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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Oct 16. 2017

어쩌다가 뷔르츠부르크(3)

2 OCT 2017 배가 고픈것만 빼고 완벽했다.

비행기 안에서 급하게 읽은 여행책자를 보면서 여행 루트를 바꾸려고 했다. 아무래도 여행루트 중에 퀼른을 빼먹은 건 큰 실수 같았다. 퀼른 대성당과 그 앞에 있는 다리가 주는 환상적인 야경에 마음을 몽땅 뻬앗겼다. 오기전 여행경로로 잠깐 생각했던 하이델베르크도 가야할 것 같았다. 여행 둘쨋날 로맨틱가도를 따라 버스투어를 출발할 생각이었던 나는 이틀째 숙소를 로맨틱가도의 시작라고 할 수 있는 뷔르츠부르크에 숙소를 잡아두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짐을 맡길 요량으로 호텔로 잡았는데 뷔르츠부르크는 에어비앤비로 1박을 잡았다. 일박에 5만원이 조금 넘는 숙박비 또한 여행루트를 바꾸려는 심경의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이틀째 이후로는 숙박을 잡아두지 않았다). 도시를 찾아보는데 정보도 많지 않고 그냥 전형적인 독일의 도시처럼 보였다. 내 마음이 이미 쾰른으로 넘어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에서 일박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작정한 트래킹의 시작 도시이기도 하고 어디선가 그 도시가 화이트 와인으로 엄청 유명하다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케줄을 체크하다보니 이 도시에서 다음도시까지는 트래킹을 하기 부담스운 거리였다. 내가 왜 이 도시에서 일박을 한다고 생각했지? 쾰른을 갔다가 이 도시를 건너뛰고 다른 도시에서 숙박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하루 정도만 늦추려는 마음을 어느정도 가지고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역처럼 생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여행이 마무리 되는 저녁 쯤 나는 그냥 쾰른을 포기하기로 했다. 급하게 준비하고 급하게 결정해버린 과거의 내가 정한데로 한번 움직어보기로 했다. 언젠가 쾰른은 한번쯤 올 수 있겠지만 뷔르츠부르크라니, 뭐 가서 정할 게 없으면 어딘가 술집에서 화이트 와인이나 마시면서 여행기나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도 들어가고 음식도 들어가고 몸도 따뜻해지자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3시였다. 인도에서는 작정하고 운동하지 않는 이상 몸을 움직일리가 없는데 오랜만에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더니 견딜리가 있나. 새벽3시 보통 인도에서의 기상시간이다. 아직 어제의 여행기도 쓰지 못했는데 하며 눈만 껌벅이다 다시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다시 한번 눈을 뜬다. 새벽 5시. 뷔르츠부르크로 출발하는 로맥틱가도 버스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서 8시에 출발했다. 아침에 한바퀴 뛸려면 지금 눈을 떠야하는데 힘겹게 시선을 창문 밖으로 옮기니 아직 한창 밤처럼 어두운데다가 늦은 밤부터 교대로 들린 사이렌소리와 고함소리가 침대속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새벽 6시 이제 더 이상 물러날데가 없다. 밤새 굳어있는 몸을 위로 옆으로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꺼어어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먹다 남은 문어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질겅거리면서 어제의 여행기를 이어 써내려간다. 나갈 준비도 해야하니까 사실상 글을 쓸 시간은 짧았다. 몇단락을 채 못쓰고 짐을 싸서 다시 덜크덩대는 엘레비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적었던(?) 사람들


가방을 둘러메고 중앙역 근처로 움직였다. GPS로 정확히 찍어주면 좋을텐데,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 설명이 부족한게 불안한 탓에 미리 서둘러 나왔는데, 역 근처에 오니 그럴 필요 없어보였다. 역을 바라보고 좌측 버스 정류장에 누가봐도 관광버스처럼 보이는 큰 더듬이를 가진 버스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청록색의 한버스에 로맨틱가도라고 커다랗게 랩핑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줄을 서 있었고 나도 그 뒤에 따라섰다. 맨 앞자리에 앉고 싶지만 이미 누군가 앉아있어 맨뒷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출발하는 버스에는 가족단위로 보이는 한국인들이 전체 탑승인원의 반 정도를 차지했는데 찾기 쉽지 않은 검색내용을 생각하면 꽤 많은 비중이라고 생각했다.

