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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Oct 06. 2022

생각의 기쁨


생각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하루에 고구마 세 개 먹으면 살 빠질까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질문이다. 내용 자체는 평범하다. 누구나 궁금해 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내용이니까. 여기에 달린 댓글에 실소가 터졌다. '다이어트는 뭘 먹으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안 먹어야 빠지죠.'     


우리는 너무 자주 천둥 번개를 기대한다. 강의 하나 들으면 쩍 갈라지며 인생의 비법이 풀리고, 책 하나 읽으면 번쩍하며 주식 투자 종목이 훤하게 보이기를 기대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인생 비법 12가지!”, “이것이 돈이다” 누군가 강의나 책에서 이렇게 단언한다면 일단 한 번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삶은 모호하고 명료한 답을 건질 수 있는 무엇이 아닌데 어찌 한방에 해답을 찾겠는가.  


카피라이터 유병욱의 이야기는 천둥 번개로 오지 않는다. 가랑비로 온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좋은 것들은 대부분 천둥 번개처럼 명료하게 오는 무엇이 아니라 가랑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하게 오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아이디어 회의를 몇 시간 앞두고 좋은 의견을 내놓기 위해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읽는 이를 매혹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쓰려다가 엉키는 문장들과 타들어가는 마음 때문에 냉수만 연거푸 들이키는 우리들에게, 생각은 과연 기쁨이 될 수 있을까? 20년차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저자 유병욱은 좋은 생각을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우리들에게 ‘생각은 기쁨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어떻게 기쁨일 수 있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카피라이터의 또 다른 이름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생각한다. 저자는 생각의 기쁨을 논하기 전에 오랜 광고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분명한 사실 하나를 짚어준다. 바로 좋은 생각에 법칙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카피라이터가 말해주는 좋은 생각을 하는 비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쳤다면 이내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비껴나간 기대를 추스르고도 남을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좋은 생각에 관한 법칙은 없지만 평균 이상의 확률로 좋은 생각을 만드는 태도와 과정과,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진리이다. 
 

“승부는 사소한 것에서 결정 납니다. 잘된 캠페인을 돌아보면 결국은 아주 사소한 지점들을 사소하지 않게 생각한 결과더군요, 카피라이터는 사소한 한 단어를 더 좋게 바꾸고, 아트 디렉터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별 차이가 없는 레이아웃을 집요하게 손봅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의 합이 불러오는 변화는 절대 사소하지 않습니다.” - 230p 


생각이나 창의성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함을 무심코 흘려버리지 않고 하나씩 수집해 잘근잘근 곱씹어보면 사소한 생각도 위대해질 수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대단한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각의 기쁨’은 번듯한 결과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아이디어의 씨앗을 그럴 듯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보자. 생각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노트와 연필만 있어도, 커피 한 잔과 스마트폰 메모장만 있어도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의 바다로 떠날 수 있다. 생각하는 데에는 공간의 제약도 없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에서 재소자에게 하루에 두 장씩 제공되는 똥종이 위에 쓰인 글들을 엮었다.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 화백은 종이 한 장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던 시기, 담뱃갑 속 종이를 긁어 그 위에 그린 그림을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보내곤 했다. 그것이 이중섭의 대표 작품 '은지화'이다.  

대단한 생각의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은 공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욕조나, 뉴턴으로 하여금 물리학의 역사를 바꾸게 한 사과나무조차도 후대에 추가된 극적인 무대장치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누군가의 샤워부스나 꽉 막힌 출근길 핸들 앞에서 태어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언제나 지루하고 더디다. 그리고 과정은 사소한 노력과 선택의 연속이다.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법한 일상의 한 순간에서 생각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어떤 기본자세들을 포착해내는 저자의 시선은 예리하고 단단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발상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 당신에게 감히 이 책을 권한다. 우리는 모두가 우리 인생의 크리에이터들이므로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도 생각의 과정에 집중하면 충분히 문제해결력이 있는 비범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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