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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Oct 02. 2017

어쩌다가 프랑크푸르크(2)

1 OCT 2017 너의 매력

8시간 비행정도야 자다보면 금방 지나버릴거라고 생각했지만 자도자도 비행 잔여시간은 줄지 않았다. 서너번쯤 자다깨다를 반복하니 드번째 밥이 나왔다.


베지? 논베지?


열심히 여행책자를 급하게 읽는 중


첫번째 밥이 나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채식을 워낙 많이하고 종교적 이유로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에서야 자연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일로 향하는 독일항공기에서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인도에서 출발해서 그럴 수 있지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논베지라고 대답하면서 익숙한 비프 오아 치킨? 같은 질문이 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난처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2층까지 있는 엄청 큰 비행기


드디어 8시간의 비행이 끝났다. 몇시간 동안 쭈그리고 있었던 몸을 뚜둑뚜둑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뒤틀었다. 출발 직전 프랑크푸르트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독일 입국심사는 질문이 많다는 글을 봤다. 델리 공항 사건이 생각이 나서 설마 더 심하려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인도 직원보다 빠르게 도장을 찍어줬다. 꽝꽝!

블로그에서 알려준데로 티켓을 끊으려는데 여행책에서 봤던 가격보다 조금 비쌌다. 뭐 올랐나보다 하는 생각보다 먼저 내가 티켓을 잘못 끊고 있는건가하는 쭈그리 같은 생각에 두번 쯤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고 티켓을 구매했다.


시계가 이뻐서 찍어뒀는데 이런 짤로 쓰일 줄이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플랫폼에는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전광판을 보니 두번째 열차의 종착역이 내가 가려는 중앙역이었다.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호텔위치를 확인하는 중에 첫번째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두번째 열차를 탈 예정이었으므로 시선을 바로 핸드폰으로 옮겼다. 1분쯤 지나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열차의 문은 열려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열차에 탑승한 상태였다. 열린 열차 문을 응시하면서 이런데와서 잘모르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면 되는데라는 생각과 잘못타는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더 낫지라는 생각이 빠르게 교차하다가 나는 그대로 앉아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열차는 떠나고 5분쯤 지났을때 내가 기다리던 두번째 열차가 햐앟고 커다란 비행기같은 위용을 뽐내며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 내가 산 초라한 가격의 티켓으로는 이 열차를 탈 수 없다라고 직감했다. 빠르게 여행책자를 뒤지니 아까 떠났던 열차나 이 다음에 올 열차(C8, C9)를 타고 가면 될일이었다. 역시 사람들을 따라가면 될일이었네 하고는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봤다.

중앙역까지는 십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열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공항 근처가 그러하듯 인상적이진 않았다. 단지 출발하자마자 독일 거지의 등장에 잠시 당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에서 활동하시는 분인지라 유려한(?) 영어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다.


각자 가야할 곳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열차는 금새 중앙역에 도착했다. 차고처럼 기차들이 한쪽이 끊어진 레일에 쭉 늘어서있었다. 예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위스로 넘어갈때가 생각난다. 비슷한 역 풍경이네 하다가 엄청난 기차지연으로 일정이 꼬여버려서 그 당시 동행했던 엄마와 엄청 나게 싸웠던 기억까지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최악의 사건을 기억에서 밀어냈다. 천천히 음미하듯 기차역을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옆에 같이 앉고 싶다


독일 사람들은 아침부터 맥주를 마신다고 하던데, 정말 아침부터 맥주를 마신다. 자리에 앉아 한잔 걸치고 싶지만 갈길이 머니 우선 발길을 재촉한다.


날씨탓하지말자. 이게 최선입니까?


중간중간 가게를 들러 구경하다가 첫번째 장소인 유로타워 앞 유로화 조형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요런게 푸랑크푸르트의 매력


뒤를 돌아보니 오래된 건물과 신식건물이 누구하나 기죽지 않고 나란히 서 있다. 두세블럭 위에 마인타워가 있었는데 과감히 건너뛰기로 한다. 그냥 직진-


곧게 뻗은 좁은길을 걷다 만나는 광장은 여전히 나에게 감동을 준다. 몇번을 마주해도 기분좋게 만든다. 도시를 아름답게, 나의 단순한 심미안을 충족시켜준다.

광장 중간에 쌩뚱맞게 분수가 하나있다. 다가가니 사방에 각기 다른 동물들 입에서 분수가 나오고 있다.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화장실 냄새가 확 올라온다. 이런....누구냐...

저 멀리 성당이 보인다. 이곳의 랜드마크 성 카타리넨 교회. 것참 소박하다. 급하게 읽은 가이드에 성당 앞 백화점 꼭대기 조망이 좋다고 하니 겸사겸사 7층으로 올라갔다.


