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기억의 시대에서 기록을 외치다.
나는 요즘 같은 21세기를 뭐라 부르냐면 '과잉 기억의 시대'라고 한다. 나의 모든 흔적들은 기록으로 남아, 어떤 판매의 수단이 되고 있다. 10년 전의 핸드폰 화면을 캡처한 사진들이 클라우드에 남아 공간을 소모하고 있다. 내가 검색한 것, 좋아요를 누른 것, 심지어 다른 게시물보다 더 오래 본 게시물의 시청 시간까지 기록으로 남고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가루를 흘리며 알고리즘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셈이다. 수많은 기록들은 우리의 취향과 성향을 드러낸다. 그렇게 수많은 것들이 기록되며, 그것이 '나'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쫓아 '나'를 알아간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추천되는 알고리즘이나 나와 맞팔한 지인들이 '나'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알고리즘은 자주 여행을 추천해 준다. 추천 피드를 가득 채운 산이며, 바다며, 아름다운 도시들, 비행기 특가, 투어 상품들이 끊임없이 뜬다. 나는 알고리즘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그러면 알고리즘은 "너가 여행을 자주 검색하고, 여행 관련 콘텐츠에 좋아요를 눌렀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아냐"고 묻는다면, "너랑 비슷한 20대 여성이 좋아하는 게 여행이야"라고 답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내가 여행을 왜 하는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나를 끔찍히 잘 알지만, 동시에 잘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나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왜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인맥을 가졌지만, 왜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는 진정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기록되지만, 우리의 사색은 기억되지 못한다.
숨만 쉬어도 내 삶이 기록이 되는데.
이미 기록은 넘처나는데.
나는 왜 기록을 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나를 알기 위해 기록한다. 내가 다녀온 카페의 영수증, 지나가다 받은 스티커, 소소하게 나눈 대화들, 시간이 지나면 희발되어 사라지는 작은 생각들을 기록한다. 내가 기록한 모든 것들은 쌓이고 쌓여 나를 구성한다. 나만의 알고리즘을 쌓는다. 알고리즘과 다른 점은 그것들이 왜 나를 구성하는지,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고 있다. 내 손으로 하나하나 작성하고 고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알고리즘은 정확하다. 다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여행 기록들이 나에게 알려준 이유다. 여행을 가면,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는 여행할 때 돌담에 핀 다육이를 좋아하고, 걷다 보면 끝나는 바닷가, 밤하늘에 보이는 작은 별들을 좋아한다.
나는 수많은 기록들 속에서 그런 사람임을 발견했다. 내가 여행을 간 곳도 사실 사람이 사는 곳들이다. 그런데 고작 여행이라는 계기 하나로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한다. 내가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와도 계속 보인다. 그것들은 나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많은 것이 기록되는 사회에서 산다. 그런데 그 기록의 의미가 나를 찾아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지금과 같은 21세기에는.
이 브런치 북에서 왜 '나'를 찾는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기록하는지 말해볼 예정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기록하고 싶다거나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면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