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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Sep 05. 2023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아내가 암에 걸렸다. 말기였다. 아내가 부엌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내가 부엌에 들어간 이유다. 아니 어쩌면 아내에게 먹을 것을 해주고 싶어서 용기를 낸 것인지 모른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엌일 젬병이었던 인문학자 강창래가 부엌에서 홀로 서기를 한다. 병석에 있는 아내는 이제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다. 그나마 입에 대는 거라곤 남편이 마음을 다해 만든 요리뿐. 고통과 아픔 대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짧은 기쁨의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 쓴 남편의 부엌 일기. 조리 과정만 담담히 적어놓은 일기에 왜 가슴이 자꾸만 먹먹해지는 걸까? 


저자 강창래는 정혜인의 남편으로 35년을 살았다. 동네 친구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출판계 동지이기도 했다. 아내는 출판사 알마의 대표였고, 남편 역시 오랫동안 출판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그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이 전부였다. 그래서 레시피를 찾아가면서 SNS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맛을 찾아갔다. 아내는 힘들어했다. 그가 만든 음식을 겨우, 조금 먹었다. 그래도 기뻤다.  


어느 날 아내가 대패삼겹살 먹고 싶다고 한다. 전날 혼수상태까지 갔던 아내였다. 대수술을 받았다. 예상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패삼겹살을 이야기했다. 투병을 위한 음식은 먹는 것부터 고통스럽다. 먹을 것도 없고, 맛도 없다. 그는 아내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무항생제, 양념은 하나도 넣지 않고. 대패삼겹살 다섯 개쯤 구워 준비했다. 아무런 양념 없이 굽기만 했다. 아내는 겨우 두 점 먹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그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저렇게 맛나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을 위한 음식은 대충 건너뛰고 말지라도 아내를 위한 요리에는 언제나 정성을 쏟는다. 처음에는 콩나물국이나 볶음밥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해내고 뿌듯해하는 게 보이지만 어느덧 칼질에 자신이 붙어 아귀찜, 해삼탕 같은 고난도 요리까지 해낸다. 물론 아귀찜의 콩나물은 아삭하지 않고 해삼탕은 아무래도 류산슬을 좀 닮은 것 같지만. 대부분 집에서 늘 먹는 밥과 반찬이지만 만들고 먹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드라마가 특별하다.  


그런데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슬플까. 그는 언제까지 아내를 위해 요리해 줄 수 있을까.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렸던 강창래 작가의 글은 담백한 가운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글은 거의 대부분 레시피를 말하지만 사이사이에 슬픔이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더 사랑하겠다고. 진심을 다하겠다고.'  


책에 가장 자주 보이는 단어는 ‘간단하다’이다. 작가가 요리 과정을 설명하면서 덧붙인 표현이다. 자세히 보면 간단하지 않다. 20여 가지의 채소를 일일이 손질해 세 시간 이상 곤 채소 수프를 주자 아내가 뭘로 만들었느냐고 묻는데 그때도 그는 “간단해”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버거운 일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스스로 거는 주문, 일종의 허풍이나 농담이리라.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힘든 투병과 간병 과정을 거의 생략하지만 가족들의 고통이 저절로 배어나오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이면 뭐든 만들어주고 싶지만 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불시에 위기의 순간이 오고 응급실에 실려 가느라 요리가 중단되기도 한다. 만들다 말다 해서 ‘뛰엄뛰엄 탕수육’이라고 이름을 붙인 요리는 아내가 먹고 싶어했고 자신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했지만 결국 만들다 만 상태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간다. 


작가는 레시피를 페이스북에 기록할 당시에는 아내를 보살펴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고통과 슬픔 같은 것도 편하게 느낄 겨를이 없었다. 가끔 서재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힘들어서 슬퍼서 울기도 했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해 눈물이 났다. 


간병이 힘들지는 않았냐고 묻자 강창래 작가는 그냥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따지고 보면 간병기간은 겨우 2~3년인 셈이고, 아내는 가족을 위해 30년 동안 밥을 해줬다. 1/10 정도 되는 시간인데 뭐가 그렇게 길겠나며, 차이가 있다면 아직도 사회적으로 여자가 밥을 하는 건 당연하고 남자가 하면 특별한 것처럼 이야기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30년 동안 밥을 받아먹었는데, 의리를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안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머리말에서 한 말처럼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의 순간을 길게 늘이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요리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몇 시간씩 만들어 단 오 분, 한 입밖에 못 먹더라도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는 순간에 아주 잠깐 떠오르는 기쁨을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람은 모두가 한 개의 섬이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배가 있다. 연락선이 수시로 떠나긴 하지만 부탁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드물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예 선착장에 그대로 버려진 것도 눈에 띈다. 서로의 사랑이 비껴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 섭섭하고 미워서 화를 내고 떠나려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니. 그 연락선은 지금도 여전히, 아마도 영원히 믿을 만하지 못하다. 그렇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참 쓸쓸한 일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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