오... 좋으다


허허. 봐줄만 하네- 잠깐 여기서 식사를 할까 하다가 독일에서의 첫끼를 백화점 푸트코트에선 할 수 없지하고는 발길을 돌려 1층으로 내려왔는데 지하에 여행가방이 보인다. 오던 길에 들린 가방 전문점에서 기웃대다 살수 없는 브릭스 가방에만 침흘리다가 나왔는데 여기선 왠지 살만한게 있지 않을까했지만 결국 사고 싶은 가방이 없어서 뒤돌아 나왔다. 하우프트바헤&차일 거리를 따라 근처 아디다스 매장을 찾아나섰다. 이곳에서 운동화를 산다면 아디다스를 사고 싶었다.


마음에 유일하게 든 아디다스 운동화 소파


흠- 딱히 마음에 드는 신발도 없었지만 가격이 한국에 비해서 더 비쌌다!!! 이럴수가!!! 그건너편 외벽이 구멍난 건물이 하나 있어 홀리듯 들어갔다. 판교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다. 대신 뚫리진 않았고 자동차로 박은 듯 움푹 패어있다.


뻥-


구멍난 쇼핑몰 차일 백화점, 아디다스 매장에서도 결국 마음에 드는 신발을 못찾고 건물 구경에 나섰다. 건물 끝까지 올라가자 밖에서 봤던것 보다 건물이 더욱 복잡하게 생긴걸 알아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배배꼬와놨는가?


허리를 뒤로 꼬으며 찍은 사진


몇군데를 돌고나서 나는 더이상 마음에 드는 가방과 신발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포기한 채 쇼핑몰 거리의 끝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길 끝에서 돌아 뢰머 광장으로 향할 참이었다. 거리 끝으로 다가가니 마켓이 열렸다. 각종 푸드트럭들과 빵, 소시지, 치즈를 파는 트럭으로 가득 차 있다.


다들 여기 모여있었구나


이게 왠 횡재인가....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사람들이 어디있나 했더니 여기 다 몰려서 맥주건 와인이건 마시고 있었다. 한바퀴를 다 돌고 나서 인파들을 파고들어 맥주한잔을 손에 넣었다. 그리곤 유심히 지켜봐둔 푸드트럭에서 소시지도 하나샀다. 손가락질로 이뤄낸 성공이었다. 독일어는 1도 모르고 발음도 어색하니 한개도 못알아먹어 어버버 하던 중이었다.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맥주랑 소시지를 먹는데 허허허허허허허-


보기엔 초라하지만 맛은 위대하다


일일 맥주와 소시지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긴다. 이걸 좋아할 사람들이 하나둘 생각난다.

맛나게 해치우고 배를 두드리니 푸랑크푸르트가 아름답게 보인다. 롸머 광장을 포기하고 강변길을 따라 거꾸로 체크인을 하러 호텔로  향하는 길. 마인강으로 나오자 근사한 풍경이 펼쳐졌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눈앞의 풍경도 아름다우니 절로 기분이 좋아져 발걸음조차 흐느적댄다.


미니버전의 당산철교같지만 실제로는 괜찮았다



가던길에 마트에 들러 소비욕구를 꾹꾹 누르면서 발크림과 로션, 클렌징, 작은 와인 두병을 샀다. 다 합쳐봐야 11유로- 놀라운 가격, 사고 싶은게 이리 많은데 과연 짐을 온전히 다 들고 트래킹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미니 눈에 띄게 귀찮아 한다. 카드를 직접 포스기에 밀어넣고 기다리니 민망할 정도로 네트워크가 느리다. 승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줄이야.

3시.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맡긴 짐을 찾았다. 쿨하게 여권따윈 보지 않는다. 덜컹덜컹대는 엘레비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무거운 열쇠고리가 달린 열쇠로 좌로우로 한참을 돌려대니 철컥하고 문이 열린다. 일박에 5만원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간 훌륭한 호텔에 익숙해(?)있던터라 피식웃음이 난다. 아 그래도 침대는 침대지 하면서 덜렁 누웠다. 와이파이에 접속하고 흥청망청 데이터 낭비를 한다. 너무 꿀잼이다. 평소에 대충 읽어내리던 기사가 오늘따라 왜케 재미있는거지. 유투브는 어떻고? 영국남자 올리가 딸을 낳았다는 영상조차 꿀잼이다.

오랜만에 오래 걸은 종아리는 욱씬대고 눠여진 몸뚱아리는 일어날줄 모른다. 4시가 넘어서야 정신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몸을 일으킨다. 일어나야한다.