이런길을 달리고 달린다


버스가 출발한다. 커다란 창문으로 희뿌연 프랑크푸르트 전경이 스쳐지나간다. 차는 곧 고속도로로 빠져나갔다. 버스가 평야와 숲길을 반복해서 지나가는 동안 나는 마무리 못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면 어제 사고 남은 화이트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창밖을 응시하다 다시 글쓰기를 반복했다. 어째서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지금의 여행을 즐기는 대신 어제의 여행을 떠올릴려고 하니 뭔가 내키지 않았다. 결국 작성하던 글을 멈추고 여러가지 다른 생각을 했다. 그림판을 열어 따로 고민 중인 서비스 내용을 그려본다. 고민을 멈춘 마지막 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얼추 지난번과 비슷하게 그려지는거 보니 머리속에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이 생각들을 정리해나가는데 시간은 벌써 내가 내려야하는 도시에 가까워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생각보다 도시가 컸고 눈에 띄는 건물들은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기대치도 않았던 매력적인 도시 모습에 왜 이도시를 설명한 글이 그토록 짧았고 성의가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날때와 확연히 다른 맑은 날씨


버스는 궁전앞에서 멈췄다. 다른 사람들이 짐을 두고 사진기를 들고 내릴때 나는 모든 짐을 챙겨 내렸다. 가방 두개를 겹쳐서 등에 메고 걸으니 걸을만 하다. 이 도시에서 가방을 사겠다고 둘러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눈에도 담기지 않은 궁전을 사진을 찍으려다 관둔다. 역광이기도 하고 지도를 보니 묵을 숙소가 궁전 뒤쪽이라 아무래도 몇번은 볼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급한 발길 붙잡던 광장의 풍경


관광지도를 보니 랜드마크가 모여있다. 우선 랜드마크 쪽으로 이동했다. 빈속에 물 종류만 들이켜서 그런지 화장실을 가긴 가야겠는데 알다시피 유럽은 공중화장실이 잘 안되어있으니 어딘가 앉아서 쉴만한 곳을 을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니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이쁜 곳들이 너무 많아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만만한 맥도널드가 보인다. 입구까지 갔다가 독일에서 맥도널드는 아닌것 같다. 프리 와이파이의 은혜를 내려주는 스타벅스 정도가 아니고서야 (거기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79km 떨어져있었음).


50%확률이었는데...


결국 광장이 잘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화장실 표시가 그려진 문을 열었는데 내 앞에 퀴즈가 있었다. 위냐 아래냐,  우선 찍고 아래로 내려갔는데 남자화장실이다. 1/2 확률이었는데 아오.. 다시 계단을 올라 윗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3유로짜리 커피


자리로 돌아와 카페에 들르기전 방문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가져온 종이 지도와 책자를 보면서 오늘 하루 동선을 짠다. 집주인은 오후 3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시간전까지 와인 트래킹을 하고 시간이 된다면 부지런히 걷는다면 마인강 넘어 성까지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대충 동선을 정하고 마무리 하지 못한 어제의 여행기를 쓴다. 오늘 여행과 어제의 여행이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이 든다.

다 마무리 못한 채로 카페를 나선다. 카드를 내밀었더니 온리캐쉬라고 한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랜드마크에 위치한 큰 카페에서 카드를 받지 않는다니. 당연히 카드가 되는 줄알았는데 배가 고파 밥이라도 시켜먹었으면 나의 현재 현금보유량에 큰 타격을 받을 뻔했다. 이번 여행에 가장 야심작인 리모콘셀카봉과 선글라스, 핸드폰만 두고 가방에 다 집어넣었다. 마인 강가로 나가는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둘러봤던 햇살과 하늘 아래의 풍경


길을 건너 강가로 들어서자 우아....... 여기 안왔으면 어쩔뻔했지? 눈앞에 펼져진 광경에 허접지겁 눈에 사진기에 담아넣는다. 가야할 곳은 반대쪽 산등성이라 자꾸만 몸을 돌려 바라보고, 바라봤다.


