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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Nov 16. 2019

“여자들이여. 말하고, 설치고, 생각하라!”

썅년의 미학 - 민서영



“여자들이여. 말하고, 설치고, 생각하라!” - 썅년의 미학 


썅년, 자신의 욕망을 남의 시선보다 우선시하는 여자. 당연한 명제가 어찌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썅년'이라는 코르셋으로 변질됐을까? 나대고, 드세고, 영악하다는 말을 듣는 여자가 있다. 같은 기질이어도 남자였다면 자기 처세에 능하고, 카리스마 있고, 똑똑하다고 표현된다.  


『썅년의 미학』은 같은 곳에 살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남과 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본격적인 페미니즘 입문서도 전문 학술서도 아니다. 만화의 형식을 빌린 상황 묘사극 정도가 적당하겠다. 글자 수가 적고, 내용이 가벼워 쉽게 읽힌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그 어떤 페미니즘 논문보다 이 짤막한 만화책이 더 현실 통찰에 탁월할지 모르겠다. 


여자로 살면서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말이 있다. “여자는 꼭 교복 안에 메리야스 입어야지.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야지. 위험하니까 짧은 치마는 입지 말아야지. 화장은 하는 게 직장에 대한 예의지.”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이런 말 한 번도 안 들어본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못해서, 예뻐서, 못생겨서, 너무 여성스러워서, 여성스럽지 못해서, 자기 생각을 말해서,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아서 재수 없다고 욕을 먹는다. 욕먹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좁고 위태로워 자주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다. 서글퍼지려는 찰나에 작가의 응원이 들린다. 이 상황을 겪어야 했던 건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우리를 함부로 대했던 이들의 탓이라고 말이다. 반갑다. 썅년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들도, 썅년으로 욕먹어야 했던 시간들도 우리의 탓은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당당하려 한다. 


민서영 작가는 담담하게 말한다. 페미니즘의 거창한 담론은 잘 모르겠고, 그저 공평하기만을 바랄 뿐. 그런 마음으로 이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썼다고. 어린 시절 추억을 잠시 떠올려보자. 남자아이들이 속칭 아이스케키라면서 치마를 들추는 행동을 어른들은 '좋아해서 그런다'는 이유로 포장했다. 그러나 어떤 여자아이도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바지를 내리지 않는다. 똑같다면 바지를 내려야하는데 왜 그럴까? 그건 성추행이고, 나쁜 행동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라서 대학생이 됐다. '꾸미니까 예쁘네', 혹은 '이렇게 화장하면 예쁠 텐데.' 같은 말을 수시로 듣는다. 화장을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선택인데 왜 유독 여자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일까? 내 눈에 보기 좋은 여성을 만들기 위해 사회가 재단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으로서 민서영 작가가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욕구이지만 그조차도 욕망이 된다. 이미 너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더 의식하고, 눈치 보고, 스스로를 옥죄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숨이 막힌다. 그리고 조금만 벗어나면 비난을 더 퍼붓는다. 된장녀, 김치녀, 썅년이라고. 민서영 작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여성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그냥 이런 것들이다. 


“마치 범법행위를 하듯 비밀스럽게 생리대를 건네지 않아도 되는 세상, 드라이브를 하자며 핸들을 꺾는 택시 기사를 만나지 않는 세상, 버스에서 누군가 내 몸을 더듬지 않는 세상,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자인 여성이 비난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 헤어지자고 말해도 염산 맞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무엇보다 이런 세상을 원한다고 말해도 '재수 없는 년'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 


어느 샌가 적당히 체념하며 사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민서영 작가의 이야기는 오랜만에 치열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눈치 보지 않고 날 것의 이야기를 만난 것도 반갑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차별주의자’ 아니던가. 은연중에 “여자가(는)~”과 “남자가(는)~”로 시작되는 말들을 버릇처럼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본다. 어쩌다 여자로 태어나 남자보다는 조금 더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결코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나. 이 부분에 대해 작가가 한 말로 칼럼을 마친다. 


“이 책을 낸 후, 저의 작은 목표는 더 이상 저의 책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게 당연하고, 성차별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고루해져서, 누가 '촌스럽게' 그런 책을 보냐고 말하는 시대가 아주 금방 오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이 나오고 거의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점 매대에 저의 책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서 작가로서는 기쁘지만 여성으로서는 씁쓸하기만 합니다. 아마 저의 목표는 생각보다 원대한 것이었나 봅니다.” 


자신을 위해 욕망하기도 선택한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썅년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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