빗방울들의 격한 바운스


내가 가진 가장 두꺼운 옷을 두개 걸쳐입고 다시 덜커덩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려왔다. 문 밖으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비가 오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소리로 비가 오는걸 왜 몰랐지? 그나저나 우산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헤비급 비다. 다시올라갈 수 밖에 없겠는걸? 오늘밤은 어쩔수없이 쉬어야겠구나.....하면서 한편 안도감이 들었다. 비 때문이라면 관광지에서 오후 내내 단칸방 호텔에서 빈둥대도 양심에 찔리진 않을 테니까.

기쁜 마음(?)으로 다시 방에 올라가 침대에 아까 그 자세로 다시 누웠다. 보지도 않던 영상을 찾아 헤매다가 창문 밖을 보다 반복한다. 우아아아아아아하고 비가 오다 멈추고 다시 우어어어어하다가 다시 멈추기를 반복한다. 양심에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들어왔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5시 비가 멈췄나보다. 다시 옷을 입고 가방에 우산을 챙겨넣고 길을 나섰다. 이번엔 다리를 건너 아까 걸었던 마인강변 도로의 건너편, 뮤지엄들이 몰려있는 길가를 따라 걷다가 롸머 광장 가까이에서 다리를 건널 작정이었다.


마켓은 못봤지만 대신 길이 너무 아름답다



체크인하러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길 건너편에서도 마켓이 열린걸 봤는데 지금쯤이면 비도 내렸고 없어졌겠지 싶었다. 세상 못생긴 다리를 지나 게임에서 익숙했던 건물을들 지나 걸어간다. 한창 즐겨했던 에브리타운에서 돈을 모아 짓던 건물들이 독일에 다 있었구나.



당산철교


이 구역에서 가장 이쁜(?)다리라서 그런지 중간기둥에 사랑을 기원하는 열쇠들이 달려있다. 이 열쇠를 걸었던 연인들은 다들 지금도 함께일까 세상 쓸데 없는 걱정이 들자 내 생각을 누가 들은것도 아닐텐데 서둘러 구석으로 치워냈다.



구글지도를 따라 롸머 광장에 도착했다. 내가 꾸몄던 에브리타운이네...  

에브리 데이 레벨 120 이웃 95명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에 늘어선 건물들이 너무 전형적이여서 작위적인 느낌까지 든다. 비가 와서 건물의 색상들이 서로 자기 주장을 높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베니스의 진짜 탄식의 다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뱅뱅돌면서 건물을들 보다가 빠져나오니 가이드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탄식의다리가 보였다. 탄식의 다리 치고는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그길로 대충 호텔 방향으로 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도 한창 중인 광장이 나타났다. 비를  피해 천막 밑으로 사람들이 맥주과 와인을 즐긴다. 한 천막안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빨강색 커플룩을 입고 있던 노인부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먹는다 그냥 간다 먹는다 그냥 간다

점점 배가 고파온다. 감자튀김을 파는 푸드트럭 앞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섰다. 감자튀김과 함께 야외에서 한잔 더 하고 싶지만 날이 스산하니 어서 호텔로 슬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골목길을 따라 큰길로 나오니 아까 들렀던 백화점이 있는 곳이다. 마침 저녁도 사야하니 지하1층 식품관으로 들어갔다. 사고 싶은것이 많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몇개 집어 골랐다. 아까부터 맛보고 싶었던 사과주도 하나 집어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어둑해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의 밤이다.

사과주로 느낌을 내어본다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도시가 크지 않아 하루 종일 걸어다닌 탓에 호텔로 가는 길이 익숙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밤이 내린 도시의 사진을 찍었다. 날이 흐린탓에 분명 하늘은 노을 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텐데 사진에 담기는 도시가 너무 아름답다.



몇장이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지금 이순간 이 밤이 아름다운 이유가 오후에 세차게 내린 비때문이라는 걸 알아챘다. 비에 젖은 도로가 마치 강물처럼 건물과 가로등의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땅의 경계 아래에 불빛들이 아름답게 퍼지고 있었다. 비를 뿌려대는 희뿌연 하늘덕에 내심 서운했는데 이렇게 또 보상을 해주다니-


난반사



20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40분이 넘도록 걸려 호텔에 도착했다. 가방안에 고심해서 고른 맥주, 문어와 올리브, 치즈가 꽉 채워진 고추, 육포들을 깔아놓고 그 옆에 지친 몸을 뉘였다. 유투브에 자주 보던 먹방VJ를 틀어놓고 나도 한입두입하기 시작한다. 짤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참을만했다. 오후 나절에 사다 놓은 와인과 작은 맥주 한병을 마시고 나니 손하나 까딱하기 귀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아 오늘의 여행기를 정리해야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9시도 안되는 시간(인도시간으로는 12시가 넘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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