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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Sep 12. 2023

19호실로 가다



 


크고 번듯한 집, 돈 잘 버는 남편, 귀엽고 해맑은 아들 둘 딸 둘까지. 모든 것이 매끄럽고 흠잡을 데 없이 설계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수전은 행복하지 않다. 인생이 사막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가족을 돌보면서 엄마, 아내로 살다보니 정작 자신이 사라지는 현실을 자각한다.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오롯한 몰입이 가능한 익명의 장소를 찾는다. 


처음에는 다락을 꾸며 '엄마의 방'으로 지정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하지만 곧 혼란스러워진다. “이 커다란 집에서 그녀가 자기만의 방을 하나 마련하는 일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이렇게 엄숙하게 토론해야 될 일인가?” 게다가 그 방은 여전히 집 안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은 수시로 공간을 침범한다. 어느새 그 방은 아이들과 가정부가 드나드는 또 하나의 거실이 되고 만다.  


수전은 기차를 타고 나가 시내의 허름한 호텔을 빌린다. 그곳은 프레드 호텔 19호실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내가 사라지는 것을 안 남편의 반응은? 사설탐정을 시켜 뒤를 밟는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나 6시까지 19호실에서 혼자 있다가 간다고 호텔 지배인이 ‘있는 그대로’ 증언했지만 남편은 믿지 않는다. 다른 남자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수전은 거짓말을 한다. 19호실을 드러내기 싫었던 수전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불륜 의심마저 인정한다. 자신의 공간인 19호실을 드러내느니 차라리 부정한 여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애인이 있었듯이 당신도 그랬을 거라며 교양과 관용의 제스처를 취한다. 심지어 서로 애인을 데리고 나와 넷이서 더블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하는 지경에 이른다. 수전이 오로지 수전으로서 존재하는 그 공간을 남편이 알아버린 순간, 그것은 결국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평범한 남편, 평범한 날들, 평범한 네 명의 아이들 속에서 살던 그녀에게 '19호실'은 어떤 의미였을까.   


소설은 어이없는 비극으로 끝나버린다. 수전의 19호실은 세상에 의해 은밀한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훼손당한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19호실로 들어가 가스를 틀어놓은 채 영원히 그 공간 속에 잠이 든다. 가질 수 없던 공간과 내밀한 시간을 죽음으로써 영원히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죽음과 맞바꿀 만큼 19호실이 소중했던 걸까? 수전은 아내도, 네 아이의 어머니도 아닌 익명의 존재로 공허하게 존재하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수전은 매일 19호실로 가기 위해 입주가정부를 고용한다. 가정부는 수전 대신 안주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 모습을 보며 수전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열중했던 아내와 어머니, 안주인의 역할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소설 <19호실로 가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1994)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레싱의 초기 단편으로, 배경은 전통적인 사회질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 전후의 유럽사회다. 가부장제와 전통적 사회질서에 담긴 편견과 위선 그리고 그 편견과 사상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레싱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 것처럼 소설은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일상과 욕망, 때로는 저항을 가감 없이 묘사하여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레싱의 작품들은 엄마다움, 아내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에 짓눌려 자유를 잃어버린 여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의 ‘19호실’은 어디인가. 나의 취향으로 가득한 곳,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타인이나 사회가 제공하는 ‘19호실’이 아닌, 스스로 만드는 나의 ‘19호실’. 나의 세상이 어디든 ‘19호실’이 될 수 있기를. 그곳이 설령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관습들을 벗어나는 곳이더라도, 나의 ‘19호실’을 잘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똑같아.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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