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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17. 2019

매일 밤 옥상에서는 무슨 일이..옥상에서 만나요-정세랑

매일 밤 옥상에서는 무슨 일이...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63빌딩과 남산타워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삼각형의 꼭짓점에 서 있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회사 옥상에서, 다리 사이로 뜨거운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느끼며 오래오래 앉아 있었어.' 이야기는 이렇게 <미생> 속 주인공 장그래를 연상시키는 말로 시작한다.  


자살 충동에 빠진 '나'가 우연한 기회에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스포츠신문 광고사업부에서 일하는 나는 낙이 없다. 회사는 나에게 접대를 강요하고, 을의 자리에 있는 나는 사무실에서 일한 시간보다 룸살롱에서 접대한 시간이 훨씬 길다. 부조리한 노동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늘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날의 연속이지만 집안에서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두지도 못한다. 그만둔다고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아빠는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 아빠를 돌보는 엄마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동생은 우울증 환자. 이 답답한 불구덩이에서 벗어날 해법은 '결혼' 뿐이었다. 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을 해서 지금 직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계기가 아닌 핑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회사에서 의지하고 지내는 언니들이 두세 달 간격으로 차례차례 결혼을 하자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어디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짝을 찾는 걸까? 언니들의 비법은 소개팅, 성형수술 같은 평범한 비책이 아니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했다는 <규중조녀비서>에 주문이 담겨있었다. 의지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그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비법을 나는 착실하게 실천한다.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회사 옥상을 택한다. 언니들의 말에 의하면 회사 옥상이 바로 '북쪽 산이 보이는 강 건너 언덕'이기 때문. 고대의 주문이 언덕 대신 빌딩도 산으로 쳐주더라면서. 이게 웬일인가. 정말 결혼할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라고 나타난 생명체의 모습이 괴상하기 그지없다.  


“남편을 소환하려다가 멸망의 사도를 소환해낸 여자라니. 한심하기도 했지. 사랑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똥 같은 회사에 대한 원망을 담아 빌었던 게 문제였을까? 도피 결혼에 대한 전근대적 저주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백 퍼센트 도피 아닌 결혼이 어디 있겠어? 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복받치게 억울했지.”  


남편 꼬락서니에 황망한 것도 잠시, 남편이 두 손을 뻗어 나의 머리를 감싼다. 그리고는 입술이라고 생각되는 축축한 구멍을 정수리에 대고 뭔가를 빨아들인다. 다음날 나는 놀랍도록 가뿐하고 즐거워졌다. 그제야 나는 남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는다. 주인공이 소환해낸 운명의 상대인 남편은 나의 내면에 쌓여있던 절망을 모두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해버렸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앞으로 나아갈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은 절망을 밥처럼 먹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그의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 면면도 다양하다. '뇌종양 수술 후 후각을 잃은 요리사' '험악한 이웃과 마찰을 겪은 캣맘' '텔레마케터' '20년 넘게 키운 앵무새가 죽은 사람' '극우 국회의원의 딸' 등, 작가는 직업과 상황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나의 주변 사람들도 절망을 먹고 사는 남편 덕분에 무거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혼을 탈출구로 생각했던 나의 순진한 믿음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유쾌한 상상력 

정세랑 작가는 또렷한 개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판타지 문학 지분을 차곡차곡 늘려왔다. 장편 『지구에서 한아뿐』은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고, 『보건교사 안은영』은 판타지 호러이다. 그리고 단편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는 시사와 판타지를 섞어 웃기지만 슬픈 우리의 세태를 정밀하게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참신하다는 평이 많다. 우선 <규중조녀비서>라는 책으로 반려자를 찾으려 드는 여자의 설정이 참신하고 소재와 구성,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기발하다. 언뜻 장르문학에서 볼 수 있는 참신성은 이야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녹아든다. 과하지 않은 적정선을 적절히 조절하는 정세랑 작가만의 기술로 보인다.  


명랑한 문체로 사회와 세태를 꼬집는 정세랑 작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문득 앞표지로 되돌아가 책을 요리조리 살피게 된다. 그러면서 읊조린다. '무슨 소설이 이렇지?'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발린 옥상 난간에서 한 남자가 뒤돌아보는 표지 일러스트마저 범상치 않아 보인다. 배경에 63빌딩도 보인다. 뒷면까지 이어진 일러스트는 옥상 난간에 기대 바람을 쐬는 직장 언니들 모습이 담겼다. 화제의 웹툰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가 표지 일러스트를 맡았다. 이 소설이 유난히 독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SF 판타지 장르가 낯선 이유도 있지만, 소수의 마니아층을 겨냥한 장르문학이 아닌 정통 문학의 형식을 본따고 있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인줄 알고 말랑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가 외계인과 사랑하는 이야기에 그만 멍해져버리는 격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 있는 것들을 보듬는 그 애정 어린 손길을 믿고 싶어진다. 그 애정이 바로 정세랑 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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