지금 향하는 곧은 포도밭 사이를 트래킹 하는 코스였다. 구글지도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좁은 계단을 한창 올라가니 한눈에 도시가 들어온다. 트래킹 시작점에 있는 와인샵이 와쉽게도 휴무다. 한바퀴 돌아 와인을 한잔하고 내려올 계획은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비탈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더 있어서 올라갔다. 거친 숨을 내쉬고 헉헉대면서 올라가자 좀전보다 더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있다. 사방에는 포토밭이고, 눈 아래는 마인강을 따라 도시가 펼쳐져있다. 구글지도에는 더 올라가는 길은 없었는데 눈앞에 오르막 길이 보인다. 뭐 길이 아니면 내려오면 되니까 하는 생각으로 올라섰는데 또 다시 계단이 있었다. 끝까지 올라가보자 하는 마음에 단숨에 올라간다. 길 끝에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왼쪽으로 트래킹길이 펼쳐져있다. 포도밭옆 흙길과 닦여진 도로 사이 높은 담벼락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걸터앉아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마인강을 따라 보이는 뷔르츠부르크 시내와 포도밭


오호라. 혹시 몰라 챙겨온 가방 속 와인을 지금 먹으면 되겠다 싶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와인을 병채 한입하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본다. 시원한 바람이 불자 땀으로 축축히 젖은 등이 순간 섬칫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 갈 채비를 했다. 아까 마인강 건너편으로 바라본 성은 애초에 먼것 같고 지도를 보니 그전에 사진기모양이 있는 장소가 있길래 그곳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올라올땐 한참인 것 같더니 계단 따라 내려오니 아래까지 금방이다. 도로를 지나 다리를 건너 지도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다리를 거의 건널쯤 시끌벅한 소리에 다리 아래를 쳐다보니 흰 척막들로 잔뜩 늘어선 축제가 있는걸 발 견했다. 오 이건 또 무슨 행사 인가 싶어서 사진기가 그려진 장소 대신 말고 축제를 구경해야겠다싶어서 입구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들어가는 압구에도 천막이 쳐진걸 보니 유료인거 같은데, 카드따윈 받을 것같지 않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입장료가 10유로 정도. 한푼이 아쉬운 마당에 10유로라니. 마음이 금새 식었다. 옆에 브로셔를 보니 온라인에서도 티켓구매가 가능한데, 데이터도 아껴야하니 체크인 이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하고 전단지 한장을 챙겨 원래 가려던 길 장향으로 출발했다. 길을 요리조리 돌아 기나긴 오르막이 나온다. 등에 짊어진 짐가방과 등사이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짐이 중간에 늘어날리 없는데 가방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더 이상의 오르막길이 없다고 생각이 드는 정상에 성이 있었다. 읭? 이 성은 아까 마인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언덕위의 마이렌베르크 요새였다. 이 요새 우측으로 저 멀리 화려해보이는 발파르츠 교회가 보인다. 아.. 애초에 구글지도에서 이 요새라고 생각했던 위치는 지금 저 멀리 저쪽에 있던 교회였다. 오후에 오려던 이 요새에 착각해서 와버린 셈이었다. 성 내부로 들어 들어가니 공사중이었다.  



성 가운데 첨탑을 보면서 저 끝에 올라가면 풍광이 그만이겠다. 생각이 드니 종아리가 비명을 지른다. 슬쩍 보니 첨탐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으나 돌아나오는 길에 첨탑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했다. 순간..아 올라가야하나 싶은 마음에 우선 문안으로 들어가보자 무거운 다리를 끌고 몇계단 올라 문안으로 들어가보니, 다행히(?) 올라갈 수 없는 문은 없었다. 이제와 마음 편하게 아쉬워 하며 문밖으로 나왔다. 계단이 있었으면 종아리의 비명따위 무시하고 올라갔을테지. 성안으로 들오기전에 성 외곽을 따라 걸을 있도록 마련된 길을 따라 걸을 요량이었다. 그전에 이 안으로 들오오면서 슬쩍 우측에 있던 레스토랑을 지나쳤는데, 마인강을 바라보는 위치라 분명 그쪽 풍경도 놓치기 싫어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갔다.

