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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Aug 19. 2022

가인이는 정말 13살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어른스럽구나

어른 3화

"가인이는 정말 13살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어른스럽구나."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인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어른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어른이니까, 

부끄러운 듯 겸손한 미소를 보여야 한다.

담임선생님은 사춘기가 온 소녀들 속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가인이를 참 신뢰했다. 

그도 그렇듯이 가인이는 이 반의 반장이었고, 모든 무리에 끼어있었다. 

가인이의 역할은 서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것. 

그게 그 아이의 역할이었다.


가인이의 집에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어린 시절 선천적인 병으로 자주 대학병원을 들락거렸고, 

동생의 경련을 가까이에서 본 가인이는 겁이 무척 많았다. 

달라진 숨소리에도 잔뜩 겁을 먹으며 동생이 쓰러지지 않길 기도했다. 

동생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내가 착한 사람이 되어야 부모님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압박감이 가인이를 따라다녔다.


"가인이는 알아서 잘 하니까 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이날은 가인이가 14번째 상을 받아 온 날이다. 

'어른스럽다'는 타이틀이 따라붙은 만큼 그녀의 글은 또래와 달랐다.

 뾰족한 연필심을 뚫고 누르는 무언가처럼 그 아이의 글은 심도가 있었다. 

경기도대회 백일장 은상을 받아 온 날, 

가인이는 어머니께 수줍게 상과 트로피를 내밀었다. 

가인이의 손에 걸린 상장을 받아 든 어머니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가인이는 알아서 잘 하니까 뭐! 

그런데 동생이 보면 박탈감을 느낄 수 있으니 자랑하진 말자."

가인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상을 받아오는 것은,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갈등을 중재하는 건 그 아이의 역할이니깐.

그 날 이후, 가인이는 상을 받아오면 버렸다. 

가로등 아래 누군가는 칭칭 테이핑 해놓은 종량제 봉투를 찾아다녔다. 

그 속으로 받아온 상장을 꾸깃꾸깃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뒤도 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가인이에게 상장은 보여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마음의 짐이 인쇄된 것이었다.


"선생님, 저 글 쓰기가 싫어요."

가인이의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떨어진다. 

가인이는 엄지와 검지를 서로 비비며 가만히 있질 못한다. 

선생님은 가만히 가인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가인이의 손가락이 더 정신없이 움직인다.

"정말 싫어?"

가인이도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눈을 보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어른에게 잘 보여야 한다. 

어른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그래야 내가 예쁨 받을 수 있다. 

나만 참으면 된다'

가인이는 다시 글을 계속 쓰겠다고 나직이 내뱉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녀는 아버지께 걸걸한 울음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몇 시간 전, 가인이네 집에 작은 아버지 내외가 놀러왔다. 

가인이는 으레 했던 대로 밝은 웃음을 보이며 어른들을 맞았고, 

냉장고에서 과일주스를 꺼내어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주스를 받은 작은 어머니의 눈이 빠르게 그녀를 위아래로 훑는다. 

작은 어머니는 으레 그랬듯이 가인이에게 훈계를 시작하였다.

"너는 엄마 아빠가 힘들게 일하시면 니가 집안일을 잘 해놔야지, 

집안 꼴이 이게 뭐니? 

그리고 딱 보면 사이즈 나오는데, 2년째 합격도 못하는 시험은 왜 붙잡고 있어?"

가인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어른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어른이니까, 

부끄러운 듯 겸손한 미소를 보여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으리라. 


그녀는 눈길을 돌려 기댈 곳을 찾았다.

 그러나 가인이의 기댈 곳은 휑하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무례한 어른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가인이는 아버지께 말했다. 

작은 아버지 내외가 안 오게 해달라고. 

다시 오신다면 그땐 내가 화내겠다고.


그때 아버지께서는

 "노량진 스타강사 전한길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따질 게 있으면 합격하고 나서 하라고. 

그 전에는 상대방은 잘못 모른다고. 참으면 복이 온다. 그냥 니가 참아라" 


그 순간, 가인이 내면에 있던 혹 하나가 툭- 하고 터졌다. 

피범벅이 된 혹 하나는 가인이를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녀는 쏟아지는 울음을 거칠게 내뱉었다.

형체를 잃어가는 혹이 가인이에게 말했다.


"너는 정말 13살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럽지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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