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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Sep 30. 2017

어쩌다보니 독일(1)

30 SEP 2017 미니멀리스트의 봉변

어떻게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올해 기나긴 추석연휴는 나에게 상징적인 의미였다. 반드시 떠나야는 했지만 그 마음만 품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코 앞에 추석을 맞았다.


목적지도 정하지 못했던 오늘아침, 소조차 제길을 간다.



올해 초 미국출장에서 은진과 나눴던 많은 이야기 중에 혼자 가면 아까울 여행지를 말하면서 나는 스위스를 꼽았고 그녀는 스페인을 꼽았다. 대충 스페인을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계획은 은진의 한마디로 독일로 여행지가 바뀌었다. 사실 왜 그 다음이 독일이 되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지금도 왜 내가 독일을 가고 싶은지 모른다.

비행기 티켓을 조회하기 시작한 건 이미 수 개월전 부터였다.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내키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직항도 아닌 1회 경유가 200만원 가까이 될 때까지 밍기적거렸다. 그러다 뭐 경유하는 김에 싱가폴이나 태국에 스탑오버하면 좋겠다 하다가 인도출장을 오게 되었다. 인도에 와서도 여전히 미루고 미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떠나는 오늘 아침 편도행 프랑크푸르트 비행기 티켓을 겨우 구매했다.

갈팡질팡 하던 도중 룸메이트 제시와 추석에 뭐할지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네팔트래킹을 가자고 급하게 정했다. 검색하다보니 이거, 일주일만에 준비할만한 곳이 아닐것 같다는 생각과 결정적으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하는 비행기가 없어 깔끔하게 포기,  트래킹을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상대적으로 준비물이 훨씬 적고 마음의 부담이 작은 장소를 찾다가 영국의 코스왈츠 트래킹 코스를 찾았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추석이후로 연기할 차례였으나 안타깝게도 추석 직후에는 없고 3일 정도 휴가를 내야만했다. 제시는 포기선언을 하더니 동생 고양이 보리를 보러 한국을 가야겠다고 했다.

이렇게 나의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계획은 이리저리 표류하다 떠나는 날 아침에서야 비행기 티켓을 구매를 하면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이랴. 돌아올 날짜를 정했지만 여행루트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아웃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오후에서야 겨우 비엔나에서 델리로 출발하는 리턴 티켓을 끊었다.  그 사이 로맨틱가도 버스투어티켓을 당일발권마감 10분전에 구매 했다. 로맨틱가도를 따라 버스를 타고, 트래킹을 하면서 독일의 소도시를 다녀볼까?가 어제와 오늘아침까지 정한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일과 관련한 책 몇권과 히라노게이치로의 장송도 전차잭으로 다시 구매했다.


제시가 보리 보러 먼저 떠나 텅빈 방


짐은 회사를 다녀와서 싸면 될일이었다. 독일에 들고갈짐, 인도에 두고갈짐, 그리고 한국에 들고갈짐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에이미방에 짐을 맡겼다. 트래킹할 생각으로 작은 캐리어도 포기하고 작은 백팩하나와 어깨에 걸치는 작은 운동용 배낭에 짐을 나눠 담았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작은 짐을 만들어 낸 내가 잠시 대견했다. 나를 진정한 맥시멀리스트라고 부르는 제시가 지금의 나의 소박한 짐들을 봤다면 이번엔 분명 미니멀리스트라고 칭했을게 틀림없다.

에이미도 마침 밤 11시 비행기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새벽 2시 45분 비행기였지만 라운지에 쳐박혀있을생각으로 공항에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유로를 환전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달러로 해야하나, 내가 원화가 충분히 있던가? 루피가 있긴한데 유로로 어떻게 바꾸지? 조각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에이미가 공항에서 루피로 유로 환전이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아. 그래, 인도공항 환전소에 진지한 궁서체로 환전소라고 적혀있던 걸 보고 니나랑 낄낄거렸던게 생각났다. 그리고 바로 수중에 충분한 루피가 없어서 에이미뱅크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측에 진지한 환전소



우버를 타고 익숙해지려고 하는 터미널3에 내렸다. 눈앞에 ATM에서 에이미가 만루피를 인출해서 건네주었다. 수중에 있던 만루피를 더해 2만루피면 충분하겠지싶었다. 게이트 입구에서 에이미와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서서 환전소로 바로 향했다. 인사와 함께 돈을 내밀자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라왔다. 최초 환전한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당황해서 H&M영수증을 들고 흔들었다. 환전소 직원이 환전을 안했으면 이 돈이 어디서 났냐고 다시 묻는다. 에이미 뱅크를 이용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오래전이라 잊어버렸다고 하니 영수증이 없으면 만루피까지밖에 환전이 안된다고 했다. 옵션이 없으니 아쉽지만 그돈이라도 환전했다. 내 수중엔 120 유로가 생겼고 환전소 직원은 잔돈 70루피를 돌려주지 않았다.



루프트한자 홀로 오픈 반짝반짝!