여기서 맥주 한잔 하고 싶었는데...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이 있는 뒷마당으로 들어서니, 그냐말로 환상이다. 푸른 하늘은 그야말로 그림같았고 그 아래 도시의 전경과 가을의 단풍으로 형형색색으로 물든 테라스와 잘어울렸다. 잠시 머물러서 맥주나 한잔하고 싶었지만 한시간 뒤쯤 체크인을 했어야 해서 (에어비앤비의 가장 싫은점, 집주인과 체크인시간을 맞추고 변경하기 어렵다는 점) 아쉽지만 나와 아까 보아두었던 외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입구로 향해 올라갔다.


우측으로 보이는 성곽위에서 보는 경치가 그만이었다.
성곽위 풍경, 사진 중앙 맨 위에 삐쭉 솓은 첨탑의 건물이 발파르츠 교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어서 그들을 따라 걸으면 되었다.1미터 쯤 되는 성곽위에 끼엉차 올라간뒤 그야 말로 우앜 소리 나오는 눈앞의 경치가 아까워 한걸음 한걸음 아껴 걸었다. 그 풍경의 주인공이 이 원래 이 성의 위치인줄 착각했던 진짜 건물이 있었다. 성곽에 걸터앉은 사람들, 기대어 음악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에 속하고 싶었지만 나는 내려가야만 했다. 어깨 위 무거운 짐도 어서 내려놓고 싶었다.


호텔을 잡을껄, 왜 에어비엔비를 잡아서...


중간에 내려가는 길 없이 한바퀴를 크게 도니, 아까 아쉬워서 굳이 내려와서 들렀던 레스토랑이 있다. 허허. 먼저 들르지 않았어도 갈 수 있었겠구나. 새로운 길이 아니라 좀 전에 올라온 길을 따라 그대로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속도를 내어서 앞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앞질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따라 다 내려오니 눈앞에 다리가 하나 나타났다. 이 다리 또한 이 구역 대표 다리인가 싶었는데 중간중간 동상들이 서 있었고 사람들이 동상이 있는 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오호라? 다리를 건너 가니 다리 끝에 와인샵에서 줄을 서서 와인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 여길 다시 꼭 와야겠다 하는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걷는다. 구글이 알려주는 최단거리를 따라서 걷고 또 걸으니, 관광지 뒤편에 잘꾸며놓은 공원이 나오고, 그 공원을 따라 잠시 걷고 주택가로 접어드니 오늘 내가 묵을 집이 나타났다.

집주인에게 집근처에 왔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도착할때쯤 입구에서 어떤 벨을 눌러야할지 알려줬다. 집을 잘 찾아온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은 10개가 넘는 버튼과 라벨속의 그 이름을 찾기전 짧은 시간동안에도 날 조바심나게 만들었다. 맨 아래 그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의 버튼을 누르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세번 쯤 누르고 위에 있는 은색버튼도 마구 눌러대니, 헬로우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에서 지지이이이이이잉 소리가 난다. 그 소리 끝에. 덜컥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려야하 것 같은데, 지이이이잉잉 소리만 길게 나더니 덜컥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가 끝나고 문을 잡아돌리니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 다시 한번 벨을 누르니, 지이이잉 소리가 난다. 이번엔 그 소리가 나는 도중 문을 여니 문이 돌아간다.

깔끔했던 숙소, 지나와 생각해보면 압도적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와이파이를 이곳에서 쓸 수 있었다.


문안으로는 들어왔는데, 몇층인지 모르겠다. 어딘지 몰라서 2층으로 지하로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헬로우 소리가 들린다. 위를 올려다보니 집주인이 꼭대기층에서 손을 흔든다. 만나기로 한 3시에 늦지 않으려고 거의 뛰다시피 걸어온 다음에 다시 4층까지 올라가려니 거친 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집주인 아이디가 올라프였는데 누가 지었는지 참 잘지었네, 가벼운 악수를 하고 집과 내가 묶을 방을 소개 받는다. 어서 눕고 싶은데 올라프는 참 친절하게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서둘러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우선 눕는다.

