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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Nov 16. 2019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 식물들의 사생활 


이야기의 시작은 한 사창가에서 이뤄진다. 키가 몇이냐, 몇 살이냐, 화장을 지울 수 있느냐, 뒤를 돌아보라, 열 걸음만 걸어보라. 새끼 잘 낳는 암말을 고르듯 나름의 기준으로 까다롭게 고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남자는 여관에 간다. 남자가 여자와 재미를 보려는 심산이 아니다. 두 다리가 없는 형이 기다리고 있는 방에 여자를 넣어주는 일, 거기까지가 남자의 역할이다. 형제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엄마가 다리 없는 형을 들쳐 업고 다 큰 아들의 욕정을 배설하기 위해 사창가를 헤매는 모습을 본 뒤 가슴 아픈 모정을 외면할 수 없어 동생이 대신 맡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콩가루 우애로 시작한다. 


자라는 동안 동생은 형에게 많은 빚을 졌다. 형에게 일어난 불행, 물론 사는 동안 크고 작은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가장 큰 불행은 두 다리가 댕강 잘려나간 일이다. 그 모든 불행은 동생으로 인한 것이었다. 형은 엄혹한 시대상을 프레임에 담는 사진사이다. 동생은 공부하기 싫어서 한 번, 형의 애인을 사랑했다가 들통 나서 또 한 번 가출한다.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형의 두 다리가 잘리고 없어진 후였다. 가출할 때 형이 끔찍하게 아끼는 카메라를 몰래 훔쳐 팔아먹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저 돈이 필요해서 그랬던 건데 그날 그 카메라 안에 들어있던 필름 때문에 형의 인생은 지독하게 꼬여버린다. 형은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다 최전방 군대로 끌려가고 폭발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형의 다리가 자기 때문에 없어졌다는 부채의식에 동생은 늘 괴롭다. 


필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화가 없다. 방도 따로 쓰고, 밥도 따로 먹는다. 이른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나 들어온다. 아버지는 집에서 바둑만 둔다. 정원 가득한 나무와 풀을 열심히 가꿀 뿐. 집 안에 있는 네 개의 방은 각각 한 사람씩 차지하고 있었고 문은 항상 닫혀있었다. 이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뒤틀리고 쪼개져버린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산다.  


내용은 이렇게 얽히고설킨 가족이야기면서 제목이 왜 『식물들의 사생활』일까? 하루 종일 정원을 가꾸는 아버지의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는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지만 식물 앞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친절한 수다쟁이이다. 소설에서 식물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 형의 애인은 때죽나무, 형은 소나무이다. 식물은 각자 제자리에 뿌리고 내리고 서서 꿋꿋이 자기 생을 살다 간다. 대화나 교감, 접촉 같은 것은 전혀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사람도 식물과 마찬가지이다. 입이 있어 언어로 대화하고, 귀가 있어 듣기는 하지만 서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관심을 갖고 다가설 때 비로소 조금 공감하게 된다.  


식물들은 떼를 지어 산다. 그러면서도 각자 뿌리와 가지를 뻗고 자란다. 그리고 종류가 다양하다. 소나무, 물푸레나무, 때죽나무, 야자수처럼. 각자 모양과 성질이 다른 식물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이승우 작가는 '식물이나 인간이나, 그 성질은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다, 하고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손으로 이 나뭇잎을 만져봐라." 서늘한 감촉 말고는 아무런 느낌도 전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무에게 사랑과 믿음을 표현하라고 충고했다. "마음속에서 사랑이 우러나와야 한다.", "식물의 피부는 너의 손을 통해 너의 마음을 지각한다."  

 

인생이란 참 비합리적이다. 누구나 종국에는 죽음을 맞는다. 어차피 최후에 가서 무너질 일인데  치열하게 인생을 설계하고 시공에 공을 들인다.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복병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가항력이어서 무엇이든 해볼 용기를 준다. 이들 가족의 모습은 언뜻 보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관계로 가득찬 콩가루 집안으로 보인다. 사랑한다는 마음은 같아도 사랑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탓이다.  


사랑은 다 다르다, 하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내용은 같아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하나도 같지 않다.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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