보딩이 3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내가 탈 항공 데스크가 오픈을 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서 가보니 역시나 아무도 없다. 여권을 내밀고 데스크에 짝다리로 기대서있는데 맡길짐이 없냐고 묻는다. 후훗 미니멀리스트에겐 맡길 짐은 존재하지 않지, 으쓱하며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여행인지 출장인지를 묻는다. 여행이라고 대답을 하니 이번에는 호텔을 예약했냐고 묻더니 예약한걸 보여달란다. 이거 점점 이상해진다. 폰을 꺼내 예약한 내용을 보여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건지 다시 인도로 돌아오는건지 물어본다. 뭔가 점점 이상해진다. 이미그레이션에서나 물을 질문을 왜 티켓팅할때 물어보는건지 싶다. 인도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자 인도에 돌아오는 티켓이 없다고 한다. 그래 니네 항공사에서 티켓팅 하지 않았으니까....비엔나에서 출발하는 델리행 티켓을 보여주곤 속으로 아, 독일에서 비엔나를 언제 어떻게 갈지 결정하진 않은 사실을 걱정해야하나 하고 있는데 인도에서 공부를 하는지 일을 하는지를 물어본다. 그 사이 날 티켓팅 해주던 직원말고 그 선배로 보이는 사람과 그 선배보다도 높은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돌아가며 질문을 던지는 상황이 되었다.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왜 이렇게 짐이 없냐고 한다. 하.....내가 이번에 [오늘아침까지 부랴부랴 세운] 계획이 걸어서하는 여행이라 짐을 최소화했다. 라고 설명을 하고 그 뒤에 도대체 짐을 안부치는게 뭐가 문제냐 라고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2주간 여행이니 보통은 짐이 많은게 정상이니까, 여행하긴 짐이 너무 부족하지 않냐고 한다. 어이없는 마음을 표정과 두 손에 담뿍담아 아니, 필요하면 거기서 사면 되지 뭐가 문제야. 나 돈 있다고! 라고 하니 관리자로 보이는 직원이 능글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짧게 들썩거리더니 절차야 라고 말한다. 그러곤 내 여권을 들고 사라졌다. 도대체 나의 미니멀리즘이 그들의 어떤 의심을 들게 한건지, 미니멀리스트의 첫날이 이렇게 곤혹스러워도 되는건지 이어지지 않는 여러가지 생각이 뒤죽박숙 머리속을 휘젓고 있는데 아까 그 작자가 오더니 여권을 돌려준다. 여권을 건네 받자 데스크에 있던 막내 직원이 나에게 티켓을 건넨다.



아무리 그래도 인천공항이 더 했을테지



공항에 들어설때도, 유로를 손에 들었을때도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어렵사리 티켓을 손에 쥐고나니 순간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나의 작은 짐 2개를 걸쳐 들고 이미그레이션으로 향하는데 내가 델리공항에서 본 최대 인원이 대기줄에 들어서있었다. 아마 델리도 월요일에 쉬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사람들 수에 뜨악한다. 얼추 한시간은 기다릴 것 같았다. 숙소에서 챙겨온 레드불을 홀짝거리면서 아이패드를 꺼내 독일여행책자 하나를 열었다.

혹시나 이미그레이션에서도 동일한 질문들로 난처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스런 얼굴로 최대한 얌전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장을 꽝꽝찍더니 여권과 티켓을 돌려주면서 말도 하기 귀찮은지 손짓으로 휘휘 젓는다.

안으로 들어서고 못보던 매장을 대충 훑어본다음 바로 라운지로 향했다. 늘 가던 방향 반대로 올라가는데 지난 몇차례 방문했던 라운지가 아니다. 동일한 이름이긴 한데, 다른 곳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블로그에서 델리공항에 라운지가 2군데가 있다고 하더니 나머지 한군데가 이곳인게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지난번 갔던것보다 조금은 더 고급스럽다. 숙소에서 이미 든든하게 고기를 먹고 온터라 음식생각은 없고 맥주나 한병할까 해서 바에 가서 맥주 종류를 물으니, 킹피셔밖에 없다고 한다. 지극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좋은 맥주라고 대답해준다. 뻥치지마.....별수 없으니 한병달라 하고 얼마냐고 묻자, 공짜라고 한다. 못알아들어서 다시 물으니 공.짜.라고 말해준다. 헐?? 헐??? 분명 길건너 있는 똑같은 라운지는 가격표를 걸고 술을 팔았는데? 터미널 1에 있던 곳도, 뭄바이에 있던 곳에서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땡큐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이사실을 빨리 피피카드 보유자 니나에게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엔 반드시 라운지B를 이용하라고-




편안한 라운지에서 마신다고 맛있어질리가 없는 킹피셔를 들이키며 정신없던 여행의 시작을 적고 있다. 기대도 없고 계획도 얼기설기한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매일 여행기를 남기고 방문한 도시에서는 꼭 달릴거라는 다짐뿐. 지난번 아부다비와 똑같은 게이트인 15번, 거짓말없이 20분은 걸어가야할테니 글을 마무리를 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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