸고 막 나가기 시작하면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다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지 재빨리 패딩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눈이 패딩의 뒤통수를 너무 많이 때리기 전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챙겨온 책을 읽기 시작하려 책을 편다. 카페에서 다 읽으려고 마음을 먹고 가져온 책이지만 지금 하는 꼴을 보니 딱히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작가의 이전글 코인노래방의 목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