봐야할 것들은 우연치 않게 다 보고 내려와서 잠깐 쉬다 나가서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해야했다. 아까 그 성위에서 봤던 성을 찾아가야하나, 거리가 좀 되네. 아 갈까 말까, 아니면 아까 그 마켓에 갈까. 배가 고파오는데 아침 나절에 전날 먹고 남은 문어 몇개 질겅거린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누워서 가까운 슈퍼마켓들을 뒤지는데 이런, 죄다 휴무다.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문을 연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밥도 밥인데 오늘 밤 나와 함께할 와인은 대체 어디서 사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은 훌쩍 4시를 넘어갔다. 해가지는 것이 7시니, 어두워지기 전에 성에서 내려와야할 것 같았다.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두고, 이번엔 아이패드만 챙겨서 밖으로 나선다. 술을 살 곳이 없다면, 근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하면서 여행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성을 도착지로 하고, 길을 걷는다. 아침 버스가 내려줬던 그 성도 가는 김에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길방향을 그쪽으로 튼다. 구글지도는 그리로 가면  최적으로 안내한 길보다 몇분정도 지연이 될것이라고 친절히 안내 해준다.


그림처럼 벽에 기대어 자린 나무


역시 가방이 가벼우니, 발걸음도 기분도 신난다. 아무래도 내일부터 예정이었던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는 여행은 전폭 수정되어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로 가득찬 공원의 길을 따라 걷다가 성에 가까이 오자 벽을 따라 담쟁이 넝쿨이 너무 아름답다. 사진을 한장 찍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비장템, 삼각대셀카봉을 세우고 포즈를 잡으니, 사람들이 신기한듯 쳐다본다. 민망하니까 후다닥 사진을 찍고 성 뒤편에 문으로 들어갔다. 어? 이게 뭐지? 엄청나게 잘 엄청난 규모의 잘 정돈된 정원이 나타났다.


오와열의 정수


포마드로 고정해 한올의 머리카락도 허용하지 않도록 가르마를 낸 남성의 머리 처럼, 그곳의 정원 또한 엄청난 변태력이 느껴질만큼 오와열이 느껴졌다. 한바퀴를 크게 돌고 반대편 문으로 나가니 바로 아침에 내렸던 장소가 보인다. 성으로 들어갈 순 없는지 기웃대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에 쫓아서 들어가니, 세상 화려한 예배당(?)이 보인다.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숙연해지게 만드는 위엄이 느껴진다.


들어가는 순간 호흡이 턱하고 막힌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구석구석 디테일이 놀랍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화려함이 사치스러움이 아니라 웅장함과 숙연함으로 느껴지는걸까. 목을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한참을 둘러보다가 뒤돌아 나왔다. 내가 종교인이었다면 어떤 감정을 더 느낄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레지던츠의 위엄



궁전밖으로 나왔다. 아까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던 중에 아침에 만났던 광장을 다시 만났다. 광장을 거쳐 아까 그 다리를 다시 건너는데 아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와인잔을 든채 다리 위에서 즐기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와인을 마신다


다리를 건너 관광객이 아무도 없어보이는 길을 지나, 지도의 안내에 따라 큰 길가에 이어져있는 좁은 길앞에 마주 섰다. 도대체 구글은 이런길들을 어떻게 아는거지? 한사람이 지나갈만한 골목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초록색이끼가 계단에 가득 끼었다. 계단 끝으로 올라갔더니 독일어로 뭐라고 쓰여있다. 뭐 대충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라는 소리겠지, 이어져 있는 계단을 따라 다시 한번 끝에서니, 읭? 집과 집사이의 좁은 길사이에 내가 서있었다. 그 앞에 계단이 있는데, 그 잎에 있는 안내판이 심상치 않아서 검색해보니, 사유지 접근 불가 라는 내용이다. 하..구글아...다시 돌아 내려갈 자신은 없다. 좌우위아래를 슬쩍 살핀 후 두세계단씩 빠르게 올라갔다. 이런 막다른 길이다. 눈 앞 담벼락 건너편으로 성의 첨탑이 보인다. 다 온것 같은데 더워서 흐르는 땀 사이로 식은땀도 같이 흐른다. 좌측길로 몇걸음 걸으니, 좌측집 뒤편으로 아저씨 한번이 나를 쳐다보는데, 여긴 사유지라고 소리를 칠것 같다. 재빠르게 뒤돌아 이번엔 우측으로 걸으니, 다시 길이 나온다. 문앞에 철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길로 올라왔다.


이 입구로  들어가서 좁은 계단길을 한참을 올라가야했다.


 그 길로 올라서니 관광객들이 좀 보인다. 관광객들이 들어가는 길을 따라 내려가니, 하.. 드디어 도착했다. 아까 갔던 성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았다. 멀리서 보는게 더 멋지군, 아까 그러니까 이곳을 바라보았던 건너편 성을 바라봤다. 흠...다리건너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더 멋지군. 교회안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니 소리가 멈추었다. 아까 성에 화려함에 비해서는 소박(?)하지만 여기 또한  종교적 숙연함을 주기에 충분히 화려하고 웅장했다. 잠깐 서성대고 있으니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실내를 가득채운다. 오래된 건물의 특유한 냄새에 음악까지 완벽한 유저경험이다!


벨파르츠교회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교회 앞마당이 좁아서 아무리 멀리서 찍어도 건물이 한 프레임에서 나오지 않는다.


슬슬 해는 져간다. 사방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내려가는 내가 들어온 반대방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건물을 중심으로 좌로 우로 계단이 있었고, 양 쪽 계단 모두 같은 공간을 향해 내려가게 되어있었다. 내려오니 작은 공간에 좌우 양측에 조각상들이 있다. 위에 숫자가 씌여진 걸로 봐서는 성경의 한 구절을 한장면씩 표현한것 같았다. 그리고 또 그공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계단이 있었다. 그런 공간은 3~4 번 반복되었고, 맨 아래에 이야기의 시작 1번을 만났다. 아니 나는 이런 스토리라인이 있는 정식 길이 아니라 어디 이상한? 뒷길을 따라 올라온건지. 계단을 다 내려와서 큰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내가 아까  올라간 뒷골목같은 길의 입구가 보인다.


주인따라 다리위의 햇살을 즐기는 멍뭉찡


오던 길을 거꾸로 다시 그 다리에 이르니 사람들이 여전히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다리 난간, 공간이 있는 곳은 모두 와인잔을 든 사람들로 채워졌다. 다리끝으로 이동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섰다. 가면서 오면서 보아온 슈퍼들은 모두 닫았고 와인을 살만한 곳도 없었기에 여기서 와인을 마시다가 와인 한병을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차례가 왔을때 아뿔싸 나는 와인이름도, 뭐라고 주문을 해야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화이트와인이라고 하니, 뭔가 종류로 질문하는데 하나도 못알아듣겠다는 표정을 보더니, 점원이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낭비라는것을 알아챘는지 알아서 준다. 대신 매장 내에서 샀으니까 이걸 들고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했다. 밖에 나가서 마시고 싶다면 바로 옆에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듯이 밖에서 주문하는 창구에서 사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서 잘만 나가던데 난 왜 안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리필은 가능하고 난 처음 샀으니...그런거라고...

어짜피 밖은 실컷 구경했고 실내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잡았다. 가득 채워준 와인을 마시면서 프랑크푸르트 여행기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고개를 드니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가 어디서 왔냐 묻길래 한국에서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나도 질문을 더 할까 어색한 미소를 서로 지은채 다시 아이패드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마무리하고 시간을 보니 8시가 다가온다. 창밖으로 슬쩍 봤더니 이제 완전한 밤이 되었다. 창문 밖으로 아까 봤던 성이 빛나고 있었다.


똥손이 만들어낸 야경


집에갈 준비를 하고 집에 가서 마실 와인 2병을 샀다. 현금이 없으니 마시고 싶은 와인은 작은 것으로 하나는 크지만 저렴한 것으로. 와인 두병을 들고 나와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럴싸한 야경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에는 잘 담기진 않았지만-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해외에서 어두워지고 혼자서 걸을때가 있었던가 생각한다. 이렇게 긴장없이 걸을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하면서도 발걸음은 낮보다 1.5배 속도로 걷고 있었지만, 일부러 궁전앞으로 간다. 야경은 봐야했으니. 생각보다는 그럴싸하진 않았지만 사진에 담고서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너무 배가고팠던 저녁


숙소로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방에 들어서서 짐을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다시 한번 데이터의 풍요를 누릴 타이밍이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정말 하루종일 와인말고 먹은 것이 없었다. 배가 고파 여기저기 뒤지다가 시리얼안에 있는 건포도를 몇개 주워 먹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은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고쳐앉았다. 느려터진 와이파이에 와인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며 첫번째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새벽 2시 이틀째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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